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대의 [국조속오례의보서례(國朝續五禮儀補序例)]에는 익선관복의 구체적인 도설이 실려 있다. 왕세자의 익선관복은 서연복이라고 하였는데 4개의 사조원룡보(四爪圓龍補)를 단 흑색 곤룡포에 흑정(黑鞓)의 조각 없는 옥대를 띠었다. 왕세손의 것은 강서복(講書服)이라고 하여 가슴과 등에 2개의 삼조방룡보(三爪方龍補)를 단 흑색 곤룡포에 청정의 수정대(水精帶)를 띠었다.
왕의 익선관복 차림은 조참이나 상참, 조계 등과 같은 소규모의 공식적인 의례와 일상적인 업무에 임할 때나 진연이나 진찬 등의 궁궐 연회 때, 또 신하와의 개별적인 만남에, 그리고 가까운 능행 등의 궐외 거둥에 착용하였다. [국조오례의]나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 의하면 왕이 승하한 후에는 곤룡포를 수의로 입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선왕이 돌아가시면 졸곡 후 시사복으로는 백포로 싼 익선관과 흰색 단령에 오서대를 착용하였으며 연제에는 익선관과 옥색 단령인 참포, 오서대, 백피화를 입다가 담제에는 익선관과 현포라고도 하는 검은 색 단령을 입었다. 담제가 끝나면 평상시의 익선관복을 착용하였다. 그 외에 왕이 친히 선왕들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능에 참배할 때는 참포를 착용하였으며 제향에 사용할 향을 왕이 친히 신하에게 전할 때에는 무양흑원룡포를 착용하였다. 백포, 참포, 무양흑원령포는 평상시 착용하는 다홍색의 곤룡포와 색상과 제거된 흉배와 견화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흉배와 견화가 없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곤룡포라고 하기 어렵지만 국왕이 착용하는 단령 형태라는 점에서 곤룡포의 범주에 포함시켜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제11대 중종(中宗, 1505-1544)의 경우에는 근정전에서 즉위식을 할 때 익선관복을 입었다. 왕의 즉위식에는 곤면(袞冕), 즉 면류관(冕旒冠)과 곤복(袞服)을 착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반정을 통하여 긴박한 상황에서 왕위에 오르게 된 중종은 곤면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익선관복으로 즉위하였던 것이다. 여담이긴 하지만 기록에서 ‘곤면을 착용한다’고 할 때, 곤면을 면류관과 곤룡포로 이해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곤면의 곤(袞)은 곤룡포와는 다른, 곤의(袞衣), 또는 곤복(袞服)과 현의(玄衣)라고 하는 별 개의 옷이다. 형태가 다를 뿐만 아니라 엄연히 격이 다른 옷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