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화

에드먼드 레이턴

문성식 2019. 1. 23. 23:35

 

에드먼드 레이턴 - 사랑과 낭만이 가득한 작품


간혹 고전적인 주제의 그림들을 만나면 여전히 그 섬세함과 현장에 있는 듯한 사실적인 묘사에 놀라곤 합니다. 지금은 그런 작품들을 그리기 위해 화가들이 얼마나 고증에 충실했는지 알고 있지만 예전에는 대단한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했었지요.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대체 의미를 알 수 없는 작품보다는 한눈에 뜻이 전달되는 작품이 편한 것을 보면 아직 공부가 멀기는 먼 모양입니다. 영국의 에드먼드 블레어 레이턴*(Edmund Blair Leighton, 1852-1922)의 작품들에도 제 눈길이 한참 머물렀었습니다.


피아노 레슨 The Piano Lesson, 1896, 32.1x44.2cm


피아노 선생님 눈이 커졌습니다. 뭔가 이상한 음을 들은 것이겠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학생은 노래를 부르며 피아노 연주에 여념이 없습니다. 딱딱한 선생님 얼굴과 천진스러운 소녀의 표정이 비교되면서 작품의 내용이 유쾌해졌습니다. 피아노와 거울 그리고 벽에 걸린 촛대, 그리고 여인의 옷까지 정교하게 묘사한 레이턴의 정성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나저나, 선생님, 눈에 들어간 힘을 그만 푸셔야 할 것 같습니다. 눈이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레이턴은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망한 젊은 초상화가였습니다. 레이턴이 화가가 된 것은 그의 핏속에 아버지의 재능이 흘렀기 때문일 겁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는 그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이 누이는 다섯 살, 그리고 여동생은 아직 엄마 뱃속에 있을 때였죠.

의무 Duty, 1883, 147x102cm


이것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사로서 갑옷을 입고 전장으로 나가야 하는 모양인데 리라를 든 남자는 결코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남자를 달래는 여자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서려 있습니다. 칼을 든 시종의 얼굴에는 체념이 읽힙니다. 계단에 놓여 있는 갑옷은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남자의 심리 상태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의무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내가 정상적인 사회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권리도 아울러 포기하는 것이 되지요. 그렇다면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남편이 죽고 나자 레이턴의 어머니는 베드포드 파크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서 여학교를 운영합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는 충분한 수입이 되었지만 자라나는 아들에게는 바람직한 환경이 아니라고 판단한 그의 어머니는 레이턴을 기숙학교로 보냈습니다. 훗날 레이턴은 그 시절을 ‘극도로 불행했고 충분히 먹지 못한 시기였다’고 기록했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인 것은 세상 어디엘 가도 똑같습니다.

군대 소집령 Call to Arms, 1888


이럴 수가 있을까요? 막 결혼식을 끝내고 신부의 손을 잡고 나오는 남자 앞에 군대 소집령이 내렸습니다. 갑옷을 입은 남자는 단호한 얼굴로 신랑에게 소집령을 전하고 있습니다. 신혼 첫날밤을 아무래도 남자는 병영에서 보내야 할 모양입니다. 계단 위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꽃잎들은 두 사람의 앞날에 대한 축하의 것이었겠지만 소집령이 내려진 지금은 오히려 불길해 보입니다. 신랑의 불끈 쥔 주먹이 재미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레이턴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화가라는 직업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화가로서 돈을 번다는 것은 당시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지요. 열두 살이 되던 해 상인이 되기 위해서 유니버스티 칼리지 학교에 입학 3년간 상인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합니다.


구애 Courtship, 1903, 59.06x38.1cm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여인을 지긋이 바라보는 남자의 눈길이 깊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악보 위에 부서지고 있고 다시 여인의 얼굴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림자 속에 있는 남자의 모습은 얼굴만 부각되어 다소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여인을 향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이해가 됩니다. 마음을 숨기고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혹시 기억나시는지요?


