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유화는 자신이 해모수를 만나 사귀었으며, 이 때문에 화가 난 부모가 자신을 이곳으로 귀양살이 보냈다는 사정을 말한다. 금와는 유화를 거두어 궁실에서 살게 하였다. 이때 햇빛이 방안의 유화에게 비추면서 따라왔다. 유화가 아무리 피하려 해도 햇빛은 집요하게 쫓아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태기가 있더니, 유화는 닷 되 정도 크기의 알을 낳았다. 괴이한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금와왕은 알을 길거리에 버리는데, 짐승들이 먹지도 않고 밟지도 않았으며, 새들은 날아와 날개로 덮어주었다. 심지어 왕이 쪼개려 해도 되지 않자 그제야 유화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미 곁으로 돌아와 알을 깨고 태어난 아이가 주몽이다.
주몽의 이 탄생담은 알을 매개로 한 점에서 혁거세의 그것과 닮았다. 다만, 여기서는 부모의 존재가 분명히 밝혀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신화이면서도 보다 인간적이라고나 할까. 주몽이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는 과정 또한 혁거세에 비해 훨씬 구체적이다. 금와의 아들들이 뛰어난 재주를 지닌 주몽을 시기하고 모함하는 이야기, 주몽이 꾀를 써서 금와왕의 좋은 말을 제 것으로 차지한 이야기, 어머니의 충고에 따라 오이ㆍ마리ㆍ협보와 함께 동부여를 떠나는 이야기, 물고기와 자라가 만들어준 다리를 통해 엄시수를 건너는 이야기, 모둔곡에서 재사ㆍ무골ㆍ묵거를 만나 각각 극씨(克氏)ㆍ중실씨(仲室氏)ㆍ소실씨(小室氏)라 이름 지어주고, 그들을 신하로 삼아 마침내 나라를 연 이야기 등.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비류수 가에 초막을 엮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했다는 것까지도 이야기는 세세하기만 하다. 이때가 B.C. 37년, 주몽의 나이 22세였다. 그러나 [삼국사기]가 정리한 이상의 이야기와 조금씩 다른 기록들이 있다. 이는 특히 부여와 동부여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점들이다. 한편,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성을 고(高)로 삼았다고 하였는데, 뒤에 보이는 왕들의 이름이 해(解)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개척국가의 면모를 보이는 고구려, 주변 여러 왕국을 복속시켜
주몽은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인접 국가인 말갈을 쳤다. 침략할까 염려하여 선수를 친 것이다. 고구려는 이처럼 처음부터 개척국가의 면모가 강하게 드러낸다. 물론 이는 주몽의 캐릭터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어 비류국을 찾아 올라가 송양왕과 만나 담판을 짓는 장면은 더 적극적이다. 송양은 ‘일찍이 군자를 만나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뜻밖에도 서로 만나게 되니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주몽을 치켜세우나, 주몽은 자신이 천제의 아들이라며 송양의 말을 무시해 버린다. 더불어 자신의 속국이 되라는 송양의 제의에 분개한다. 결국, 이듬해 송양은 주몽에게 항복해 왔다. 주몽이 왕위에 오른 지 6년째 되던 해에는, 태백산 동남쪽의 행인국을 쳤고, 10년에는 북옥저를 쳐 없앴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주몽에게도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아직 동부여에 남아 있었던 어머니 유화가 죽은 것이다. [삼국사기]는 이를 주몽 왕 14년 8월의 일로 적고 있다. 그렇다면 아들이 나라를 세워 왕이 되었으나 어머니는 이전에 살던 나라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금와왕은 태후의 예를 갖추어 유화의 장례를 치르고 신묘를 세웠다. 이 소식을 들은 주몽은 10월에 부여로 사신을 보냈다. 금와왕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뜻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5년 후, 곧 왕 19년 4월에 부여에서 부인과 아들 유리가 도망쳐 왔다. 주몽은 기뻐하며 유리를 태자에 세우는데, 불과 다섯 달 뒤인 9월, 파란만장한 생애의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누린 나이 겨우 40세였다.
유리가 부여에서 도망 나와 아버지 주몽을 만나는 자세한 이야기는 뒤이어 나온다. 주몽이 아직 부여에 있을 때 예씨(禮氏)와 결혼하였는데, 황망히 부여를 빠져나가야 했을 때 아이는 아직 뱃속에 있었다. 이 아이가 곧 유리이다. ‘아비 없는 자식’의 수모를 받던 유리가, 아버지가 남긴 ‘일곱 모가 난 돌 위의 소나무 아래’라는 문제를 풀고, 거기서 부러진 칼을 꺼내 고구려로 찾아왔던 것이다. 이때는 주몽이 재혼하며 얻은 아들 비류ㆍ온조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이복형의 곁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간다. 거기서 백제를 세웠다.
13세기, 국난에 다시 살아난 동명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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