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무엇을 바꾸어 놓았나?
ㅡ 엘시 맥키
성경만으로
개신교 개혁자에게 중심 되는 종교적 권위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들은 성령은 성경의 진리를 인간에게 계시하는 분이며, 성경만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임을 믿었다. 가톨릭교회는 교회와 성령은 완전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가 말하면 이것은 성령의 목소리가 된다고 말해왔다. 개신교도들은 이에 저항하며 성경과 성령이 하나로 얽혀 성령이 사람들에게 구원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성경이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개신교 개혁자들도 교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교회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지상의 도구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과 특별히 목사들(ministers)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모든 지적 능력을 동원하여 성경을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원어로 성경을 읽기 위해 성경 언어를 배우는 것과,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이성적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는 매우 잘 알려진 표어지만 보기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다. “성경만으로”는 사실 여러 가지의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말의 중심 되는 사상은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종교적인 지식의 근원은 성경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자연 혹은 인간의 이성, 혹은 교회 전통에서 구원의 지식을 찾을 수 없고 성경에서만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만으로”가 성경이 모든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든가, 모든 지식의 근원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16세기 개신교는 성경을 지질학에 관한 교과서로 보지 않았고 천문학을 배우기 위해 창세기를 읽지는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만으로”를 말하는 사람들조차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항상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성경이 ‘구원을 얻기 위한 지식’의 유일한 권위라는 것이다. 다음의 예에서 이 말의 의미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루터에게 성경은 하나님이 순전히 그분의 은혜에 의해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용납하시며 자유롭게 하시는 통찰력의 근원이었다. 루터에게 성경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알아야 할 것에 대한 유일한 권위였다. 어떠한 교회 전통도 다른 것을 추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교회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규칙서는 아니었다. 그래서 예전의 순서나 교회의 직제 혹은 영성 같은 것들을 성경에서 베껴올 필요가 없었다. 그것들은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과 맥을 같이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루터에게는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교회에 그림을 기증하는 것이 어떤 공적을 쌓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한, 교회 안에 양초를 둔다거나 그림을 계속 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세례파들은 “성경만으로”를 성경은 기독교인의 삶의 모든 측면에 하나님의 지시를 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어떤 재세례파는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모든 소유를 공동화하라고 가르친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4~5장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교회에 주었기 때문이다. 재세례파들은 성경, 특별히 신약성경을 문자적으로 읽고 그대로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개혁주의’(Reformed) 혹은 ‘칼뱅식’이라고 불리는 해석은 루터와 재세례파 중간이었다. 루터파처럼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은 구원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의 유일한 근원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성경이 교회와 성도의 생활에 질서를 잡는 데 필요한 바른 방법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개혁주의 주석가들은 십계명에서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하는 것은 교회에 그림이 없어야 된다고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루터파가 교회에 그림을 건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림을 거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말했다(이들은 가정이나 공공장소에는 그림을 걸었다. 다만 종교적인 장소에 사용되는 것을 금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또한 성경에서 목회를 어떻게 조직화하고 공예배 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바른 방법을 찾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 교과서로 여긴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교인들이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공동자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만인사제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고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져온 효과 중 한 가지는 거룩함과 거룩한 것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에 의해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인이라면(의롭게 되었지만 동시에 죄인인 상태), 같은 사람이 거룩하면서 동시에 세속적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사람, 혹은 사물, 혹은 장소, 혹은 시간을 거룩하다고 또 하나님을 위해 성별되었다고 구분하고 다른 것은 거룩하지 않다고 구분하는 대신, 거룩함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는 선이 각 사람과 각 사물을 관통하고 있었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따로 구분하는 것이고 세속적인 것은 하나님을 반항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당시에 이러한 변화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것이었지만 동시에 매우 자유케 하는 것이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믿음과 은혜로만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와 평신도 간의 진정한 차이란 없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구원받았고 같은 법 아래에 있었다. 이것은 만인사제라는 가르침으로 연결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다. 어떤 지상의 사제도 필요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자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교회는 항상 교회와 시민 사회의 리더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시민 사회의 리더는 종교적인 권위가 없었다. 만인사제설에 관한 개신교의 새로운 가르침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종교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시민 사회의 리더는 자기 백성들을 도덕적으로 감찰할 책임이 있었다. 이러한 가르침은 전통 교회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개신교도들은 목회자를 가지는 것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다. 다만 목회자가 할 일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즉 하나님께 중재하는 것이 주 업무였던 사제의 개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설교가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기독 군주들에게 빈민구호나 교육, 도덕적 감찰, 그리고 다른 것들을 다루는 실제적인 영역에 대한 새로운 종교적인 권위를 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설교가들이 설교하는 것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만인사제설은 영성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평신도나 목회자에 관계없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동일한 영적인 관계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개혁의 필요성