학교를 졸업한 레이턴은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선은 돈을 벌어야했습니다. 차(茶) 사업을 하는 회사에 입사, 돈을 벌면서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사우스 켄싱턴 미술학교 야간부에 등록, 미술 공부를 시작합니다. 가난하지만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좌표를 인생의 지도 위에 표시하고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겠지요. 더구나 10대에 말입니다.


알랭 샤르티에 Alain Chartie, 1903, 162 x114cm


잠이 든 남자에게 왕녀가 입맞춤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도 눈을 감고 있고 여인도 눈을 감고 있어서 분위기가 아주 낭만적입니다. 눈을 뜨고 있으면 좀 그렇지요. 알랭 샤르티에는15세기 프랑스의 시인이자 수필가였다고 합니다. 아마 그림 속 의자에 기대 잠이 든 남자가 알랭 샤르티에이겠지요. 계단 위의 여인들의 표정도 다양합니다. 느낌이지만 자신들이 마치 입맞춤을 하는 것처럼 들뜬 모습입니다. 기회가 되면 저도 왕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이 들고 싶습니다.


스물한 살이 되자 레이턴은 어느 정도 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할 자격을 얻습니다. 공부 기간은 5년이었는데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비한 돈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레이턴은 다시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일을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잡지에 흑백 삽화를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림 공부를 하는 중이었으니까 직업치고는 괜찮았군요.

<구애 Courtship / 60cm x 40cm


난간에 팔을 기대고 얼굴을 괸 남자의 표정이 간절합니다. 여인이 들고 있는 꽃 한 송이, 아마 남자가 건네준 것이겠지요. 여인의 표정은 아리송합니다. 손수건을 입에 문 것을 보니 싫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덥석 남자의 마음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된 모습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이렇게 달콤한 분위기 만들어지고 있는데 건너편에 있는 남자는 난리가 났습니다. “어이, 뱃사공! 나 좀 건네줘. 내 말 안 들려?” 한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아저씨라면 이런 상황에서 그 말이 들리겠습니까?


입학하던 해 그의 작품 한 점이 로열 아카데미에 전시되었습니다. 그다지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졸업을 하던 해인 1878년, 로열 아카데미 전시 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그의 작품 두 점이 전시되었을 때는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고 비평가들의 평도 좋았습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레이턴의 노력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호의 Favou, 66x 35cm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 여인이 서 있는데 마침 말을 타고 지나가던 남자가 여인과 눈이 맞았던 모양입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여인에게 말을 건네자 여인도 말을 받았겠지요. 남자가 모자를 벗어 꽃 한 송이를 요청하자 여인이 꽃을 꺾어 남자에게 던지는 중입니다. 남자가 꽃을 꺾어 여자에게 주는 것은 동서양의 오랜 구애의 표현인데, 이 작품 속에서는 여인이 더 적극적입니다.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누군가는 용감해야 하지요.


레이턴의 깔끔한 성격은 작품의 장식적인 묘사와 완성도 높은 마감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당대 많은 화가들이 풍경화와 정물화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중세와 19세기 초반 영국의 섭정시대(1811~1820)의 모습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낭만적인 사랑과 관련된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많은데, 생각해보면 남녀의 사랑 이야기만큼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가슴에 닿는 주제도 없지요.

행운을 빌어요 God Speed!


전장으로 나가는 남자의 행운을 비는 표시로 여인이 팔에 붉은 색 스카프를 매주고 있습니다. 여인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불안감이 있는데 남자는 당당한 얼굴입니다. 아치형 문 밖은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겠지요. 죽음과 삶이 순식간에 결정 되는 순간, 남자의 팔에 걸어준 스카프가 목숨을 건지는 부적으로 작용되기를 여인은 간절히 마음속으로 빌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아치형 문을 지나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갑니다. 부적들 가지고 계신가요?


