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5.jpg 조선 숙종조(肅宗朝)에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지촌선생(芝村先生)의 세째인 증(贈) 좌승지(左承旨) 김원중(金遠重)(호 목와(木窩))이 천곡(川曲)에 분가하여 현재까지 13대에 이르렀다. 현재의 안채는 분가시(1700년대)의 건물로 추정되나 사랑채는 현소유자 김원택(金源宅)의 조부가 1920년에 크게 개축한 것이다.

본 가옥은 지례동(知禮洞) 천곡에 있으며 서북쪽에서 뻗어내린 산세를 의지하여 동남에서 서북간으로 흘러가는 반변천(半邊川)을 거슬러 바라보는 동남향으로 택옥(宅屋)을 앉혔다. 서쪽으로 경사져 올라간 대지 주위에는 방형(方形)으로 토담을 쌓고 동남향한 5칸 행랑채의 중앙에 솟을대문을 내어 정면을 삼았다. 거택(居宅)은 T자형 안채와 ⊥자형 사랑채 및 중문간(中門間)채가 튼ㅁ자를 이루고 있으며 사랑마당 좌측에 외양간을, 안채의 우측에 방앗간을 설치하였고 담밖 뒤쪽 언덕에 제청(祭廳)(사당)을 배치하였다.

안채의 중심은 마당쪽으로 개방된 정면 3칸의 대청이 있고, 대청의 좌측에 접하여 2칸통 온돌방(溫突房)과 2칸 부엌의 도합 4칸이 마당쪽으로 내려뻗어 ㅁ형을 이루었으며 대청의 우단(右端)에 상방(上房) 1칸이 꾸며져 있다. 대청의 보간은 1칸으로 폭이 좁은편이며 자연석 초석 위에 방주(方柱)를 세웠고 상부가구는 삼량가(三樑架)로 각대공(角臺工) 위에 마루대를 올렸다. 안방부엌의 부뚜막 윗벽에는 벽돌크기의 네모난 구멍을 5개소 내어서 구들골이 막혔을 때 뚫을 수 있게 하였는데 평소에는 벽돌로 막아놓았고, 재나 그을음은 웃목의 구들골 측면에서 끌어낼 수 있게 청소구를 설치하였다. 사랑채의 사랑마루는 정면 2칸으로 전면에 4분합문을 달아서 마루방으로 꾸몄으며 좌측에는 정면 2칸의 사랑방을, 우측에는 1칸의 감실방이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의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감실방의 앞쪽만 한단 더 높이고 헌함을 돌려서 누(樓)마루처럼 꾸몄다. 마루방의 상부는 오량가(五梁架)로 종보위에 원형 판대공(板臺工)을 세우고 종도리(宗道里)를 올렸다. 사랑방 뒷편에는 부속 마루방과 내정(內庭)으로 통하는 샛마루를 두었고 사랑마루방 뒤에는 샛방과 책방을 설치하였다. 감실방의 뒷칸에 설치한 감실은 줄을 당겨서 상하로 승강(乘降)이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놓아 흥미롭다. 샛마루와 샛방위 뒤편에는 못방과 고방을 직각으로 돌출시켜서 안마당을 향하여 배치하고 출입케 하였다. 사랑방의 좌측에 접하여 지붕이 한단 낮은 중문간채가 一자로 연결되었는데 중문간 1칸, 아랫방 2칸, 아랫마루방 1칸의 순으로 배열되었다. 행랑채는 5칸의 어간(御間)을 솟을 박공지붕으로 올리고 중턱대문을 달았으며 좌우에는 방과 고방을 각 1칸씩 대칭으로 배치하였고 외벽(外壁)은 검은색이 나는 냇돌을 방화벽(防火壁)처럼 백회(白灰)로 곱게 쌓아 올렸다.

본 건물은 사랑마당, 안마당, 뒷마당 등 마당의 성격에 따른 구분이 건물과 담장으로 명확하게 되어 있어서 조선시대 주택의 내외 생활영역의 구분을 위한 공간분리 전통을 잘 이행하고 있는 예라 하겠다. 그리고 구들골을 청소할 수 있는 구조와 승강식 감실 등 흥미있는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사랑채의 섬세하고 우아한 시공기법도 주목할만 하다.
 

중요민속자료 184-1

안채

 

중요민속자료 184-2

사랑채

 

중요민속자료 184-3

대문채

 

중요민속자료 184-4

 

전사청

 

중요민속자료 184-5

외양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