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풍물,생활

황실 여성들의 적의

문성식 2013. 12. 16. 16:56

이번 네이버캐스트에서 다루는 대한제국 시기의 적의제도는 엄밀한 의미에서 조선시대의 적의제도라고 하긴 어렵다.조선시대의 적의제도가 명나라 황후와 황태자비의 상복(常服)에 해당되거나 친왕비와 군왕비 등의 예복인 대삼(大衫) 제도에 해당하는 옷이라면 대한제국 시기의 적의는 황후와 황비, 황태자비 등의 예복(禮服) 제도를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예복이 상복보다는 등급이 높은 옷이었으며 색상과 문양 등에서 다른 점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적의제도가 겪은 일련의 변화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적의제도의 변천과정과 대한제국 시기의 적의제도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현존하는 대한제국 시기의 적의 관련 유물과 적의 착용자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적의 유물은 모두 대한제국 시기의 심청색 적의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종이 적의본(중요문화재자료 제67호) 1점 외에 옷감으로 만든 3건의 적의가 전해지고 있다.

순종 계비 윤황후 12등 적의(세종대학교 박물관 소장)

1점은 황후용 12등 심청색 적의(중요문화재자료 제54호)이다. 이 유물은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순종(純宗, 재임 1907-1926) 계비인 윤황후(순정효황후, 1894-1966)께서 후학들의 복식 연구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기증한 것이다. 용보(龍補)가 달린 적의 외에, 중단, 하피 , 폐슬이 함께 남아 있다.

다른 1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영친왕비의 적의(중요문화재자료 제265호)이다. 이 적의는 황태자빈 적의에 해당하는 9등 적의로서, 1922년 4월, 순종과 윤황후에게 근현례(覲見禮)를 치를 때 입었던 것이다. 대수(大首․首飾) 외에 규, 중단, 하피, 대대, 패옥, 후수, 옥대, 청말, 청석 등 부속제구 일습이 남아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영친왕비 9등 적의(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운현궁 9등 적의(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마지막 1점은 근래에 새롭게 발표된 9등 적의이다. 용보가 없으며 용문의 하피 1점만 함께 남아 있다. 윤황후와 영친왕비의 적의에 비하여 제직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다. 운현궁에 소장되어 있던 이 적의는 착용자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대한제국 시기에 적의를 입거나 사용할 수 있는 신분의 황실 여성은 모두 6분이라고 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명헌태후 홍씨(1831~1903), 명성황후 민씨(1851~1895), 황귀비 엄씨(1854~1911), 황태자비 민씨(1872~1904), 황태자 계비 윤씨(1894~1966), 영친왕비 이씨(1901~1989)가 그 6분이다. 그 중 명성황후는 이미 사망한 후이지만 대한제국이 건국되면서 황후로 추봉되었다. 실제 착장은 할 수 없었지만 국장(國葬) 등의 행사에서 12등 적의가 올려 졌을 가능성이 있다. 또 황귀비 엄씨는 책봉을 기다리면서 미리 준비해 놓은 적의를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9등 적의가 시직(試織)을 통한 견본품일 가능성과 함께 황귀비 엄씨의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 볼 수 있다.

영친왕비 적의 부속제구를 통해 보는 대한제국 시기의 적의제도

1897년 대한제국 건립 이후에 사용된 적의 제도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기록된 광무 원년(1897) 제도를 따르고 있다. [대명회전(大明會典)]의 영락(永樂) 3년(1405) 관복제도에 근거한 것이다. 장서각 소장의 [대한예전(大韓禮典)]이나 [예복(禮服)]에도 유사한 내용이 실려 있다. 영친왕비의 적의 유물을 중심으로 대한제국 시기의 적의제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친왕비의 적의 착장 모습(1922년)

