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9.jpg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태사묘에 있는 고려 초기의 일괄유물.

 

태사묘는 고려 건국 때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토벌한 공로로 대광태사(大匡太師)의 벼슬이 하사된 3공신 김선평(金宣平)·권행(權幸)·장정필(張貞弼)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서, 1541년(중종 36)에 지어졌으나 6·25 때 전소되어 그뒤 복원한 건물이다.

 

이 사당은 조선 중종 37년(1542)에 세워진 것으로 한국전쟁 때 불에 타 1958년 다시 복원하였다. 현재 총 12종 22점에 달하는 유물들을 보물각에 보관하고 있다.

유물에는 붉은 칠을 한 1개의 잔과, 꽃무늬를 수 놓은 비단 1점, 수는 없으나 꽃무늬 장식이 있는 비단 6점, 검은색 관모 1개, 목이 긴 가죽신발 1켤레, 비단 천으로 만든 부채 1개, 구리로 만든 육면체 도장 2개, 놋쇠로 만든 뚜껑이 달린 합 1개, 옥으로 만든 관자 1개, 손상이 심한 허리띠 4개, 공민왕의 친필로 보이는 교지 1개, 동으로 만든 숟가락 1개와 젓가락 3개 등이 있다.

이곳에 소장된 3공신의 일괄유물은 관모·신발·과대·그릇·시저(匙箸)·포(布) 및 교지(敎旨) 등인데, 각각의 현상과 크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물 제451-1호 : 주칠탁잔(朱漆托盞) 1개

높이 4.5㎝. 대(臺)의 겉과 잔에는 주칠을 하였고, 대의 속면과 잔의 굽면에는 흑칠(黑漆)을 하였다. ⑥ 견포(絹布) 7편 : 견포는 크게 2종으로서, 1편에는 담황색 바탕에 화문수(花文繡)가 놓여 있다(길이 54㎝, 너비 49㎝). 또, 한 종류는 모두 6편으로서 수는 없으나 각종의 꽃무늬가 장식되었다(연두색 4종, 담홍색 1종, 적황색 1종)

 

보물 제451-2호 : 고견포<화견>(古絹布<花絹>)

유물 가운데 비단포는 2종류의 7점이 발견되었는데, 한 종류는 꽃무늬를 수놓은 것이고, 다른 종류는 수는 없으나 꽃무늬 장식이 있는 것이다.

이 비단포는 너비 49㎝, 길이 54㎝로 담황색 바탕에 꽃무늬가 수놓여 있는 것으로 1점이 남아 있다.

 

보물 제451-3호 : 고견포<무수>(古絹布<無繡>)

유물 가운데 비단포는 2종류의 7점이 발견되었는데, 한 종류는 꽃무늬를 수놓은 것이고, 다른 종류는 수는 없으나 꽃무늬 장식이 있는 것이다.

이 비단포는 수가 없는 것으로 길이와 너비가 각각 61㎝×300㎝, 66㎝×115㎝, 60㎝×164㎝, 61㎝×122㎝인 연두색의 4점과 51×123㎝의 담홍색, 58.5㎝×64㎝의 적황색이 남아 있다

 

보물 제451-4호 : 관(冠)

유물 가운데 이 모자는 윗부분이 사각이고 양 옆 수평으로 긴 날개가 달려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관모로, 조선시대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높이 20㎝, 양 날개 길이 21㎝로 검은색이며, 말총으로 만들어져 있다.

 

보물 제451-5호 : 신(履)

유물 가운데 높이 29㎝, 바닥길이 28㎝인 목이 길다란 가죽 신발이다. 신발 안쪽에는 마(麻)를 대었고, 바닥은 두꺼운 가죽을 여러 겹 대고 꿰매었다. 목은 청색의 마를 대었으며, 앞 축은 위로 말려 반원 모양을 하고 있다.

 

보물 제451-6호 : 포선(布扇)

유물 가운데 부채로, 비단천에 가는 나무로 앞과 뒤를 대어 고정시키고 나무로 손잡이를 만들었다. 현재 바탕천은 손상이 심한 편으로 전체 길이 47.5㎝, 손잡이 20.5㎝이고 윗너비는 26㎝이다.

 

보물 제451-7호 : 동인(銅印)

유물 가운데 동으로 만든 도장 2개로, 가로 4.2㎝, 세로 3.4㎝, 높이 3.4㎝의 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크기가 같다. 몸통 위에는 역시 육면체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으며, 밑바닥에는 글씨가 새겨있다.

 

보물 제451-8호 : 은구유개합(銀구鍮蓋盒)

유물 가운데 이 은구유개합은 놋쇠로 만든 것으로, 뚜껑이 달려 있는 합이다. 전체 높이 10.5㎝, 아가리 지름 13.8㎝로, 현재 은구는 떨어져 없어졌고 몸체의 일부도 파손되었다.

 

보물 제451-9호 : 옥관자(玉貫子)

유물 가운데 관자로, 관자(貫子)란 머리에 쓰는 망건의 당줄을 꿰는 고리이다. 이 사당에서 나온 관자는 옥으로 만들었으며 현재 2점이 남아있다. 지름 4.5㎝로 위에는 뚫어서 조각한 5개의 꽃이 있는데, 다른 한 개는 파손되어 2개의 꽃만 남아있다.

 

보물 제451-10호 : 혁과대(革?帶)

유물 가운데 이 혁대는 길이와 너비가 각각 142㎝×6㎝, 140㎝×5.5㎝, 172㎝×5㎝, 110㎝×4㎝의 4점으로 손상이 심한 편이다. 장식판 부분은 황동(黃銅)으로 만들었으며, 겉에는 꽃무늬를 새기고 안에는 포도와 덩굴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보물 제451-11호 : 교지(敎旨)

유물 가운데 이 교지는 공민왕이 친필로 공민왕 9년(1360)에 쓴 것이다. 가로 174㎝, 세로 61㎝ 의 한지에 검은 먹물로 썼다.

 

보물 제451-12호 : 동시저(銅匙箸)

유물 가운데 숫가락, 젓가락으로, 길이 28.4㎝의 숟가락 1개와 15.9㎝, 14.5㎝, 10.5㎝로 절단되어 있는 젓가락 3부분이다. 지금의 것과 모양이 비슷하며 동으로 만들어졌다.

숟가락은 음식을 담는 시면(匙面) 부분이 가늘고 길며, 손잡이가 굴곡이 없이 거의 직선을 이루다가 끝부분이 2가닥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런 모습은 고려 후기에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 태사묘 일괄유물은 관모·신발·과대·비단 등 고려시대 관제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3공신의 여러 유물이 흔재되어 있어 누구의 것인지 분명히 파악할 수 없으며, 교지와 숟가락 등에서 보이듯 고려 초기뿐 아니라 후기의 유물들도 상당수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