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베로 - 19세기 후반 파리지엔의 일상을 낚다
“이 그림 그린 화가가 누군지 알아?” 아내가 불쑥 그림 한 점을 내밀었습니다. 요즘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쓰다보니까 가끔 저를 시험하는 것 같습니다.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유혹(개신교에서는 시험이라고 하죠)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틈만 있으면 아내는 함정을 파고 저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맞추면 본전이고 못 맞추면 꼴이 우습게 되는데 역시 이번에도 맞추지 못했습니다. 하느님, 제 아내 좀 말려주세요! 그 작품을 그린 화가는 장 베로(Jean Béraud, 1849-1935)인데, 19세기 후반 파리지엔들의 일상을 탁월하게 묘사했죠.
기사 양반, 집으로! Home, Driver!
예나 지금이나 택시를 타는 방법은 같습니다. 지나가는 마차를 세운 젊은 여인이 마부에게 자신의 집 위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마부가 승차 거부를 할까봐 문을 열고 한 발을 올린 것 같은데 떨떠름한 표정을 한 마부의 얼굴을 보면 여인이 가고자 하는 위치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여인의 예리한 눈빛은 그녀가 '택시 잡는 도사'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군요.
장 베로가 태어난 곳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입니다. 부모는 다 프랑스 사람이었는데 아버지가 재능 있는 조각가였고 장 베로가 태어날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성 이사악 성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는데 장 베로가 4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너무 어린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난 것이죠.
파리의 생드니 거리 Le Boulevard St. Denis, Paris
참 다양한 군상들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맨 오른쪽부터 빵집 아저씨,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며 한입 빵을 물고 있는 여인, 어딘가로 배달을 가는 소년, 관객을 바라보는 여인, 그리고 빵 먹는 소년의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는 개와 감기 때문에 큰 손수건으로 코를 풀고 있는 신사가 CF의 한 장면같이 각자의 동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로는 말 세 필이 끄는 만원 마차도 보입니다. 이 그림 속에 묘사된 시간은 아침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100여 년 전 파리의 출근시간의 모습이겠지요. 바쁘고 정신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똑같습니다.
술꾼 The Drinkers, 1908
언젠가 19세기 프랑스 예술계를 이해하는 아이콘 중의 하나가 압생트라고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악마의 음료라고도 불렸던 압생트가 이 작품에서도 등장했습니다. 담배를 문 남자는 이미 거나한 얼굴입니다. 반면 여자는 눈이 커졌습니다. 화가 난 얼굴인가 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너무 많이 취해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술기운이 끝없이 올라오는데 자꾸 말을 시키면 눈을 억지로라도 뜨고 초점을 맞추던 기억, 혹시 없으신가요?
장 베로의 어머니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아들과 함께 파리로 돌아옵니다. 남편 없는 타국 생활을 하기 쉽지 않았겠지요. 정규학교를 마치고 법률가가 되기 위해 법학을 공부하던 그에게 그의 생애를 바꾸는 일이 발생합니다. 프로이센과 프랑스 간의 전쟁, 보불전쟁이 일어난 것이죠.
첫 영성체 First Communion
이제 막 첫 영성체를 끝낸 아이들이 성당 문을 나서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첫 영성체가 갖는 의미를 잘 모르시겠지요. 미사를 드릴 때 신부님이 예수님의 몸이라고 하면서 밀전병을 주는데 성체를 모신다고 하죠. 아이들이 이 성체를 처음 받는 것을 첫 영성체라고 하는데 신앙인이 되는 시작이기도 합니다. 오늘 제가 다니는 성당에서도 첫 영성체 예식이 있었고 그림 속의 아이들처럼 흰옷을 입었습니다. 신부님은 자신이 어렸을 때 첫 영성체를 끝내고 착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다고 하시면서 웃으셨습니다. 그럼요, 흰옷이 아이들을 아주 훗날까지 그 색깔 그대로 지켜주기를 기도했습니다.
