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국보 제1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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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 |
소재지 | 소태면 |
지정일 | 1979.05.22 |
수량 | 1기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국유(국립중앙박물관) |
관리자 | 충주시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청계산 중턱의 청룡사에 자리한 부도로,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본관 풍양(豊壤). 속성 조(趙). 자 무작(無作). 호 환암(幻庵). 시호 보각(普覺). 탑호 정혜원융(定慧圓融). 대선사(大禪師) 계송(繼松) 밑에서 승려가 되어 경전을 배우고, 1341년(충혜왕 복위 2) 승과(僧科)에 급제, 금강산에 들어가 2년간 공부하고 선원사(禪源寺)에서 《능엄경(楞嚴經)》을 연구하였다.
충주(忠州)의 청룡사(靑龍寺) 근처에 연회암(宴會庵)을 짓고 있던 중, 회암사(檜巖寺) 주지로 취임하라는 공민왕의 요청을 사양하고 오대산(五臺山) 신성암(神聖庵)으로 들어갔다. 1370년(공민왕 19) 공부선장(工夫選場)에서 단독으로 선발되었으나, 왕이 요직에 중용하려 하자 도피하여 봉황산(鳳凰山)에 숨었다.
4년 뒤 다시 소명을 받고 내불당(內佛堂)에서 왕에게 법요(法要)를 가르쳤으며, 우왕 초에 송광사(松廣寺) 주지를 지내고 1383년(우왕 9) 국사(國師)가 되었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편평한 대지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長臺石)으로 1단의 축대를 쌓고 그 중앙에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의 부도(浮屠)를 건립(建立)하였다. 기단부(基壇部)는 복련(覆蓮)을 새긴 하대석(下臺石)과 안상(眼象) 안에 사자상(獅子像)과 운룡문(雲龍紋)을 새긴 중대석(中臺石), 그리고 앙련(仰蓮)을 새긴 상대석(上臺石)으로 이루어졌다.
탑신부(塔身部)는 반룡(蟠龍)이 감긴 엔타시스의 우주(隅柱)를 조각하였고 그 위에는 창방(昌枋)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각면(各面)에는 무기를 든 신장상(神將像)이 1구(一軀)씩 양각되어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밑면 처마에 탑신(塔身) 우주(隅柱) 위의 창방(昌枋)머리와 접촉되는 부분이 보머리형을 이루고 있으며 추녀와 사래를 양각하였고 연화문(蓮華紋)을 조각하였다. 옥개석(屋蓋石)의 낙수면(落水面)은 상단부가 급경사이며 기왓골은 없으나 각 합각(合角)마루에 용두(龍頭)를 조각하였다. 옥개석(屋蓋石) 정상(頂上)에는 복련(覆蓮)을 조각하여 상륜부(相輪部)를 받치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복발(覆鉢), 보륜(寶輪),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탑신(塔身) 우주(隅柱)의 엔타시스와 창방(昌枋)의 조각, 옥개석(屋蓋石)의 보머리형 조각, 추녀와 사래의 표현, 지붕 합각부의 용두(龍頭)조각 등은 당시의 목조가구(木造架構)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부도(浮屠)의 앞에는 배례석(拜禮石)이 있고 주위에 탑비(塔碑)와 사자석등(獅子石燈)이 있다.
태조 3년(1394)에 완성을 보게 된 이 부도는 양식상 종모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8각의 평면을 이루는 형식으로 건립된 몇 안되는 부도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탑 가득히 새겨진 조각과 둥글게 부풀린 외형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탑신의 기둥과 지붕의 곡선, 그리고 지붕 귀퉁이의 용머리조각 등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엿볼 수 있어 당시의 건축과 비교하여 감상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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