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하나님의 이름 17. 여호와 체바오트(Jehovah-sabaoth) / 만군의 하나님

문성식 2021. 3. 17. 23:33

 

 

 

      하나님의 이름

 


17. 여호와 체바오트(Jehovah-sabaoth) / 만군의 하나님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이스라엘 자손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의지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았을 때에야 비로소 여호와 체바오트(Jehovah-sabaoth)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집단, 대중, 대량, 군대 등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천사들이나, 천체, 하늘의 군대, 또는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을 언급할 때 사용되어 지곤 했습니다. 여호와 체오바트는 사무엘상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때까지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이신 그분에게 호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지서인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학개, 스가랴, 말라기를 읽을 때 우리들은 몇 번이고 거듭하여 이 이름을 발견합니다. 이 이름은 스가랴서 전체(1장-14장)에서 52번 사용되고, 예레미야 전체(1장-52장)에서 83번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 이름이 두 선지서에서 가장 비중있게 사용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서는 만군의 하나님이 계속 반복되어 언급되는데 에스겔서에는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이름은 하나님의 백성이 경험해 나가는 어느 특정 단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 이름은 인간이 극한에 처할 때 주어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우리는 실패할 때, 시험을 만나 나약해져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여호와 체바오트께로 달려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먼저 여호와 체바오트가 사용된 두 경우는 사무엘상 1:3-11절에서 발견됩니다. 이 사건은 유대의 마지막 시대에 발생했습니다.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 시대 때 즉 신정 국가에서부터 군주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역사는 과도기였습니다.

 

사무엘상 1:1-3절 말씀입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자식을 허락하지 아니하셨고 브닌나에게는 자식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한나는 그 고통이 매우 컸습니다. 

 

사무엘상 1:6-7, 10-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삼상 1:6-7)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사무엘상에서 등장하는 여호와 체오바트는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만나는 장면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무엘상 17:42-47절을 읽고 얻은 통찰을 기록하십시오. 


사무엘상 17:42-47절 말씀입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한나와 다윗은 만군의 주께 간청하여 그의 이름을 통해 출구를 찾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곤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은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 만사형통케 하는 마법으로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그곳으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습니다.(잠 18:10)

 

사무엘상에서 세 번째로 등장하는 여호와 체바오트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투하는 곳에서 나타납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삼상 4:3-4)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삼상 4:10-11) 

그의 이름은 우리들이 부를 수 있는 곳에 있고, 우리의 강한 산성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름을 오용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의 가운데 계신 그분에게로 가야만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의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군의 주이시다.

‘만군의 주’란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 전체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 능력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군’이란 보통 천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천사의 존재를 언급할 때도 있다. 또한 ‘군’이란 말이 인간과 자연 전체를 가리킬 수도 있다. 여호와 체바오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주의 목적을 따르고 섬길 수밖에 없는 장엄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삼상 17:4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