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 청원군 남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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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참조 및 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
사진출처 : | 2009년 2월 촬영 |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창건 및 연혁〕
775년(혜공왕 11)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창건 후 평안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양성하였다고 해서 안심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325년(충숙왕 12)에 원명국사(元明國師)가 중건하였고, 1613년(광해군 5)에는 비로전을 중건하였으며, 1626년(인조 4)에 송암(松庵)이 중수하였다.
사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으나, 앞에서 살펴본 사찰자료를 비롯하여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ㆍ『충청도읍지』ㆍ『호서읍지』ㆍ『청주읍지』ㆍ『환여승람』 등에 간략하게나마 안심사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전란기에 일시 폐사된 경우를 제외하면 조선시대 전 기간 동안 꾸준히 법등을 이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사찰은 원래 태고종 소속의 비구사찰이었던 것을, 1980년대 초에 조계종 비구니 묘전(妙典) 스님이 당시 사찰에 머물고 있던 비구니 지연스님으로부터 인계를 받아 본격적인 비구니도량으로 사세를 키워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891년에 조성된 대웅전 삼세후불탱(大雄殿 三世後佛幀) 화기(畵記)에 기록된 대시주자 및 중요 소임자에 비구니 명단이 대거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의 어느 시기부터 비구니사찰이었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여겨진다.
〔당우 및 문화재〕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영산전, 요사채 2동이 있다. 이 중 보물 제664호인 대웅전은 다포식 맞배집으로 건립연대는 미상이나 1672년(현종 13)에 중수하였다. 내부에는 삼존불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된 너비 6m, 길이 10.8m의 괘불(掛佛), 1885년(고종 22)에 만든 칠성탱(七星幀), 1891년에 제작한 후불탱화가 있다. 이 중 괘불은 1652년(효종 3)에 제작한 것이다. 또 대웅전 지붕에는 청기와 1매가 있다.
영산전은 1613년에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건립 당시에는 비로전이라 하였으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이 절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세존사리탑과 세존사리비, 신라시대의 석조여래좌상, 석탑부재 등이 있다. 이 세존사리탑은 진표율사가 이 절의 창건 당시 직접 조각하여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1901년에 세운 사리비에 의하면, 탑의 행방을 모르던 중 이 산중에서 발견되었고, 그것이 1881년에 구천동으로 옮겨졌던 것을 1900년에 광우(廣祐)·등원(等元)이 다시 이 절로 옮겨 왔다고 한다. 사리탑의 높이는 2m, 너비는 2.6m이며, 비의 높이는 2m, 너비는 60㎝, 두께는 25㎝이다.
지정문화재목록 및 해설
〔사찰풍경〕
안심사(安心寺)는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구룡산(九龍山) 기슭의 속칭 절골마을에 자리한 사찰이다. 사찰은 평탄한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송림에 둘러싸여 있다. 대웅전 앞마당 왼쪽 입구에 서 있는 수백년 된 회나무는 ‘도인이 나는 곳에 회나무가 있다’는 옛말과 함께 안심사의 명물 중 하나로서, 아래에는 평상이 놓여 있어 사찰을 찾는 이들의 아늑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지대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잔디와 숲, 작은 폭포와 연못ㆍ수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조경이 매우 아름답다.
〔설 화〕
안심사는 원래 태고종 사찰이었는데, 비구니도량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20년 정도 된다. 현재 안심사 큰스님이신 묘전(妙典)스님이 수원 봉영사 승가대학 초대 원장스님으로 계시다가 잠시 대구의 작은 토굴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 비구니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도량을 마련해야 겠다는 원을 세웠는데, 당시 안심사에 머물고 있던 지윤스님과 반연이 있어 이 절에 기거하게 되었다. 지윤스님은 “스님께서 그런 큰 뜻을 가지고 있다면 이 절을 한번 꾸려나가시라”고 하여 1980년대에 이 절에 와서 기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 충청도에 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여러 가지 여건이 어려워 중간에 그만 둘 뻔하기도 하였다.
