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묵 | 보물 제7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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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남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61 |
소재지 | |
지정일 | 1984.11.30 |
수량/면적 | 1기 |
시대 | 백제 |
소유자 | 국유, 사유 |
관리자 | 예산군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불상.
이 석불(石佛)은 자연석(自然石)의 네 면에 불상(佛像)을 조각한 것으로 백제사면불(百濟四面佛)로는 유일하다. 사면불이란 일명 사방불(四方佛)이라고도 하는데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방위(方位)에 따라 사방정토(四方淨土)에 군림(君臨)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약사불(藥師佛), 아미타불(阿彌陀佛), 석가불(釋迦佛), 미륵불(彌勒佛)을 말한다.
이 불상의 특징은 소발(素髮)인데 불두(佛頭)에 비해 육계(肉계)가 작고 광배(光背)에 조식(彫飾)된 불꽃무늬나 연꽃무늬는 백제 특유의 양식(樣式)을 나타내고 있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옷주름이 매우 깊으며 가슴 아래의 옷주름은 U자형(字形)으로 겹쳐 있다. 발목 끝까지 내려온 옷자락은 고식(古式)인 Ω형(形)으로 되어 있다.
이 불상은 서산(瑞山)과 태안(泰安)의 마애불(磨崖佛)과 비교되는 우수한 작품(作品)으로 당시의 불교사(佛敎史)와 미술사(美術史) 연구(硏究)에 귀중한 자료(資料)가 된다.
땅 속에 묻혀있던 것을 1983년에 발굴(국립공주박물관)하여 보물로 지정·관리하고 있으며, 석불의 전체 높이는 310㎝, 최대폭은 140㎝이며 두께는 80㎝이다.
원래 암반 위에 돌출한 돌기둥을 4면으로 깎아 각 면에 사방불상을 새긴 것이다. 돌기둥은 원래 남북 면이 넓고 동서 면이 보다 좁은 것인 듯 현재 원모습대로 다듬어 남·북·동·서의 순차에 따라 너비가 좁아지고 있다.
가장 넓은 남면에는 좌상을 새기고 동·북·서면에는 입불(立佛)을 새겼다. 남면불이 이 돌기둥의 주불(主佛)로 생각되며, 따라서 불전(佛殿)의 주불도 남방불로 생각된다. 이와 유사한 형식의 사방불로는 경주 굴불사지사면석불(掘佛寺址四面石佛)이 있다. 단지, 굴불사사방불은 본존불이 좌불상으로 봉안되지 않은 것이 다를 뿐이다.
남면 남방불상(南方佛像)은 현재 머리, 두 손, 오른쪽 무릎 부분 등이 파손되었다. 하지만 발굴 때 머리의 발견으로 원모습을 충분히 복원하여 볼 수 있다. 얼굴에 표현된 미묘한 묘사는 잘 알아볼 수 없도록 깨어졌지만 전체 윤곽에서 듬직하고 박력 있는 불력(佛力)을 느낄 수 있다.
체구는 두꺼운 옷 속에 감싸여 있어서 가슴이나 배 등의 양감 표현이 없다. 하지만 장대한 상체에 어깨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흘러내렸으며, 전체적인 윤곽이 퍽 세련되어 당대의 뛰어난 걸작으로 생각된다.
두 손은 결실되었지만 손을 끼우던 구멍 자리와 출토된 손 모양으로 보아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을 짓고 있었으리라 본다.
불의는 통견의로 오른쪽 어깨를 덮어 내린 대의(大衣)의 한 자락은 가슴을 거쳐 배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왼쪽 어깨를 덮어 내린 대의의 한 자락은 거의 직선에 가깝게 흘러내려 다리를 거쳐 상현좌(裳懸座 : 불상의 옷주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대좌)를 이루고 있다.
직선적인 옷주름이나 평행 계단식의 힘차고 강인한 주름선은 인도 굽타 불상을 기원으로 하는 운강석굴 불상에 유행되었던 고식(古式)을 따르고 있어서 퍽 주목된다. 특히 대의 안에 비슷한 불의를 입고 있는데 이것은 상의(上衣)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광배는 160㎝나 되는 거대한 주형 거신광(舟形擧身光)이다. 두광(頭光)은 연꽃무늬·빗살무늬·덩굴무늬가 차례로 새겨졌으며, 이 주위로 불꽃무늬가 외곽으로 새겨져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이나 익산연동리석불좌상(보물 제45호)과도 친연성이 있지만 소박하면서 박진감 나는 것이어서 보다 고식으로 평가된다.
동면 동방불상은 입상인데 남방좌불상보다 다소 소박하고 단순한 면도 보인다. 등신대(等身大)의 이 불상은 비교적 당당하고 세련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즉, 넓은 가슴, 균형 잡힌 어깨와 양감 있는 팔, 자연스러우면서도 곧은 하체 등에서 이 불상의 우아하고 세련된 형태미를 볼 수 있다.
통견의 불의는 소박하면서도 단순하게 처리되었지만 산뜻하고 우아한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광배는 8엽의 단판연화문(單瓣蓮花文 : 홑잎의 연꽃잎무늬)을 새긴 두광만 있을 뿐 신광은 내만한 처리로 대신하고 있다.
북면 북방불상은 동방불상과 흡사하지만 노출되었던 부분도 있어서 원모습에서 어느 정도 변형되었다. 서면 서방불상은 전면 노출되어 마멸 때문에 원모습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이러한 사방불상의 특징은 중국의 공현석굴(鞏縣石窟)의 1·3·4굴(517∼528년)과 친연성이 가장 강하고 용문 양식(494∼525년)과 상통한다. 그리고 백제의 서산마애불 등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보다 선행한 양식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백제 작으로 자랑할 수 있는 작품 중 가장 이른 것이며, 세련미에서는 서산마애불에 버금갈 만한 중요한 대작이라 하겠다.
또한 이 불상들은 우리 나라 최초의 석조사방불이라 할 수 있으므로 그 조형 의지상 의미심장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불상은 우리 나라 조각사 연구 내지 백제 미술사상 가장 귀중한 작품의 하나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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