1878년 레이턴의 작품이 로열 아카데미에 전시된 이후 매년 그의 작품은 40년 넘게 전시되었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아카데미 회원이 될 만도 한데 준회원도 되지 않았습니다. 못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특이한 경우죠. 그렇지만 1878년 냉햄 스케치 클럽의 회원이 되고 1880년에 회장이 된 것을 보면 나름대로 인간관계나 행정능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예쁜 얼굴들을 위한 리본과 레이스 Ribbons and Laces for Very Pretty Faces, 1904


리본과 레이스를 파는 방물장수가 집을 찾아오자 집에 있는 여인들이 모두 나왔습니다. 색색의 레이스와 리본을 본 여인들의 표정이 모두 다릅니다. 방물장수의 기가 막힌 언변이 재미있었는지 가장 어린 소녀는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고, 가운데 여인은 제품을 꼼꼼히 살피고 있습니다. 가장 적극적인 여인은 왼쪽 여인입니다. 그냥 두면 상자 안의 모든 제품을 다 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집 안의 안경 쓴 남자가 보이는지요? 이 상담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들 그만하고 문 닫아!”


1885년, 서른셋의 레이턴은 캐서린 내시와 결혼합니다. 둘 사이에는 아들과 딸을 각각 하나씩 두었는데, 아들은 나중에 레이턴처럼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 화가가 됩니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화가라는 같은 직업을 가진 셈인데, ‘예술 유전자는 분명히 존재한다’라는 말에 밑줄을 긋고 싶습니다.

작위 수여 The Accolade


영화 속 한 장면 같습니다. 기사 작위를 줄 때는 “신과 성 미카엘과 성 조지의 이름으로 나는 그대를 기사로 만드오니, 용감하고 예절 바르고 충성스러울지어다”라는 말과 더불어 기사 후보자의 어깨나 목을 칼등으로 세 번 두드렸다고 합니다(지식백과를 참조했습니다). 문득 저도 저렇게 누군가의 기사였던 시절이 있었겠지요. 지금은 차를 모는 기사가 더 제격이지만요.


레이턴은 중세와 19세기 초반의 장면을 그림에 담기 위해서 옛날 옷과 가구, 기구 그리고 심지어는 무기까지 엄청난 양을 수집했습니다. 만약 구하지 못한 옷이 있다면 그의 아내가 그가 고증한 바에 따라서 옷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화가의 아내가 남편의 그림 소재를 위해 재봉사 노릇을 한 것은 저도 처음 봅니다. 캐서린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확실한 ‘내조의 여왕’인 셈입니다.

왕과 거지 아가씨 The King and the Beggar-maid


왕이 왕관을 벗었습니다. 왕의 자리에 앉은 맨발의 여인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사연일까요? 원래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때의 민요 중에 코페투아라는 왕의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이 왕은 평생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지 여인을 만났는데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왕궁의 반대가 심했지요. 결국 왕관과 여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왕관을 버리고 여인을 선택한다는 아주 낭만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그림과 민요에만 존재할까요? 사랑이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그림 속 주인공입니다.


레이턴은 수집된 옷을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실물 크기의 인형에게 입혔다고 합니다. 그의 완벽하고 꼼꼼한 작품 구상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소재들은 그의 작품에 담겼는데 대부분의 작품들이 대작이었습니다. 라파엘전파는 아니었지만 라파엘전파의 멤버들과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1900년경, 레이턴은 자신의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하며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에드먼드 레이턴

웨딩 마치 The Wedding March, 1919, 34.61x38.74cm


작품 제작 연도를 보면 레이튼의 나이 예순일곱일 때의 작품입니다. 그림에 담긴 화사함과 맑음은 화가의 나이와 아무런 관계가 없군요. 초록이 우거진 길을 따라 결혼식을 끝내고 행진을 하는 신랑 신부 옆으로 들꽃들이 한창입니다. 구혼의 최종 목표는 결혼이고, 결혼의 최종 목표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완성을 향해 첫 걸음을 시작하는 부부에게 저도 축복의 말을 건네봅니다.


열정적이던 레이턴의 작품 활동도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줄어듭니다. 그래도 일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까지 활동을 했으니 대단한 정열이었죠. 가난했지만 조금씩 치밀하게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여전히 아직도 좌표를 그리고 있는 저에게 레이턴은 마냥 부러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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