보불전쟁 중에 파리가 포위되었을 때 전령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장 베로는 법률가의 길을 포기하고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이런저런 자료를 들여다보았지만 그가 그런 결심을 한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상상을 해보면 전쟁이 주는 참혹함 앞에 법률은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예술가의 피가 뒤늦게 그의 머리와 심장을 뜨겁게 달궜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레스토랑에서 At the Bistro
비스트로는 작은 프랑스식 레스토랑을 말합니다. 돌아가는 세상이 영 못마땅한 사내가 있습니다. 호주머니에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는 것은 신문처럼 보이는데, 차림으로 봐서는 형편이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나머지 두 사람은 시큰둥한 얼굴입니다. 그래서 목에 핏줄을 세우며 말하는 사내의 목소리는 담배연기에 묻혀 아무런 감흥도 없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당시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레옹 보나(Léon Bonnat, 나중에 레옹 보나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보고 있으면 전율이 느껴지거든요.) 밑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초상화에 몰두했으나 엄격한 교육 방법과 당시 유행하던 인상파의 유혹이 그의 진로를 또 한 번 바꾸게 했습니다.
샹젤리제 거리의 모자 장수 The Milliner on the Champs-Élysées
비가 온 뒤 샹젤리제 거리에 여인이 등장했습니다. 여인의 직업은 모자 장수입니다. 그녀가 들고 있는 통에는 모자가 들어 있겠지요. 지금 파리에 나타나도 어색하지 않은 멋쟁이입니다. 날아갈 듯한 모자, 손에 가볍게 쥔 우산 그리고 우아한 맵시에 지나가던 신사도 잠시 눈길을 고정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처음 알게 된 일이지만 비가 온 뒤 마차가 지나가면서 파인 곳을 곧바로 정리하는 도로 관리인의 모습도 보이는데, 그림을 보다가 별것을 다 알게 되었습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았습니다.
장 베로는 인상파에게 끌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상파 친구들은 변화하는 풍경을 담기 위해 시골로 자리를 옮겼지만 장 베로는 오히려 파리의 중심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죠.
카푸신 거리 Boulevard des Capucines (모네의 작품)
카푸신 거리 Boulevard des Capucines (장 베로의 작품)
카푸신 거리를 묘사한 작품은 모네의 작품이 더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같은 장소를 묘사했지만 느낌은 이렇게 다릅니다. 기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보는 눈의 다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 보기가 늘 재미있는 이유입니다. 관객을 향해 고개를 돌린 여인이 도로 청소하는 물을 건너기 위해 치마를 살짝 움켜쥐었습니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사람 모두가 서로 다른 동작을 하고 있어서 스냅사진을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자세가 영 불안합니다. 저렇게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걷는 묘사가 자주 눈에 띄는데 당시 유행이었던가요...? 똑바로 세워주고 싶습니다.
길거리 장면 Street Scene
요즘 말로 하면 교통사고입니다. 달리던 말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놀란 마부는 말을 일으켜 세우려고 채찍을 들었고 승객은 놀라서 마차 문을 열고 나오는 중입니다. 경찰이 달려오고 참 소란한 장면인데 인도 위의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장 베로는 파리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파리지엔들의 생활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화폭에 참 근사하게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오늘날 파리의 모습이 완성된 것은 19세기 중엽입니다. 그 전까지 파리는 수많은 미로로 된 그저 그런 도시였는데 오스만(Georges Eugène Haussmann, 1809-1891)에 의해 파리의 재개발이 대대적으로 이뤄집니다. 미로가 사라지고 큰길이 새로 등장했습니다. 길 양쪽으로는 가로수를 심었습니다. 그러자 파리지엔들의 생활도 길을 따라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오후가 되면 화려한 옷차림의 여인들이 공원과 가로수 길을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자연스럽게 밤의 무도회나 카페에서의 모임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의 작품 중에도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은 새로 만들어진 파리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죠.
예술의 다리 Pont des arts
센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 중에 유일한 목조 다리인 ‘예술의 다리’입니다. 물론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여인이 목에 두른 스카프는 여인을 달고 하늘로 올라갈 것 같습니다. 신사들도 모자를 움켜쥐었습니다. 다리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맑은 날씨도 아닌데…. 하긴 흐르는 물위에 띄워 보낼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예전 내가 띄워 보냈던 것들은 어디쯤 흘러갔을까요.
장 베로가 파리를 묘사할 당시의 시대를 벨 에포크(Belle Époque , 영어로는 Beautiful Era)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하면 ‘좋은 시절’이라 합니다. 대략 1871년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를 말하는데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산업혁명도 막바지에 이르면서 막대한 부가 창출되었고 각종 기계장치가 발명되어 생활도 편해졌습니다. 말 그대로 돈 많은 상류사회 사람들에게는 황금기였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도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지금처럼 말입니다.
