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 해밀턴
이름과 성이 같았습니다
화가 이야기를 찾다보면 간혹 혼자서 ‘투덜이 스머프’가 될 때가 있습니다. 열에 아홉은 그림은 좋은데 화가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경우입니다. 이곳저곳을 뒤져도 딱히 건질 만한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얼마 전 이웃이신 정경부인(http://blog.com/hhh7561)님 소개로 미국 화가 해밀턴 해밀턴(Hamilton Hamilton, 1847-1928)의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 모자랐습니다. 이름과 성이 같은 이 화가에 대한 자료는 A4 용지 한 장도 되지 않더군요.
어린 남부 미인들 Lil'l Southern Belles, 1894, 81.28x91.44cm
제목을 한글로 붙여보고자 사전을 뒤져도 별 뾰족한 단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Southern Belles는 남부의 미인 정도가 될 것 같은데 Lil’l은 도무지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나란히 서서 노래를 부르는 두 소녀의 얼굴과 옷에 저무는 햇빛이 황금빛으로 부서지고 있고 얼굴에는 청순함과 함께 즐거움도 빛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제 눈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이 느껴집니다. 멀리 보이는 종탑 주변으로는 온통 꽃 세상입니다. 소녀들의 노랫소리가 나지막이 숲을 흔들었겠지요. 문득 짙은 꽃향기가 건너오는 듯합니다. 그림 속 두 소녀는 화가의 쌍둥이 딸을 모델로 했다고 하지요. *아침햇살님이 Li'i이 Little의 고어체가 아닐까 하는 의견을 밑에 달아 주셨습니다. 확인을 해보겠습니다만 그 말씀이 그림의 제목과 잘 어울려 수정했습니다. 아침햇살님, 고맙습니다.
스코틀랜드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해밀턴은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그의 가족들은 미국 버펄로 근처의 시골 마을로 이민을 갑니다. 영국 태생이지만 미국 화가로 기록되는 순간이었죠. 그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대부분 독학으로 미술을 배웠다는 기록을 보면 정규 미술학교 수업은 없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리오그란데의 짐 나르는 동물들 Pack Train of the Rio Grande, 91.44x157.48cm
숲은 단풍으로 붉게 불타고 있고 서서히 해는 저물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았는데, 그나마 이제부터 시작되는 길은 모래밭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귀 등에 짐을 싣고 길을 나선 사람들이 맨 뒤에서 천천히 동물 떼를 몰고 있습니다. 지나온 뒤편은 구름 사이로 내려온 햇빛이 나무에 부딪히며 마치 노란 등불을 켜 놓은 것 같습니다. 점점 어두워지는 길, 어디선가에서 오늘 밤을 보내야겠지요. 곧 캄캄해질 가을 저녁 길, 모두에게 평온한 밤이 되기를 빕니다.
1872년, 스물다섯의 나이로 해밀턴은 버펄로에서 초상화가와 풍경화가로 경력을 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콜로라도로 스케치 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행을 통해 마흔일곱 점의 작품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참신한 인상파 화법으로 제작된 이 작품들은 1876년 필라델피아 100주년 전시회에 걸리게 되면서 화가로서 그의 명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꽃따기 Picking Flowers, 1882
‘꽃을 꺾는다’는 말보다는 언제부턴가 ‘꽃을 딴다’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당하는 꽃 입장에서는 그것이 그것이겠지만 느낌은 다릅니다. 길 위에 난 발자국이 아직 선명한 것을 보면 며칠 전 비가 내렸던 모양입니다. 비가 그치고 난 뒤 맑은 날씨 아래 들꽃이 일제히 피어난 모습입니다. 잠시 꽃에게 마음을 내려놓아도 좋을 풍경입니다. 벌판에 우뚝 선 나무 두 그루가 마치 꽃밭의 주인처럼 보입니다. 눈이 부셔도 좋으니 저는 이렇게 빛이 가득한 그림이 좋습니다. 그림을 보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거든요.
1875년에는 로키 산맥을 탐사합니다. 해밀턴의 잦은 미국 서부 여행은 그에게 ‘미국 서부를 묘사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이라는 칭호를 남겨 주었습니다. 미국 서부를 묘사한 화가로 유명한 사람은 알버트 비어스타트가 있습니다. 해밀턴보다 20년 가까이 먼저 태어났고 그도 서부 여행과 모험을 통해서 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미지에 대한 세계는 탐험가에게는 용기를, 화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모양입니다. 제 남은 인생도 미지의 세계인데, 그렇다면 저는 무엇일까요?
<사과꽃 흔들기 Falling Apple Blossoms, 76.2x45.72cm
이렇게 기분 좋은 그림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엄마가 나무 벤치에 올라서서 사과나무를 흔들자 꽃잎이 눈처럼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과 향을 담은 작은 꽃잎들은 아이의 머리 위에, 옷에 내려앉았고 더러는 부드러운 바람에 나비처럼 날아갔습니다. 손을 벌리고 꽃과 엄마를 바라보던 아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작은 손으로 날리는 꽃잎을 잡고 싶었겠지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미소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이보다 엄마가 더 신이 난 모습입니다. 혹시 꿈결에 본 장면은 아니었을까… 사과 향이 코끝에 느껴집니다.
