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은 겸손합니다
신념은 겸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스스로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자처하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가치관의 붕괴와 사회 질서의 혼란으로 인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참된 신념을 가지고
용감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릇된 신념으로 횡포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된 신념이 적극적이고 건설적인데 반하여
그릇된 신념은 광적이고 파괴적입니다.
참된 신념은
자기 자신의 한계성을 뼈저리게 실감하면서도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지만,
그릇된 신념은 자기 자신을 한없이 들어 높이고
자기보다 우월한 자를 보면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합니다.
신념 있게 사는 사람 가운데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지만,
그릇된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주위에서 맴돕니다.
그러기에 후자는 쉽게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독선으로 기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들 서로의 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니라
인생의 긴 나그넷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이며
봉사자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간 본연의 동등권을 소중하게 여기는사람은
자기가 처해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든 아니든 간에
그것이 가정이든, 학교든, 국가든
자신이 스스로 남의 인격 위에 군림하지를 않습니다.
나그네길로서의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달픈 일이 많고, 서로서로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 속에는
남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일에 시간과 재원과
노력을 낭비하는 일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차원에서든지
눌러대기 보다는 눌리는 형제들과 함께 눌리고,
묶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묶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사람을 죽이는 무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차라리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형제들의,
저항없는 죽음을 당하는 형제들의,
저항 없는 죽음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신념의 사나이가 되어야겠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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