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15.jpg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4.63m.

 

단층의 낮은 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 오층석탑인데, 기단의 구성과 탑신(塔身)의 조형이 특색 있다.

기단은 지대석 위에 4매의 장대석을 놓은 간단한 구조로 짜여졌는데, 각 면에는 2좌(座)씩의 안상(眼象)을 조각하고 위에 갑석(甲石)을 표현한 얕은 턱이 둘러져 있다. 그 위에 별개의 석재로 만든 2단의 굄을 얹어서 탑신부를 받치게 하였다.

 

탑신부의 1층 옥신은 4매의 석재로 짜여졌으나 2층 이상은 옥신(屋身)과 옥개(屋蓋)가 각각 별석으로 제작되었다. 각 층 옥신석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조각하였고 옥개석 밑에는 3단씩의 받침이 있다.

 

처마는 귀에 가서 약간씩 들려서 고려시대 석탑의 특색이 나타나고 있으며, 또 추녀의 우각(隅角)에는 각 층마다 풍경을 단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둘레에는 연화문(蓮華文)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과 철제 찰주(擦柱 : 탑의 중심기둥)의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석탑은 형태가 고준하여 안정감이 부족한 느낌이 있으나 그 결구에는 정연한 규율성을 잃지 않았으며, 여러 부분에 특이한 수법을 보이고 있어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석탑이 세워졌던 절은 조선 숙종 때 폐사되었다고 하며, 그 이름도 천주사(天柱寺)·죽암사(竹巖寺) 등으로 전하여지고 있으나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1919년 이 탑의 상륜부에서 백지(60㎜×40㎝)에 먹으로 쓴 ‘乾統九年三月九日記(건통9년3월9일기)’의 당탑조성기(堂塔造成記)가 발견된 일이 있다. 건통 9년은 1109년(고려 예종 4)으로 이 석탑의 조성연대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명문은 건통 9년에서 206년 전, 즉 신라 효공왕 8년(904)에 황룡사 사문(沙門) 혜조가 이 석탑이 세워진 절의 주지로 있었으며, 이 절에 의지한 중대사(重大師) 학선이 7년 전 임오년(고려 숙종 7년, 1102)에 입사·화향(花香)하였고, 정해년(고려 예종 2년, 1107)에 발심하여 금당 1칸과 불좌(佛座)를 축조하고 석탑 5기를 새로 조성하였다는 것과 여기에 소용된 물명과 시행연유자의 이름을 열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