1878년 서른한 살이 되던 해 해밀턴은 파리로 거주를 옮깁니다. 그곳에서 1880년까지 머무는 동안 퐁타방 주변 지역을 그림에 담습니다. 그리고 귀국 후 뉴욕에 자리를 잡고 화실을 엽니다. 이 해부터 해밀턴은 국립 아카데미에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합니다. 자료가 없으니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미국에서 쌓았던 화가로서의 경력과 프랑스에서의 경력에 확실한 자신을 얻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원 The Garden, 45.72x60.96cm
성격 탓인지 잘 가꾸어 놓은 정원을 만나면 가지런하게 머리를 빗고 잘 차려 입은 귀공자 같은 모습이 떠올라 느낌이 그저 그렇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풀도 우거져 있고 사람 손이 덜 닿은 것 같은 자연스러운 정원은 저를 편안하게 만듭니다. 작은 연못 주위에 꽃들을 심어 놓은 것은 누구의 생각이었을까요? 색깔도 적당히 어울리게 맞췄습니다. 모두들 연못 속의 물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들도 그들끼리 어울려 사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굳이 우리가 모양을 내지 않아도 좋은 모습입니다. 요즘 저는 곧 시작될 화사한 봄의 정원을 숨 고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1886년 국립 아카데미 준회원이 된 해밀턴은 3년 뒤 정회원이 됩니다. 바로 전에 소개한 드레이퍼는 나라는 달랐지만 평생 로열 아카데미 회원이 되지 못했는데, 해밀턴은 아주 반대의 경우였습니다. 그의 결혼에 대해서도 자료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이 해에 헬렌과 마가렛이라는 쌍둥이 딸을 얻었으니까 경사가 겹친 것이죠.
리오그란데 강의 상류 Headwaters of the Rio Grande, 45.09x71.12cm
콜로라도에서 시작해서 멕시코 만으로 흘러드는 리오그란데 강의 상류는 온통 암석 지대입니다. 마치 중동의 광야처럼 붉은색으로 묘사된 땅은 인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사이로 흐르고 있는 강 위로 햇빛이 조명을 켜 놓은 듯 내려앉았습니다. 강물도 사람과 같아서 상류는 여린 재잘거림과 잰걸음으로 바쁩니다. 서서히 몸집이 커지면 제법 굵은 소리도 내고 힘도 강해지다가 바다에 이를 때면 한없이 느려지고 유장한 모습을 보이죠. 제가 강이라면 어디쯤 흘러 온 모습일까요? 작은 배 정도는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까요?
해밀턴의 딸 헬렌은 훗날 후기 인상파 기법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가 됩니다. 해밀턴이 이미 확실한 화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으니까 딸의 미술 지도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원 포인트 레슨’이 주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이를 가르쳐보면 속 터질 때가 많습니다. 역시 부모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파라솔과 여인 Lady with a Parasol, 76.84x128.27cm
꼬마 숙녀 두 명이 곧 일을 저지를 태세입니다. 일본풍 우산을 펴 놓고 편한 자세로 잠이 든 엄마를 향해 나뭇가지를 쳐들었습니다. 아마 얼굴을 간질일 속셈인 모양입니다. 다음 장면은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얼굴에 이상한 느낌에 엄마는 화들짝 놀라 일어날 것이고 햇빛을 가리고 있는 우산에 머리를 부딪겠지요. 파라솔에 그려진 여인들도 다음 장면이 궁금한지 모두 엄마를 향해 시선이 몰려 있습니다. 아이 둘을 남겨놓고 나무 그늘에 앉아 잠이 든 엄마도 참 대단합니다. 어린 소녀 얼굴이 너무 똑 같습니다. 혹시 화가의 아내와 쌍둥이 딸이 모델이 아니었을까요?
해밀턴은 여행을 많이 한 화가로 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영국과 같은 해외를 포함해서 미국 서부와 뉴욕, 코네티컷 등이 그 대상이었는데 풍경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겠지요. 유화뿐만 아니라 수채화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던 그는 삽화가로, 에칭 화가로도 이름을 남겼습니다. 재능 많은 화가였습니다.
그림책 The Picture Book, 76.2x50.48cm
책을 펴고 앉은 모습이 아주 의젓합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부드러운 바람이 레이스 커튼을 조용히 날리고 있는 가운데 소녀의 입에 걸린 미소가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책에 몰두했다는 뜻이지요. 어려서 그림 그리기를 꽤나 좋아했던 저를 두고, 어머니는 요즘 그림에 대한 저의 블로그가 그때 기억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확실한 인과관계가 있는지 제가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어머니의 말씀에 동의하기로 했습니다. 어렸을 때의 상상력이 그대로 작동하는 한,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리고 보니 갈수록 빈곤해지는 저의 상상력이 떠오릅니다. 영양제가 아니라 상상력 키우는 약이 먼저 필요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 줄기 바람 A Gust of Wind, 50.8x30.48cm
한 줄기 바람이 여인을 감쌌습니다. 모자에 달린 레이스와 여인의 치마가 날리는 방향을 보니 바람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불어 온 모양입니다. 턱을 괴고 있는 여인은 바람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미 여인의 상념은 바람과 함께 저만큼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봄이 시작되면 늘 오후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바람은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것들의 어깨에 쌓인 먼지를 털어주는 손길이었지만 때로는 마음을 흔드는 광풍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올 봄, 어떤 바람이 또 우리를 흔들까요?
여든한 살로 세상을 떠났으니까 해밀턴의 삶은 화가로서, 한 개인으로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료가 별로 남아 있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혹시 주위와 별 문제 없이 아주 평온하게 살아서였을까요? 좌충우돌했다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남아 있었겠지요. 평온한 삶이었다면 그것으로도 큰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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