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8.jpg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탑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탑신부 높이 2.1m.

 

속칭 ‘탑말, 탑마을’이라 부르는 마을에 건립되어 있는데 석탑이 서 있는 주변은 경작지로 변하였으며 주변에 기와편과 청자편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점으로 보아 일대가 옛 절터로 추정된다.

 

석탑은 기단부가 잡석에 파묻혀 있어 2층기단인지 단층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간단한 잡석 제거작업으로 넓적한 갑석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갑석 하면에는 부연이 있고 상면에 탑신부를 받는 3단의 굄대가 마련되어 있다. 탑신부는 각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이 1석씩으로 조성되어 차례로 놓여 있다.

 

탑신석은 각층에 양쪽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모각되어 있는데 초층탑신에는 4면에 1구씩의 좌상을 돋을새김하여 주목을 끈다. 각 면의 좌상은 앙련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둥근 두·신광을 구비하였으며 양쪽 귀가 길어서 준엄한 인상을 주고 있다.

각 면 모두 여래좌상으로 동쪽은 수인(手印)이 오른쪽을 들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였으며 남쪽은 지권인(智拳印)을 결하여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서쪽은 아미타여래상이며 북쪽은 항마촉지인을 결한 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하였는데 이렇게 초층탑신석에 사방불(四方佛)을 배치하고 각 면의 불상마다 연화좌나 두·신광을 조각하여 장엄을 이룬 예는 신라시대부터 보이고 있다.

 

각층 옥개석은 하면의 받침이 4단씩이고 낙수홈이 오목새김되었으며 상면에는 1단씩의 굄을 마련하여 그 위층의 탑신석을 받고 있는데 3층상면의 중앙에는 정4각형의 찰주공(擦柱孔, 5㎝×6㎝, 깊이 9.5㎝)이 마련되어 있다. 낙수면은 경사가 약간 급한 편이며 사면의 합각 끝에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있어 장식적인 석탑임을 알 수 있고 네 귀퉁이 전각의 경쾌한 반전으로 둔중한 느낌은 면하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석(露盤石) 하나가 남아 있을 뿐 그 이상의 부재는 없다. 노반석에는 상·하면 중심을 관통한 찰주공이 있다. 이 석탑은 초층탑신석 사방에 여래좌상을 배치한 양식이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유례와 흡사하나 기단갑석 상면의 탑신부굄 양식이나 각부의 건립양식 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의 건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