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56.jpg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주택.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건축된 집으로 안채(21.6평)·사랑채(10.9평)·마구간(1.9평)·사당(7.6평)·정자(20평) 등이 널찍한 대지 위에 남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인량동(仁良洞)의 팔대종가(八大宗家)가 취락을 이루고 사는 마을에서 가장 좋은 산록(山麓)의 양지바른 자리에 터전을 잡았다. 현소유자 근화(根華)씨(70여재(餘才), 재령이씨(載寧 李氏))의 15대조가 입향시조(入鄕始祖)로 조선 성종연간(成宗年間)에 종택을 초창(初創)한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의 집은 뒤쪽의 한단 높은 자리에 이건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확실한 이건연대는 알 수 없다. 충효당(忠孝堂)이란 사랑채는 정자(亭子)와 같은 구성을 보이는데 후학의 교육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임란후(壬亂後)의 건축이라 한다.

8657.jpg 전관(全觀)에서 북쪽은 태백산맥이 둘러섰고 남쪽은 탁 트인 들판의 한가운데로 송천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가는 전형적인 길지(吉地)에 마을이 동서로 길게 확산되어 있으며, 산록을 파고드는 골의 형상이 나래형국 이라하여 나래골이라 부른다. 본 가옥은 골의 동단(東端) 아늑한 자리를 차지하여 앞쪽 들판을 멀리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좌에 사랑채, 우에 안채를 앉히고 안채의 후방 경사진 대나무숲 속에 사당 일곽을 배치하였다.

반듯한 내정(內庭) 정면에는 3칸 대청(大廳)이 놓이고 좌측에 샛방, 우측에 도장방과 안방이 접하였다. 내정의 좌측 사랑방 부분은 샛방에서 1칸왼편으로 벗어나 있는데, 이는 내정을 넓히기 위하여 확장된 것으로 초창평면(初創平面)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안채 부분의 목재에서도 구재(舊材)가 많이 보이고 있어 이 부분도 이건시 다소의 변형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청의 후면벽중(後面壁中) 우측 2칸의 각칸에 있는 두짝열개 널문에 중간설주가 서 있는데 윗틀 하면(下面)에 별도의 오래된 장부구멍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구재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고 이건시기를 조선 중기로 추정하게 한다. 안채의 구조는 높은 축대를 쌓고 자연석 초석위에 방주(方柱)를 세웠으나 대청앞 기둥만은 원주(圓柱)를 사용하였다. 대청 상부는 삼량가(三樑架)에 제형(梯形) 판대공(板臺工)을 세운 간략한 가구(架構)로 되어 있다.

8658.jpg 높은 자연석 축대위에 서 있는 사랑채(충효당(忠孝堂))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ㄱ자형으로 2칸반 크기의 온돌방을 설치한 부분 이외는 우물마루를 깐 넓은 마루방으로 꾸몄다. 구조는 자연석 초석위에 방주(方柱)를 세웠고 대청 상부 가구는 오량가(五樑架)로 파련대공의 윗몸에 첨차를 끼워 종도리(宗道里)를 받았으며 합각 하부만 우물반자로 처리하였다.

이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 사당(祠堂)이 구존(具存)하는 조선시대 반가(班家)로 초창(初創)은 조선 초기로 추측되나 후대에 이건한 건물이다.

그러나 안채는 현위치로의 이건시기가 조선 중기로 짐작되는 고졸한 건축물로 다소간의 변형은 보이나 조선시대 주택연구의 중요한 유구(遺構)로 판단된다.
 

12.gif 안채 : 중요민속자료  제168-1호8653.jpg

반듯한 내정(內庭) 정면에는 3칸 대청(大廳)이 놓이고 좌측에 샛방, 우측에 도장방과 안방이 접하였다. 내정의 좌측 사랑방 부분은 샛방에서 1칸 왼편으로 벗어나 있는데, 이는 내정을 넓히기 위하여 확장된 것으로 초창평면(初創平面)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안채 부분의 목재에서도 구재(舊材)가 많이 보이고 있어 이 부분도 이건시 다소의 변형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청의 후면벽중(後面壁中) 우측 2칸의 각칸에 있는 두짝열개 널문에 중간설주가 서 있는데 윗틀 하면(下面)에 별도의 오래된 장부구멍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구재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고 이건시기를 조선 중기로 추정하게 한다.

안채의 구조는 높은 축대를 쌓고 자연석 초석위에 방주(方柱)를 세웠으나 대청앞 기둥만은 원주(圓柱)를 사용하였다. 대청 상부는 삼량가(三樑架)에 제형(梯形) 판대공(板臺工)을 세운 간략한 가구(架構)로 되어 있다. 

 

12.gif 사당 : 중요민속자료  제168-2호8654.jpg

영덕 충효당의 사당은 안채와 정사 사이 뒤쪽에 별도로 담장을 둘러 지은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인데 옆면이 꽤 넓은 편이다. 가운데 칸에는 두짝문, 양 옆칸에는 외짝문을 달았고 안쪽에는 마루를 깔아 놓았다.

 

 

 

 

 

 

 

 

 

 

 

12.gif 충효당<사랑채> : 중요민속자료  제168-3호8655.jpg

충효당은 정자이면서 사랑채로 살림채 왼쪽에 별도로 자리잡고 있는데, 지금도 교육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ㄱ자형으로 2칸반 크기의 온돌방(溫突房)을 설치한 부분 이외(以外)는 우물마루를 깐 넓은 마루방으로 꾸몄다. 구조는 자연석 초석위에 방주(方柱)를 세웠고 대청(大廳) 상부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로 파련대공의 윗몸에 첨차를 끼워 종도리(宗道里)를 받았으며 합각 하부(下部)만 우물반자로 처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