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궁궐,왕릉 이야기

왕릉이야기. 제13대 명종-강릉

문성식 2010. 8. 26. 20:53

 

  제13대 명종(明宗)과 인순왕후(仁順王后) - 강릉(康陵)

 

 

13.명종 - 강릉(康陵)

소재지 :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산233-19
사   적 : 제 201 호

康陵의 특징
: 明宗(이환; 1534-1567, 재위 22년)과 비(妃) 인순왕후 심씨(仁順王后 沈氏; 1532-1575)의 강릉은 현재 원형보존을 위해 비공개 능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명종의 생모 문정왕후(文定王后;중종의 제2계비)의 태릉(泰陵)과 함께 능 위치나 의미에 많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능이라면 태릉 입구에라도 강릉(康陵)에 대한 보다 자세한 안내나 설명이 아쉽습니다.
 왕과 왕비의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조성되었고, 두 능의 봉분에는 모두 병풍석(屛風石)을 두르고 난간석(欄干石)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좌우측 무인석(武人石)의 외형이 서로 다르게 생긴 것입니다.
 사료(史料)에 의하면 선조 4년[1571년]에 강릉(康陵)의 정자각(丁字閣)에 화재가 나자 임금과 세자가 의복을 갈아입고 풍악(風樂)을 금하며 반찬 수를 줄이는 등 근신(謹愼)의 예를 다했다고 합니다.

明宗代의 사료

연도

재위

사  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1546

1년

7월, 서경덕(徐敬德) 사망{1489- }

1555

10년

5월, 이윤경 왜적 대파 {을묘왜변}

1548

3년

10월, 이황(李滉) 풍기군수(豊基郡守)됨

1556

11년

2월, 왜구 대비로 무과(武科) 실시

1550

5년

10월, <중종실록><인종실록> 완성

1557

12년

8월, 세자 책봉례(世子冊封禮) 행함

12월, 선(禪)교(敎)양종(兩宗)을 다시 둠

12월, 폐비 신씨{단경왕후}죽음{1487- }

1551

6년

6월, 보우(普雨) 봉은사 주지 됨

1559

14년

3월, 황해도 의적(義賊)임꺽정 횡행

1552

7년

4월, 선과를 둠

1563

18년

9월, 왕세자 죽음

1553

8년

7월, 대왕대비 정치(政治) 왕에게 넘김

1565

20년

4월, 대왕대비{문정왕후} 승하{1501- }

1554

9년

9월, 경복궁 중건 및 동궁(東宮)조성

6월, 제주목사(牧使) 보우 장살(杖殺)

1555

10년

5월 전라도 달량포에 왜변(倭變)

1567

22년

6월, 왕 승하-하성군 전위-왕대비 섭정

뒷 이야기
 : 명종(明宗)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권력을 움직일 수 없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곧 생모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섭정(攝政)은 외척(外戚)의 전횡(專橫)이라는 비리를 양산하게 되고 국정의 혼란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복형제(異服兄弟)의 왕위 계승이 이어진 것도 권력 암투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명종대의 권력의 문란함은 내외의 혼란을 야기시켜 밖으로는 '을묘왜변(乙卯倭變)', 안으로는 임꺽정(林巨正) 같은 군도(群盜)의 만연 등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는 사건들이 이어지게 됩니다.

 인순왕후 심씨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심강(沈鋼)의 딸로 태어나 명종과의 슬하에 순회세자(順懷世子)를  두었으나 세자가 어린 나이에 요절하게 되어 슬하의 자식으로 역시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명종(明宗) 승하 후 중종(中宗)의 일곱 번째 아들이었던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셋째 아들{선조(宣祖)}이 14대 왕위에 즉위하게 됩니다. 

 

 

출처 :문화 사랑 오솔길 원문보기   글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