고독하되 고립되지 말라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귀가 있는데
혀는 하나뿐이다
보고 들은 것의 절반만 말하라는 뜻이 아닐까.
침묵 속에서 사람은 거듭거듭 형성되어 간다.
침묵의 바다에 잠김으로써 자신의 실제를 응시할 수 있고
시든 생명의 뜰을 소생시킬 수 있다.
침묵의 바다에서 존재와 작용은 하나를 이룬다.
사람의 위대함은 그의 체력이나 지식에 있지 않고
오로지 맑은 혼에 있다.
현대의 우리에겐 자기 언어가 없다.
날마다 우리들 귓가에 대고 호소하고 설득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말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입에 담고 있다.
이 일 저 일에 팔리면서 쫓기느라고 생각할 여유가 없다.
자기 사유를 거치지 않으니 자기 언어를 지닐 수 없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어디서나 과밀 속에서 과식하고 있다.
생활의 여백이 없다.
실(實)로서 가득 채우려고만 하지
허(虛)의 여유를 두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정신은 너무나 많은 일에 분산되어
제정신을 차리고 살기 참으로 힘들다.
내가 내 인생을 자주적으로 산다기보다는
무엇인가에 의해 삶을 당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간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으려면
먼저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자기관리를 소홀히 하면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그 인생은 추해지게 된다.
우리들이 어두운 생각에 갇혀서 살면
우리들의 삶은 어두워진다.
나쁜 음식, 나쁜 약, 나쁜 공기, 나쁜 소리,
나쁜 생활습관은 나쁜 피를 만든다.
나쁜 피는 또한 나쁜 세포와 나쁜 몸과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을 낳게 마련이다.
어떤 현상이든지 우리가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일을 할 바에야 유쾌하게 하자.
그래야 능률이 오르고 피로도 덜하고
살아 있는 기쁨도 누리게 될 것이다.
기쁨이 없는 곳에는 삶 또한 있을 수 없다.
사람과 일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사람이 그 일 자체가 되어 순순하게 몰입하여
지속하고 있는 동안에는 자신도 사물도 의식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삼매의 경지다.
이때 잔잔한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이
꽃향기처럼 은은히 배어 나온다.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인간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사람은 살 때 빛이 나야 하듯이
죽을 때도 그 빛을 잃어서는 안 된다.
생과 사가 따로 나누어질 수 없는
겉과 속 관계라고 하니 더욱 그렇다.
마음을 비우려면 무엇엔가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러면 될 수 있는 대로 쓸데없는 대화를 피해야 한다.
홀로 있으면서 발가벗은 자기 세계를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문명의 소리는 우리 마음을 자꾸 어지럽힌다.
거기에는 생명의 흐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의 소리는
그 자체가 완벽한 생명의 조화를 이루고 있어
듣는 마음을 정결하게 밝혀주고 편하게 가라앉혀준다.
자연의 소리는 굳이 밖에서 들리는
바람소리나 물소리만이 아니다.
더 원천적인 자연의 소리는 내 마음에서 울려오는 소리이다.
= 법정 스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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