동네사람들 말에 따르면, 이전에 안심사는 가정을 이룬 대처스님들이 머물고 있었다. 처음 절에 비구니스님들이 와보니까 정초나 명절마다 떡시루, 나물, 김밥 등을 해서 모두 독불공을 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스님들이 그건 안된다, 다함께 동참을 해야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여 바로잡았다. 그러자 동네사람들이 “이상한 지주님, 무서운 지주님이 오셨다”고들 하였다. 그뒤부터는 독불공이 없어지고 함께 동참을 하게 되었다. 처음 비구니스님들이 사찰에 왔을 때는 신도들이 사월초팔일 정도만 알고 있지, 백중도 모르고 침체된 상태였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오지 않아 이렇게 해서 어떻게 운영하나 걱정이 많았으나, 조금씩 자리가 잡히게 되었다.
이 절의 자료는 중건 전의 요사채에 불이 나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상태이다. 마을에 오래 살고 있던 이들의 말에 따르면 안심사는 고찰로서 예전에는 매우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중의 재산이 많아 동네사람들이 서로 소작을 지으려고 스님들께 농사지은 것과 삼계탕 등을 갖다드리며 왕처럼 받들었다고 한다. 요즘은 사중의 일을 하려고 해도 사람들을 볼 수 없을 정도였으나, 당시에는 사찰에 의해서 이 동네가 유지되었다. 부처님오신날이나 정초 때 불공드리러 오는 날이면 충남지역에서도 사람들이 북치고 장구치며 산을 넘어와서 안심사로 모여들어 사찰에서 묵고 자면서 불공을 올리고 갔다. 그래서 사월초파일이면 사람들이 안심사로 모여드느라 이 산이 온통 울긋불긋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안심사의 괘불탱을 ‘솔거그림’이라고 부르며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입구 왼편에 있는 회나무(피나무라고도 함)는 매우 오래된 귀한 나무인데, 옛날부터 “도인이 나는 곳에 회나무가 있다”는 말이 전한다.
청기와가 3개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예전에는 대웅전 오른쪽 옆에도 요사가 있었으며, 영산전의 불상 등 여러 가지 보물이 많았는데 대처승이 살던 시절에 모두 들고 나갔다고 한다. 그 부처님이 청주의 용장사(?)라는 곳에 모셔져 있다고 하여 주지 현인스님이 부처님을 찾아와야겠다고 하자, 큰스님이 부처님을 놓고 시비하면 안 된다고 말려서 그만두었다. 또한 괘불탱도 도난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리어카에 싣고 옥산까지 갔다가 너무 길어서 기차에 실을 수가 없자 도로 사찰에 갖다놓은 적이 있다.
교통안내
1) 경부 고속도로 천안 I.C.로 들어와 청주방면으로 약 3km정도 가다가 경부고속도로 이동 기점 전에서 좌회전하여 약 8km정도 가다가 척북리 삼거리에서 좌회전
2) 청원 I.C. - 우회전 - 청주 가는 갈래길 - 좌회전(린나이 안내판) - 좌회전(안심사 방향) - 안내판
현지교통
1)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옆 육거리에서 비룡행 버스 이용, 안심사 입구 하차 15~20분 소요,
안심사 입구 -- 안심사까지 도보로 30분 소요
2) 청주 시내에서 안심사까지 택시로 20분 소요
현지숙박
21세기파크, 리호관광호텔, 갤러리관광호텔, 청주관광호텔, 뉴베라관광호텔, 청주로얄관광호텔, 명진모텔, 에덴장파크, 샤넬
주변관광지
청남대, 문의 문화재단지, 양성산, 대청호, 우암산, 중앙공원, 쌍암동굴, 상수허브랜드, 청주동물원, 상당공원, 삼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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