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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문성식 2015. 8. 23. 20:54

수원화성 과학적 설계와 독창적 디자인의 만남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은<br>조선 시대에 지어진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수원 화성은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입니다. 그래서 1997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습니다. 화성이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원본이 아닌 것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화성의 여러 시설 가운데 온전하게 남아 있던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우선 일제기에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6.25 전쟁 때 시가전으로 또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장안문같은 경우는 윗부분인 문루가 반 이상이 날아갔고 포루와 공심돈으로 불리는 성벽 위의 건축물 등도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은 1975년 이후에 시작된 복원 공사의 결과입니다.

현재의 수원 화성은 6.25 전쟁 때 파손된 부분을 복원한 것이다.

시공에 대한 완벽한 기록, <화성성역의궤>를 통해 복구

이와 관련해 유네스코 한국본부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측의 요청에 따라 화성에 온 심사관들은 처음에 아주 의아한 얼굴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감히 이런 복제품을 가지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생각을 했느냐고 말입니다. 그때 우리 측이 제시한 것이 그 유명한 <화성성역의궤>이었습니다. 이 책은 화성 건축에 관한 완벽한 공사기록서로 한국건축사상 가장 정확하고 풍부한 내용을 가진 보고서입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조선의 뛰어난 기록정신을 다시금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그야말로 공사에 관한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는데 공사 일정, 관계자 명단, 공문서, 장인 명단과 지급 노임 규정, 자재 명칭과 수요, 들어간 비용 내역 등이 그것입니다. 이 책에는 특히 시설물들을 그림으로 설명한 도설(圖說)이 있어 한국 정부는 이것을 바탕으로 화성을 완벽하게 복원했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의 실력으로는 이렇게 완벽하게 복원할 수 없었는데 의궤가 워낙 훌륭해 완전 복원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궤를 꼼꼼하게 확인한 유네스코 관계자들은 그제야 수긍하고 등재를 허락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훌륭하게 복원이 됐는지 전문가가 아니면 복제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한국 건축의 대가인 김봉렬 교수에 따르면 수원 화성은 한국 건축사상 디자인적으로 볼 때 돌연변이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과거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히 뛰어난 건축물이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예비 실험도 없었고 또 시행착오도 없이 이런 건축이 가능했다는 게 대단하다는 것이죠. 화성은 성이니 일차적으로 군사시설입니다. 그래서 아주 튼튼하게 지어져야 하는데 화성은 물론 이렇게 건설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군사시설이라 하기에는 너무 아름답습니다. 특히 ‘방화슈류정’이라 불리는 동북각루를 보십시오. 성 밖에 있는 연못과 같이 보면 별서(別墅)와 같은 휴식 공간처럼 보이지 군사 시설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화성의 독창적인 디자인

화성은 그 디자인이 독창적입니다. 보다 효과적인 방어를 위해 건설한 것 가운데 성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킨 ‘치성’이나 성문 밖에 동그랗게 쌓은 ‘옹성’ 등이 그렇습니다. 특히 치성 위에는 전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공심돈이나 다양한 루(樓)와 대(臺) 등 여러 가지 특수시설이 설치되었습니다. 이런 시설들은 모두 중국의 것들을 모방해서 만든 것입니다. 또 벽돌이라는 신소재도 사용했는데 이것도 다 중국에서 사용되던 것입니다. 그런데 획일적이고 단순, 반복적인 중국 성곽과는 달리 화성에서는 변화와 통일성이 엿보입니다. 그래서 명품이라는 것이지요.

둘레 5.4Km, 40여개의 건물들이 모인 대형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계획 덕택에 공사 시간은 약 2년 반 밖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d’n’c at ko.wikipedia.org/nagyman at ko.wikipedia.org)

게다가 이런 명품을 아주 단 기간에 완성시켰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화성은 성의 둘레가 5.4km 남짓 되고 갖가지 건물들이 40개가 넘는 대단히 큰 건축물인데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9월에 완성됩니다. 그러니까 약 2년 반 만에 공사를 마친 것인데 이것은 당시의 기술 수준을 생각해볼 때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천재적인 학자인 ‘정약용’이 계획했고 뛰어난 정치가인 ‘채제공’이 건설, 감독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뛰어난 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조라는 조선 최고의 개혁 군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조 대는 조선의 르네상스기라 불릴 정도로 잊혀 있었던 조선 문화가 다시 만개했습니다.

