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2.jpg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1888년(고종 25)에 지은 것으로 안채·바깥채·헛간·광·측간이 울안에 자리잡고 있다. 집터는 서남향으로 열렸고 앞으로 작은 내가 흐른다. 대문은 바깥채에 만들어져 있다. 바깥채가 울의 외곽에 있기 때문이다.
 
안채 대청(大廳)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1888년 (광서(光緖) 14년 견자(犬子) 3월 18일 유시(酉時))에 건축되었다. 집 뒤에는 얕으막한 산이 둘러있고 앞에는 조그만 개울이 흐른다. 주변에 오래된 한옥이 많고 곳곳에 감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꽤 유서 깊은 마을임을 알 수 있으나 근래 도시화로 말미암아 분위기가 많이 파괴되었다.

집은 모두 초가집으로 지어졌는데 튼ㅁ자형의 살림채와 바깥마당, 그 앞의 헛간채, 뒤안, 기타 광채들로 이루어졌다. 안채는 평범한 ㄱ자형집인데 보간을 앞퇴를 둔 간반(間半) 크기로 했으며 건넌방은 상하방 2간으로 만들어서 집머리를 ㄷ자로 약간 구부렸다. 대청은 2간너비이고 안방은 상하방이며 골방은 없다. 구조는 대청 중앙부분이 긴보 5량이고 구들부분은 1고주5량이며 부엌은 평4량으로 했다. 기둥은 네모이고 도리는 납도리이며 보는 양측면을 수직으로 반깎아 낸 달걀모양이다. 장혀는 없는데 종도리 아래만 받쳐두었다. 추녀는 네모꼴이고 추녀 끝이 썩지 않도록 그 가운데에 암기와를 한 장 얹어두었으며 서까래는 아주 잘 다듬어져 있다. 평고대 위에는 빗물이 그 끝사이로 스며들지 않도록 흙을 발라두었고 지붕은 초가인데 두께는 대단히 두꺼워서 한자 반 가량이며 그 끝이 부른지붕으로 많이 숙였다. 안방 앞문은 가운데 정자(井字) 살을 가진 불발기 쌍문으로 되었고 창은 용자(用字) 창으로 꾸몄다. 민가로서는 전체적으로 법식(法式)에 따라 정성껏 지은 집이다. 사랑채 역시 곱은자꼴로 안채를 엇비슷하게 막으며 ㄴ자를 이룬다. 사랑방이 위아랫방으로 안채와 직각되게 배치되고 대문이 부엌을 향하게 계획되었다. 마당 앞에는 헛간, 오양간, 구들이 배치되었다.

구조는 맞걸이 3량 구조인데 다만 사랑방 부분만 1고주5량으로 처리해서 구들 앞에 2간 마루방을 시설하고 있다. 마루방은 보간이 큰 반간(半間)으로서 특이한 점은 바깥마당 부분의 창에 모두 덧문을 달아서 판장문으로 막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19세기 말에 화적떼들의 피해가 너무 심했으므로 밖으로 통하는 모든 문은 판장문으로 보호한 때문이다. 이 집 역시 원래 초가집이었으며 사랑방의 보간이 커서 용마루가 마치 낙타등 모양의 율동을 가졌다. 바깥마당 맞은편에는 5간의 헛간채가 마련되었는데 건축년대는 20세기 중엽 정도로 추측된다. 살림채는 담장으로 둘러쌌지만 바깥마당은 사방으로 틔였고 헛간채 남쪽에 비겨서 마당 안으로 진입하는 판석통로는 입구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인상적이다. 뒤안에는 우물 및 향나무, 감나무, 단풍나무 등이 심어졌고 구석에 단간 초가인 광채가 자리해서 민가 뒤안 정원시설의 정취를 한 껏 풍겨준다. 기타 살림채의 곁채들은 연륜이 별로 들지 않았으며 여기 광채만이 안채와 거의 같은 건축년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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