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읍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읍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코스모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집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골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에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골을 다시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골은 슬픈 그림이다.
또 태초의 아침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여온다.
무슨 계시일까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1941.5.31)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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