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 남원시 도통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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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참조 및 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사진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 만행산(萬行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창건 및 연혁〕
선원사는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銑國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신라의 유서깊은 고찰이다. 창건배경에는 국사가 남쪽의 산천을 유력하다가 남원에 이르러 지형을 살피니 주산(主山)인 백공산(百工山:만행산)의 지세가 객산(客山)인 교룡산에 비해 너무 허약하여, 지세를 돋우고자 선원사를 비롯하여 만복사(萬福寺)ㆍ대복사(大福寺)를 창건했다는 설이 전한다.
또 한편으로 선원사가 자리한 백공산은 만행산의 한 줄기에 불과했는데, 굳이 만행산이라 한 것은 큰 산의 기운을 빌러 지세를 북돋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다. 사찰의 역사와 관련한 기록은 「선원사사적비(禪院寺事蹟碑)」를 비롯한 『범우고』ㆍ『가람고』ㆍ『용성지(龍城誌)』 등의 기록과, 사찰에 전하는 「선원사중수기(禪院寺重修記)」ㆍ「선원사요중창기(禪院寺寮重創記)」 등 여러 현판을 참고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옛 남원부의 읍지인 『용성지』에는 선원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선원사는 남원부 동쪽으로 3리 떨어진 평야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1048년 전인 당나라 희종(僖宗) 건부 2년, 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전쟁으로 없어진 뒤 수차례 흥폐를 거듭하였고, 사찰에는 약사여래로 모시는 금불상이 하나 있다. 1755년에 남원부사인 김세평이 중창하여 이 지방의 승려로 하여금 거주케 하였다. 위의 기록과 사적비 등을 통해 875년에 창건된 뒤 1755년(영조 31)에 김세평(金世平)이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초창기에는 당우 30여 동에 70~80명의 승려가 상주하는 대찰로서 만복사에 버금가는 규모였으며, 지금의 중앙초등학교 일대까지 사역(寺域)이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수차례의 흥폐를 거듭하다가 1597년 정유재란의 병화로 만복사와 함께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의 선원사는 1755년에 중창된 것으로, 당시 노계소(老?所)ㆍ신도계(信徒契)의 협의 아래 『용성지』에 기록된 ‘금불(金佛)’을 모신 약사전과 명월당을 중건하어 현재의 가람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남원지역의 중심사찰로서 1915년에는 괘불탱을 남원천변에 걸어 기우제를 지냈으며, 1917년에는 주지 수용기선(水龍琪善) 스님이 비로탱ㆍ신중탱ㆍ지장탱 등 수많은 탱화불사를 하였다.
1936년에는 주지 정법민(鄭法敏) 스님이 일주문을 비롯한 약사전을 중수하고, 칠성각을 비롯하여 칠성탱ㆍ독성탱ㆍ산신탱 등 선원사의 대대적인 불사를 이룩하였다.
1942년에는 1755년 조성된 괘불이 훼손되어 금어 퇴운(退耘)이 괘불을 조성하였으며, 1961년에는 주지 일학(一鶴)이 노계소ㆍ신도계의 보시를 받아 대웅전을 건립하고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의 불상을 봉안하였다. 그 뒤 1963년에는 주지 오일탁(吳一鐸) 스님이 명월당을 헐고 명부전을 지어 완주 위봉사의 시왕상을 봉안하였으며, 1969년에는 약사전 앞의 다보여래 오층석탑과 탑비들이 조성되었다.
1975년 주지 신법타스님이 약사전의 신중탱을 조성하고, 1976년에는 대웅전 석가삼존상과 약사여래불상의 개금과 함께 일주문을 단청하였으며, 1978년에 범종각의 범종을 조성하였다. 근래에는 주지 보관(普觀) 스님의 노력 하에 1996년 약사전 철불을 보수하고 선원사 도량 정화불사를 통해 남원시내의 포교중심도량으로 성장하였으며, 1985년 설립된 연꽃유치원을 개원하여 지역사회의 복지를 위한 전통사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당우 및 문화재〕
현존하는 당우로는 위의 것 외에 칠성각(七星閣)과 요사채가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약사전 안에 봉안된 철제여래좌상과 괘불(掛佛)이 있다. 선원사철조여래좌상은 보물 제422호로 지정되어 있고, 괘불은 김세평이 약사전을 재건할 때 제작한 것으로 총높이 12m, 너비 7.5m이다. 이 절은 남원 시내의 평지 절로서 고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광한루 등과 함께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사찰풍경〕
선원모종(禪院暮鐘) 울려퍼지는 남원의 비보사찰(裨補寺刹)
선원사는 신라 49대 헌강왕 원년(875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도선국사가 남원의 지세가 객산으로 힘이 센 교룡산을 누르고 주산으로 힘이 약한 백공산을 북돋아야 남원이 번창할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고 백공산의 모체는 천왕봉 밑 만행산 줄기이므로 만행산의 힘을 빌어 교룡산의 힘을 누르고저 백공산 날줄기 끝에 선원사를 창건하였다 한다. 사찰 창건당시 경내는 왕정동 만복사에 버금가는 큰 규모로 장관을 이루었으나 정유재란때 왜적에 의해 전소되었으며,
그후 영조 30년(1754년)부임한 김세평(金世平) 부사가 신도계와 협의, 이듬해 선원사를 복구하였다. 이 곳의 철조여래좌상(보물 제 422호), 동종 (지방유형 25호), 약사전 (지방유형 제 119호), 대웅전 (문화재 자료 45호)이 영화로웠던 사찰의 지난 모습을 들려준다.
〔교통정보〕
(1) 대중교통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여 남원에 도착한 후, 남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청까지 걸어가면 광한루원 못 미쳐 선원사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표지판을 따라 사잇길로 우회전하면 대로변에 선원사가 자리하고 있다. 선원사는 시내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선원사까지는 약 5분 정도 소요되는 가까운 거리이다. 전주에서 남원을 가게 될 경우,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원까지는 오전6시 10분부터 9시 40분까지 5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니며, 전주역에서는 오전 10시 56분부터 오후 3시 33분까지 한두 시간 간격으로 하루 11회의 기차가 운행된다.
(2)승용차
88고속도로를 타고 남원IC에서 빠져나와 우회전한 뒤 시내로 직진하면 백공산 사거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직진하여 시청ㆍ시의회라는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면, 시청을 지나 우측편에 선원사 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우회전하면 대로변에 선원사 표지판이 보이며, 돌담길을 따라 맞닿은 곳에 선원사 가람이 보인다. 남원IC에서 선원사까지는 10여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고, 남원시내 어디서든 선원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