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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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1 |
소재지 | 석수동 |
지정일 | 1963.01.21 |
수량/면적 | 1기 |
시대 | 통일신라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안양시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중초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 높이 3.64m.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양 지주가 원래 모습대로 85㎝ 간격을 두고 동서로 서 있다. 이곳을 중초사터라고 하는 것은 서쪽지주의 바깥쪽에 새겨진 기록에 따른 것이다.
원상대로 85㎝의 간격을 두고 양 지주가 동서로 마주서 있는데, 마주 대하는 내측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으며 외면에도 장식이 없다.
앞뒤 양 측면에도 조각이 없어 장식적인 의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상부에는 약간의 가공이 있어 옛날식을 보인다고 하겠다.
즉, 양 지주의 상부는 내측면 위의 끝부분에서 외면으로 내려오면서 호선(弧線)을 그리며 깎였는데 굴곡이 없이 둥글다. 그리고 위로부터 아래로 1.21m 지점까지는 6㎝의 두께로 전면(全面)이 깎였다.
그러므로 이 모양을 양 지주의 외면에서 보면 정상부에 길이로 널찍한 액면(額面)이 오목새김된 것 같고, 앞·뒷면에서는 상단부(上端部)가 유려하게 원호를 이루면서 상부(1.21m)만을 다듬은 것처럼 보인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杆)은 상·중·하의 세 곳에 간구를 마련하여 장치하였던 것으로, 상부는 내면 상단에 장방형의 구멍을 마련하여 간을 장치하였고, 중·하부는 관통한 둥근 구멍에 간을 설치하게 되었다.
현재 지주의 기단부는 밑바닥에 장대석의 기반석을 지주 사이와 양 지주의 바깥쪽에 각기 한 장씩 깔아서 기대를 삼고 있을 뿐이다.
간대는 지주 사이의 장대석 중심부에 둥근 구멍을 뚫었으며, 그 주변에 둥근 띠를 둘러서 마련하였다. 그런데 간대석과 양 지주 밑바닥의 기반석 높이가 같은 것으로 보아 기단부에는 이 밖의 특수한 구조는 없었던 것 같다.
이곳을 중초사지라고 일컫는 것은 서쪽 지주의 외면에 새겨진 주기(柱記)의 명문에 의한 것이다. 명문의 내용은 모두 6행 123자의 해서체(楷書體) 오목새김으로 자경 (字徑)은 6∼7㎝이다.
이 명문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1년(826) 8월 6일에 채석(採石)하여 이듬해인 827년 2월 30일에 건립이 끝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이하에는 조성책임자인 절주통(節州統) 황룡사 항창화상(恒昌和尙)을 위하여 일에 참여한 법사(法師) 10명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 당간지주의 명문은 당간지주의 확실한 조성연대를 밝혀 줄 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던 절이 중초사였음을 알려준 귀중한 명문이다. 또한, 명문에는 신라식의 속한문(俗漢文)을 혼용한 곳이 있어 고대국어사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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