부자의 출근길 The Departure of Bourgeois
추운 겨울 돈 많은 부자가 출근하려고 문을 나서자 구걸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노인도 있고 거동이 불편한데 치통까지 심해 얼굴을 천으로 묶은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옆에 서 있는 소녀의 맨살이 애처롭습니다. 고개만 내밀고 입김을 뿜고 있는 사람도 밉고 못 본 척 마차로 발길을 옮기는 뚱뚱한 남자도 밉습니다. 흰 눈이 더욱 차갑게 다가옵니다. 장 베로는 그림 속에 사실에 바탕을 둔 유머를 섞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비아냥도 더했습니다. 아카데믹한 기법과 인상파 기법의 그 중간 어디쯤에 자신의 위치를 잡았지만 그가 존경했던 화가는 드가와 마네였습니다.
라 브라세리 La Brasserie
라 브라세리는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의 하나입니다. 다이애나 비가 교통사고로 죽기 전 들렀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흰 치마를 입은 여인들은 카페에서 일하는 여인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손님의 고민을 들어주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주문을 받는 모습도 보이고 손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덕분에 카페 분위기가 천박하지 않게 흐르고 있습니다.
장 베로는 길거리의 생생한 풍경을 그리기 위해 마차를 이용했습니다. 몽마르트에 있는 화실 말고도 이동식 화실을 이용했는데 마차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 조그만 창을 달아서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그린 것이죠. 요즘으로 말하면 몰래 카메라?
편지 The Letter
이것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얼마나 심각한지 남자는 미간이 좁혀졌고 담배를 입에서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의 말을 옮겨 적는 여인의 표정은 너무 차분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요? 연인은 아닌 것 같고 사장과 비서? 사장치고는 머리 스타일이나 옷차림이 후줄근해 보입니다. 혹시 작가와 그 비서? 그럴듯해 보입니다만,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인이 쓰고 있는 편지의 내용은 정말 궁금합니다.
기다림 The Wait
길거리에서 사람을 두 시간 넘게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만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도 시간이 지나면 체념이 되고 증오가 됩니다. 느낌이지만 휘어진 길에 서 있는 남자는 꽤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발을 벌리고 서 있는 자세는 그리움의 모습은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요, 저렇게 당당하지 않거든요.
장 베로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항상 깍듯한 격식을 갖추었고 몸가짐은 절제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신랄한 말도 서슴지 않았지만 그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예술가로서 허영심이 없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파리에서도 가장 유행을 앞서가는 곳에 살았고 귀족계급과 부유층 사이에서도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평범한 일상이 그의 관심사였습니다. 음... 멋쟁이셨군요, 장 베로 선생님!
야간 무도회 La Bal Mabile
야외에서 야간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달려 있는 등불로 나뭇잎들은 반짝거리고 등은 별이 되었습니다. 적당히 어두운 화면 속에는 서로를 안고 있는 커플도 있고 테이블에 앉아 춤추는 커플을 지켜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둠 속에 사람들이 묻혀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야기들이 묶고 있습니다. 역시 어둠은 이야기를 만드는 최적의 배경입니다.
장 베로의 작품들 중에 인상파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아름다운 시대가 지나고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에게 그림을 의뢰하는 주문이 드물어졌습니다. 말년에는 건강 문제가 그를 괴롭혔는데 육체 피로와 우울증 같은 증세가 그를 짓눌렀습니다. 그가 그린 파리와 사람들은 그림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지만 시간은 그를 남겨두고 흘러가버렸습니다.
라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
라마르세예즈, 프랑스 국가죠. 모든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라마르세예즈를 합창하고 있습니다. 아마 혁명 기념일 같은 국경일이겠지요. 노인과 어린이 여자와 남자 그리고 일반일과 군인,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 모두가 한 화면 가득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노랫소리는 바람에 날리는 깃발을 타고 끝없이 하늘로 퍼져 가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저렇게 모두가 한자리에서 어떤 장벽도 없이 한목소리로 노래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의 강물에서 건져 올린 팔딱거리는 19세기 중반 파리지엔들, 다음에 파리를 갈 기회가 있으면 사방을 두리번거려서라도 그림 속의 그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