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끊임없이 베풀고 있다
새소리는 종일 들어도 싫지가 않다.
하는 일에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우주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 할지라도,
또는 마음의 양식이 될 어떤 고승의 설법이나
부흥사의 설교라 할지라도
연거푸 들으면 멀미가 난다.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것이므로 그렇다.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즐기려면
아무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조용히 있기만 하면 된다.
어떤 선입관에 사로잡힘 없이
마음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없다.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면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그 대상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은 팍팍한 우리 일상에
가장 정결한 기쁨을 안겨준다.
가랑잎 밟기가 조금은 조심스럽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누워 있는 가랑잎 하나에도
존재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넘어다볼 수 없는
그들만의 질서와 세계가 있을 법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있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로 거기 그렇게 존재한다.
산에서 듣는 바람소리는
귓전만 스치는 것이 아니다.
뼛속에 묻은 먼지까지도,
핏줄에 섞인 티끌까지도 맑게 씻어주는 것 같다.
산바람소리는 갓 비질을 하고 난
뜰처럼 우리들 마음속을
차분하고 정갈하게 가라앉혀준다.
인간의 도시에서 묻은 온갖 오염을 씻어준다.
아무런 잡념도 없는 무심을 열어준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우리들은 생명의 바탕인 흙의 은혜를
날이 갈수록 저버리고 있다.
흙을 의지하지 않고,
그 흙을 등지고 살아가는
생물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 인간이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꿈속에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디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날 때
그것은 우주의 큰 생명력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찬바람에 낙엽이 뒹구는 것도
우주의 큰 생명력의 한 부분이
낙엽이 되어 뒹굴고 있는 것이다.
봄에는 파랗게 움트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에는 누렇게 익으라.
겨울에는 말문을 닫고 안으로 여물어라.
이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아니겠는가.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하고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해도
그것을 보거나 들을 줄 모른다면
그는 이미 병든 것이다.
그런 병은 어떤 의사도 치유할 수 없다.
사람은 어느때 가장 맑을까?
산에 사는 사람들은 가을에 귀가 밝다.
가을바람에 감성의 줄이 팽팽해져서 창밖에
곤충이 기어가는 소리까지도 다 잡힌다.
다람쥐가 겨우살이 준비하느라고 상수리나무를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오관이 온통 귀가 된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무상으로 끊임없이 베풀고 있다.
봄에는 꽃과 향기로 우리 눈과 숨길을 맑게 해주고
가을이면 열매로써 먹을 거리를 선물한다.
우리가 자연에게 덕을 입힌 일이 무엇인가.
덕은 고사하고 허물고 더럽히고
빼앗기만 했을 뿐인데
자연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말없이 나누어주고 있다.
이 영원한 모성 앞에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되돌아보고 돌이킴이 없다면
우리는 대지의 자식이 될 수 없다.
= 법정 스님 <인생응원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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