정조와 정약용, 그리고 채제공의 합작

화성은 정약용의 실학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그가 발명한 거중기는 화성 축조에 사용되었다.
<출처: jjw at ko.wikipedia.org>

이 화성의 건립에 대해서는 보통 정조가 불운하게 생을 마친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신도시를 건설했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그러나 단지 아버지의 묘소를 옮기기 위해 신도시를 건설했다기보다는 당시의 찌든 당파정치를 개혁하려는 의도 아래 그런 일을 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보통 개혁을 꿈꾸는 군주들은 수도를 이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수도에서 과도한 세를 뽐내는 권신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아예 수도를 옮기는 것이죠. 그래서 정조는 아버지 묘소의 이전을 핑계 삼아 수원을 신도시로 만들고 장차 수도를 옮기려고 했던 것입니다. 정조는 이를 위해 수원에 대해서 조세나 부역의 감면, 혹은 잦은 과거의 실시, 시장의 형성 등 파격적인 조치를 합니다. 지금도 수원 갈비는 유명한데 그것은 정조가 농가에 소를 대여해주어 소시장이 커진 결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수원을 새 수도로 만들어 천도하려고 했던 정조의 의도는 그가 49세 때 돌연 사망함으로써 실현에 옮기지 못하게 됩니다.

 

어떻든 정조의 명을 받은 다산은 수많은 연구 끝에 <성설(城說)>과 같은 공사계획서를 꼼꼼하게 썼고 그것에 따라 화성을 건축합니다. 다산은 당시까지 이어온 실학을 계승하여, 북학파처럼 개방적이고 홍대용처럼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실용적인 정신이 강했으며 백과전서적인 지식을 지닌 최고의 지성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기계도 많이 만들어냅니다. 대표적인 것이 거중기입니다. 이것은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수동식 크레인인데 중국 것보다 무려 4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재료인 벽돌을 사용하여 기능이나 아름다움을 한층 더 고양시켰습니다. 벽돌은 홍예문이나 공심돈 등 원형이나 곡선형 시설물들을 만드는 데에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야 튼튼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공사비를 보면 절반 이상을 재료의 운반비와 인건비에 썼습니다. 특히 노임은 장인은 물론 노비들에게도 지급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우수한 기술과 노동력이 잘 발휘될 수 있었습니다.

전투에 효율적인 시설들

화성은 평지에 만드는 평성에 산성의 전투력을 가미하여 만든 것입니다. 조선은 원래 평성을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평성은 적의 침략에 극히 취약합니다. 그래서 전쟁 시 평성을 포기하고 산성으로 옮겨가게 되는데 정조는 이 둘을 합해서 화성에 실현시킨 것입니다. 한쪽은 팔달산과 연결시켜 산성을 만들고 평성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위에서 본 갖가지 시설을 만들어 전투에 매우 효율적으로 임합니다. 4개의 성문(이 가운데 팔달문화서문은 보물로 지정됨)과 그 옆에 있는 높은 감시소인 적대, 성 밖의 동태를 살피는 지휘소인 노대, 전망대면서 공격소인 공심돈, 화포 공격이 가능한 토치카 같은 포루(砲樓), 소대본부격인 포루(鋪樓), 지휘소인 장대, 그리고 치성이나 옹성 등 전투에 필요한 시설들이 끝이 없습니다. 화성을 이렇게 작은 지면에 다 설명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습니다. 여기서는 이 화성을 통해 우리에게는 지금으로부터 약 2백여 년 전에 이렇게 훌륭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했으면 합니다. 조선은 그렇게 허약한 나라가 아니라 창조적인 힘을 지녔던 나라라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팔달산과 연결된 부분에는 산성을 짓고 평지 영역에는 전투 시설과 방어 시설을 구성하여 공격에 쉽게 함몰되지 않도록 축조되었다. <출처: nagyman at 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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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 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
발행201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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