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제2절 불교의 핵심교리
6. 생활속의 연기법 수행
연기법 수행 ② - 기쁨 가득한 공존의 생활
공경과 감사의 생활로 연기법을 실천하게 되면,
자연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은
공경하고 감사할 대상들로 가득함을 깨닫게 된다.
농장의 농부와 산업 현장의 일꾼도,
학교의 선생님과 관공서의 공무원도,
철도나 버스 운전사들도 모두 고맙고 공경해야 할 분임을 알게 된다.
또한 물과 공기와 태양도 산과 나무, 강과 들녘도
나를 지탱해 주는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생태계 덕분에 건강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연기법을 공간적 관점에서 보면,
동시대의 지구촌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공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더불어 살면,
삶은 항상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연기법 수행의 둘째는 공존의 기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으면 살과 뼈 등은 흙[地]이 되어 돌아가고,
물과 피와 고름 등의 액체는 물[水]이 되어 흐르고,
몸의 열이나 따뜻한 기운 등은 대지의 열[火]로 전환되며,
우리 몸의 운동이나 혈액의 운동 등을 원활하게 해주었던 바람의 기운[風]은
대지의 움직임, 바람이 되어 흩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산하대지는 내 몸과 무관하지 않다.
내 몸은 결국 산하대지로 환원되며 산하대지는 바로 내 몸임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 어찌 남의 것을 대하듯 마구 뚫고 부수고 해칠 수 있단 말인가!
개발과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수백만 년 동안 우리와 함께 해 온
산을 뚫고 부수어 바다의 갯벌을 막는다.
갯벌 속의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간다.
늦은 밤에 공장에서 폐수를 방출하고,
공장의 굴뚝에서 마구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휴지와 음식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아무 곳에서나 침을 뱉고 코를 푼다.
이 세계는 더불어 살아야
참으로 살맛나는 환희와 기쁨의 세상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는 것이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인류가
진작부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이 연기의 진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처럼 오존층이 파괴되어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물이 오염되어 정수된 물을 사먹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 중심의 태도를 버리고
산하대지와 공존하고 더불어 살아갈 때
자연은 우리에게 기쁨과 환희로 보답해 준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변화무쌍한 자태를 뽐내며
산하대지는 인간들에게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반면에 연기법을 무시한 채 인간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으로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우주의 생태계 질서를 교란시키게 되면
반드시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여 머지않아 인류는 공멸할지도 모른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등과의 더불어 사는 것 또한 기쁨을 주는 생활이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픈 인생이라 하더라도
혼자가 아니라 많은 고마운 이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
삶이 신나고 즐거운 것이다.
그러나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생활에서 연기법을 잊고 살면
그 즉시 즐거움이 괴로움으로 바뀐다.
경쟁 사회에서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승진하며
더 빨리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끝이 없다.
내가 승진하기 위해서 동료가 퇴출당해야 하며
내 아들 딸이 대학입시에 합격하기 위해서 다른 아이들이 떨어져야 한다.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내가 피해를 보면서까지 다른 사람이 잘 한 것
혹은 잘 되는 것을 기뻐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나의 이익을 접고 남의 이익에 찬사를 보내고 기뻐한다는 것은
성인군자가 아니고는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사고의 발상을 바꾸어 연기법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이 그리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네트워크 시대에는 공존의 밀도가 고도화되기 때문에
‘나만 혼자 잘 살고 남들은 못 살아도 상관없다’는
구태의연한 태도를 가진 자는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능지수를 IQ(Intelligence Quotient)라 하고
감성지수를 EQ(Emotion Quotient)라 하듯이
정보화 사회에서 서로 공존하며 살 수 있는 능력을 공존지수,
즉 NQ(Network Quotient)라 한다.
공존지수가 정보화 사회의 삶을 영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측면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불교적으로 말하면, 지금 우리 인류 맞이하고 있는 네트워크 시대는
연기법의 응용이 극대화된다는 의미이다.
농경시대에 사용했던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 보다는
네트워크 시대에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란 말이 더 설득력 있고 적합하다는 것이다.
즉 NQ시대의 생존전략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가 아니라
‘네가 잘 살아야 나도 잘 산다’는 공존의 법칙이 유효하다.
갈수록 복합적인 상호관계성이 확대되는 사회에서
자기만 잘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실패는 물론이고,
자신과 관계된 다른 사람에게도 큰 피해를 입힌다.
더불어 공존하면 모두가 기쁘고 즐겁지만
남을 이기기 위해 짓밟으면 함께 슬프고 비참해진다.
그러므로 연기법 수행을 실천하는 이는
큰 것은 물론이고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고 함께 기뻐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고,
북경에 있는 나비의 펄럭이는 날갯짓이 아마존 유역의 태풍의 원인이 된다.
미시적 변화가 거시적 변화를 가져온다.
옆집 개가 새끼를 낳아도 기뻐할 일이요,
갑돌이네가 산 주식이 껑충 뛰는 것도 기뻐할 일이다.
앞집 소녀 가장 영희가 그 어려운 와중에도 공부를 잘하여
장학생이 된 것도 기뻐할 일이다.
이처럼 연기적 관점에서 보면
세상이 온통 기쁨과 환희로 충만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연기법의 시ㆍ공간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삶은 항상 공경과 감사 그리고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이런 연기법의 원리를 바로 적용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이 원리를 머리로는 이해하여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함께 입사한 직장 동료가 쾌속 승진하는 것을 보면
심통이 나고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법이다.
당장 ‘누이 좋고 매부 좋고’란 생각을 하여
동료에게 진심으로 찬사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힘들이지 않고 더불어 기뻐하고 좋아할 수 있다면,
위에서 말했듯이 네트워크 시대의 공존지수가 매우 높은 연기법 수행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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