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79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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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 중구 |
소재지 | . |
지정일 | 1984.08.31 |
수량 | 1개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이헌 |
관리자 | 박재옥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조선 전기의 백자편병. 높이 23㎝.
약간 밖으로 말린 주둥이와 양쪽으로 편평한 둥근 몸체에 타원형의 굽다리가 붙어 있는 편병으로, 양측면에 몸체를 나누어 만들어서 붙인 자국이 남아 있다. 기벽과 굽다리는 두껍게 하고 주둥이는 얇게 만들었다.
양쪽의 둥근 면 가운데와 가장자리에는 흑상감수법(黑象嵌手法)으로 각각 두줄과 세줄의 원을 두르고 그 사이에 모란엽문(牡丹葉文)을 대칭으로 포치하였는데, 모란잎은 면상감(面象嵌)으로 거칠게 나타내어 농담이 있다. 가운데의 이중으로 된 원에는 당초문(唐草文)이 한두 가지씩 뻗어 있다. 유색(釉色)은 담회백색(淡灰白色)으로 반투명유이며, 태토(胎土) 역시 담회색이다.
굽다리는 타원형으로 따로 만들어 붙였으며 모래받침으로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상감기법의 백자는 고려시대의 상감백자로부터 비롯되어,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문양이 간략해지거나 단순해지고 큼직하게 시문되어 조선시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있으며, 조선시대 초기인 15세기 전·후기에 걸쳐 널리 만들어졌다.
이처럼 기형에 양감이 있는 당당한 모습에 양쪽 면이 편평하게 된 편병은 예가 드문 것으로, 시문된 문양도 대담할 뿐 아니라 좌우면에 변화가 있어 다양한 구성을 보여준다. 야외용의 술병이나 물병으로 사용되었으며, 경기도 광주군일대의 우산리·무갑리 요지 등이 제작지로 알려져 있다.
몸체를 둘로 나누어 만든 다음 중앙부에서 붙였으므로 측면 중앙에 붙인 자국이 남아 있다. 굽다리도 주둥이도 다 따로 만들어 붙였다. 치밀질(緻密質) 백자(白磁)로 태토(胎土)는 담회색(淡灰色)이며, 유약(釉藥)은 반투명성(半透明性)이고 표면 발색(發色)은 담회백색이다. 기벽(器壁) ·굽다리 등이 모두 두꺼운데, 주둥이만은 얇게 만들어 경쾌한 맛이 있다.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은 자토상감을 했는데, 모란잎은 면상감(面象嵌)이지만 전체를 깊이 파내지 않고, 상감한 뒤에 거칠게 깎아 냈기 때문에 농담(濃淡)이 생겼다. 문양 구성은 양쪽의 둥근 면(面) 가장자리에 각각 2줄과 3줄의 원(圓)을 두르고, 둥근 면(面) 중심에도 2줄씩의 원을 나타냈으며, 그 사이에 모란엽문(牡丹葉文)을 배치하였다. 주연원(周緣圓)이 2중으로 된 원면문양은 주연원 좌우 중앙부에서 모란엽 두 가지가 안으로 뻗어 나왔으며, 중심원(中心圓)으로부터 아래위로 모란엽 두 가지가 뻗어 나왔다. 각 모란엽 중심에서 선상(線狀)의 당초문(唐草文)이 한 두 가지씩 뻗어 나왔다.
주연원이 3중원(重圓)으로 된 원면문양은 주연원이 향우측(向右側) 상부(上部)와 향좌측(向左側)에서 모란엽이 뻗어 나왔으며, 중심원 향좌측 상부와 주연원 향우측 상부가 서로 상대하고 있는 곳에서는 당초문(唐草文)과 흡사한 파초엽문(芭蕉葉文)이 작으마하게 뻗어 나왔다. 기형(器型)에 양감(量感)이 있는 당당한 모양은 조선 초기의 특색이지만, 양쪽 주면(主面)이 편평(扁平)하게 되어 있는 이 같은 편병(扁甁)양식은 조선 초기로서는 초유(初有)의 희귀한 양식이다. 문양도 대담하고 좌우면(左右面)에 변화가 있어 다양한 구성을 보여 준다. 굽은 굽다리굽으로 타원형이며, 모래받침으로 구웠다. 15세기, 경기도 광주(廣州) 일대의 관요(官窯)에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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