중세 후기의 기독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개혁이 꼭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중 어떤 이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관계를 끊지 않고 교회에 남아 일했다. 그러나 루터나 츠빙글리, 칼뱅과 같은 사람들은 가톨릭교회의 기존 구조 안에서는 필요한 개혁을 일으킬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갈라져 나왔다. 사실상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교회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통적 지상 교회는 믿음과 은혜로만 의로워지는 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고 믿었다. 루터나 츠빙글리처럼 우리가 흔히 듣는 종교개혁자들만 전통 교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다. 많은 개인들은 로마가 더 이상 참 교회가 아니라고 믿었다. 로마와 갈라선 사람들은 로마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데 일치했지만 참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그들은 나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개신교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믿음과 은혜로만 의로워진다는 것이 핵심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루터나 칼뱅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경만으로”를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권위로 읽었다. 그리고 우리가 전적으로 죄의 권세에 매여 있고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 스스로를 도울 수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하나님이 다 하셔야만 하는 것이다. 로마교회와 갈라선 다른 개혁자들은 원죄에 대한 생각을, 인간의 의지는 죄에 묶여 있다는 생각을 나누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선 혹은 악을 선택하는 데 자유롭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교회와 세례에 관한 교리였다. 재세례파(Anabaptists; 그들의 적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라고 불린 이들은 교회는 오직 선택된 자들이라고 믿었다. 여기서 선택된 자들이란 믿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하며, 사회를 떠날 위험부담도 감수할 수 있는 자들이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고 선택된 자들만으로 구성된 참 교회로 신약성경을 따라 살아갈 것이 기대되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만이 죄인을 회개시키고 변화시킨다고 믿는 개신교도들은 인간은 누가 선택받은 자고 누가 아닌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선택된 자와 유기된 자들(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섞여 있는 지상의 교회와 함께 일해야 한다고 믿었다. 개신교도들에게 지상의 교회는 복음이 바르게 설교되고 성례가 올바르게 집전될 때 진짜 교회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순종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교회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교인들의 자녀에게 세례를 주고 그들을 교회에서 키우면서 그들 스스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믿음을 가르쳐주는 것은 합당한 것이었다. 교회론에 대한 이러한 차이는 개신교도들과 ‘다시 세례하는 사람들’(rebaptisers)이라고 불린 사람들 사이에 중요한 분열을 이끌었다. 각 그룹의 영성 또한 결정적으로 달랐다.
그러나 개신교도들 사이에도 또 다른 차이점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종교적 회화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는 경우에서 봤듯이, 특별히 “성경만으로”를 교회의 조직에 적용하는 방식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또 다른 차이점은 개신교도들이 받아들인 다른 성례인 성만찬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루터와 츠빙글리는 특별히 이 점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각 사람은 그리스도와 주의 만찬의 관계에 대한 다른 편의 가르침을 거부했다. 루터는 성찬이 그리스도가 떡과 잔 ‘속에, 함께, 그리고 아래에’ 임재하시기 때문에 은혜의 수단이 된다고 믿었다. 한편 츠빙글리는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고 떡과 잔은 감사와 기념이며 믿음의 징표이지 은혜의 수단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나눔은 개신교도들에게 성례적 은혜와 영적인 실천을 이해하는 방식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망명자 칼뱅
종종 개신교 개혁자들을 나열할 때 ‘루터, 칼뱅, 츠빙글리’로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바른 순서다. 루터와 츠빙글리는 같은 나이지만 칼뱅은 그들보다 25년이나 어렸다. 그가 개신교도가 되었을 때는 이미 많은 것들이 일어난 후였다. 로마에 대한 개신교적인 반응은 많이 정해졌고 로마와 갈라진 개신교도들 사이의 분열도 이미 일어나 있었다. 그러니까 칼뱅은 개신교도들이 이미 분열되었을 때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할 수 있었던 것과 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칼뱅은 완벽한 2세대 개혁자였다. 신학적 통찰력은 다양한 형태를 갖는 법이다. 칼뱅은 루터와 같이 개척자적인 개혁자는 아니었지만 조직화와 사상과 문장력의 명쾌함에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개신교는 칼뱅이 없이는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종종 말하는데, 이는 그가 새로운 교회 세계의 조직화를 모양 지우고 그것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것들 중 하나는 교회의 독자성에 대한 그의 가르침이 새로운 개신교를 외부의 도움 없이 시 정부로부터 독립한 자율적인 공동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칼뱅은 대부분의 개신교 개혁자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그는 망명자였다. 루터는 색소니 출신의 사람이었다. 츠빙글리는 독일계 스위스에서 태어난 독일계 스위스인이었다. 부처는 알사스 출신이었고 크랜머는 영국 사람이었지만, 칼뱅은 그의 인생 대부분을 망명자로서 살았던 전례가 거의 없는 개혁자였다. 그는 제네바시에서 영주권자였기에 선거를 할 수도 없었다(제네바시는 그의 생애 끝 무렵에 가서야 시민권을 주었다). 오늘 우리는 제네바와 프랑스는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칼뱅 당시는 그렇지 않았고 언어조차도 분명히 달랐다. 칼뱅이 해야 했던 모든 것은 입을 여는 것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곧바로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망명자로서의 이러한 경험은 교회의 신약성경 모델은 자체법과 자율성을 갖는 것이라는 그의 이해와 합쳐져 교회와 영성의 가르침에 매우 독특한 성격을 부여했다. 칼뱅은 그의 신앙과 그의 집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는데 그것은 그의 영성을 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비록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그에게 집, 가족, 그리고 생명까지도 포기하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교회와 사회가 분리되지는 않더라도 교회를 시민 사회로부터 구분하는 그의 교회론과 함께 칼뱅이 이해한 기독교적 삶의 영성은 순례자와 같은 것으로 핍박받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교회가 나름의 구조를 갖는다는 그의 가르침은 가톨릭 국가에서 소수 그룹인 기독교인 공동체는 자신들 나름의 종교적 생활을 조직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망명과 순례 경험의 강도는 칼뱅을 따르는 교회들이 그들의 신앙을 빼앗고자 하는 어떤 권세나 사람들에게도 저항하는, 군사적인 영성을 발전시키도록 만들어주었다.
엘시 맥키 | 20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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