1) 규(圭) : 길이 14.4cm, 너비 6.9cm의 백옥판으로 만들었다. 옥판에는 곡식 무늬가 새겨져 있고 위쪽은 둥근 산형(山形)을 이루고 있다. 홍색 공단으로 하단 손잡이 부분을 감싸고 천도형 단추가 달린 같은 소재의 주머니에 담은 후 옻칠한 나무 상자에 보관하였다.
2) 대수(大首․首飾) : 순종 계비 윤황후의 적의용 가체는 『발기』에 수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영친왕비의 가체는 인수해 오는 과정에서 대수라는 명칭으로 정리되었다. 여러 개의 흑각잠으로 머리를 고정시켰으며 홍지(紅紙)에 수식품들의 명칭을 써서 해당 위치에 꽂아 두었다. 장잠(長簪)과 진주 동곳, 선봉잠, 후봉잠, 마리사기, 대요(帶腰) 등, 많은 종류의 비녀와 댕기들이 장식되었다.
3) 적의(翟衣) : 심청색 바탕에 채적문(彩翟紋)과 이화문(梨花紋) 9등의 138쌍을 직조한 채화단(彩花緞)으로 만들었다. 양어깨와 가슴, 등에는 5조원룡보를 부착하였다. 가장자리에는 대홍색 직금운룡문의 선을 두르고 홍단 고름을 달았다. 윤황후의 적의에는 채적문과 이화문 12등 148쌍을 직조하였다. 최근 영친왕비와 윤황후의 적의 직물은 일본 교토의 가와시마 직물[川島織物]에서 제직한 것으로 밝혀졌다.
4) 중단(中單) : 영친왕비의 중단 외에 윤황후의 중단도 남아 있다. 적의와 같은 형태이며 청회색 견으로 만들었는데 가장자리에 홍색 선을 둘렀다. 광무원년 제도에는 옥색사로 만들고 깃에 황후는 불문(黻紋) 13개, 황태자비는 11개를 부금 한다고 하였으나 유물 2점 모두 11개가 부금되어 있어 기록과 다름을 알 수 있다.
5) 하피(霞帔) : 하피는 어깨에 걸치는 장식물로, 본래 심청색 적의에는 없는 제도였으나 대삼용 하피제도를 그대로 수용하였다. 흑단(黑緞)으로 겉을 하고 홍초(紅綃)로 안을 하였다. 너비 11.6cm, 길이 492cm 크기에 운하(雲霞)와 적문(翟紋)이 26개씩 부금되었다. 중심에 매듭단추가 있고 끝 부분은 운문이며 11번째 운문을 중심으로 적문이 마주보게 배치되어 있다.
6) 상(裳) : 상은 3가닥으로 구성된 남색 치마인데 142cm 길이에 잔주름이 곧게 잡혀 있다. 스란단은 수(壽), 남(男), 영지, 모란 등의 무늬를 직금사로 짠 직금단이다.
7) 대대(大帶)와 후수(後綬) : 겉은 흰색 공단으로 만들고 가장자리는 녹색의 선장식을 하였다. 띠의 양끝에는 남색 광다회가 달려 있어 허리에 묶을 수 있도록 하였다. 뒤쪽 중앙에는 5색의 교직단으로 만든 후수가 부착되어 있다.
8) 옥대(玉帶) : 청색 공단으로 띠를 싸고 그 위에 민옥 띠돈을 장식하였다. 좌측의 남두육성 1개와 북두칠성 중 좌측 2개, 좌보 1개가 소실된 상태이다. 바탕에는 5줄의 금선 장식이 그려져 있다.
9) 패(佩) : 혁대에 걸어 좌우에 늘어뜨리는 옥 장식물과 홍색 운문사로 안을 댄 5색 교직단 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관용 상자에 면복 패옥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영친왕비의 것으로 추정된다.
10) 폐슬(蔽膝) : 대대에 걸어 무릎을 가리는 장방형 장식으로, 적의와 동일한 심청색 채문단을 사용하였다, 영왕비의 것은 4쌍의 꿩과 6송이의 소륜화를 배치하였으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황후 적의용 폐슬본에는 6쌍의 꿩과 6송이의 소륜화가 그려져 있어 신분에 따른 차이를 보인다.
11) 말(襪) : 심청색 공단으로 만든 겹버선이다. 버선목 뒤에 끈을 달아 앞에서 맬 수 있도록 하였다.
12) 석(舃) : 심청색 공단으로 만들었으며 신의 뒤꿈치와 신울의 중간에 검은 고리를 달아 끈을 꿰어 묶도록 하였다. 신코에는 망술 2개가 달여 있다.

적의의 착장법

적의를 착용할 때는 우선 속옷 위에 3작 저고리와 청색과 홍색의 스란 또는 대란치마를 착용한 후, 치마 위에 3가닥 치마인 전삼후사상을 덧입는다. 그 다음, 중단을 착용하고 적의를 덧입는다. 그 위에 후수 달린 대대를 허리에 두른다. 대대 위에 다시 옥대를 두른 후, 옥대 좌우에 패옥을 착용하고 하피를 어깨에 두른다. 마지막으로 대수를 머리에 쓰고 손에 옥규를 든다. 대수 위에 면사를 덮는다.

이은주
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청 일반동산 문화재 감정위원과 안동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비상임이사, 국립 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월간 문화재(한국문화재보호재단 발행) 고정 필자이다.
자료 제공
한국문화재보호재단 (http://www.chf.or.kr/)
공식블로그
http://blog.naver.com/fpcp2010
발행201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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