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교회의 사명
역사학자들은 한결같이 교회사의 가장 중요한 시기로 1세기와 16세기를 꼽는다. 1세기는 신약교회의 시작과 더불어 초대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하고 교회의 기초를 세워나갔던 시대이고, 16세기는 흐트러지고 모호해진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서 선각자들이 목숨을 걸고 종교개혁을 수행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표준과 근거가 모퉁이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고, 교회의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서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시대인 1세기는 언제나 교회의 준거가 된다.
또한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의 기본 형태와 양상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열매로 온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에 와서야 우리는 루터나 칼빈, 쯔읭글리, 멜랑히톤, 후스, 존 낙스등의 개혁자들의 허물과 시행착오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지만, 중세시대가 어떤 시대였는가를 조금이라도 알면 그들에 대한 전 방위적인 비판은 차라리 사치와 무책임에 가깝다고 본다. 그들이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자기 시대에서 생명과 재산을 내어놓고 복음과 진리의 회복을 위해 사명을 다했다. 그 시대는 죽어서만 순교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체가 더 어려운 순교의 시대였다. 성경과 구원론을 되찾는 일만해도 그들에겐 너무 벅찬 일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500년 세월, 지금의 우리는 어쩌면 종교개혁의 달콤한 열매만 취하고 그 후의 과제들은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았는지. 이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아래, 2000년 교회역사가 놓여있다. 이것은 우리 에게 엄청난 은혜이자, 책임으로 주어진 것이다. 1세기 성도들은 완성된 신약성경도 갖고 있지 못했고, 그 후의 성도들은 역사적인 경험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여 수많은 희생을 치루어야 했다. 2000년 세월이 지난 지금, 그 동안 나올만한 이단과 사이비는 거의 나왔고, 수많은 전쟁과 폭력을 통하여 교회가 권력과 물질을 통제하지 못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가도 뼈저리게 체험했다. 구약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계시도 거의 성취되었고 그 내용도 환히 밝혀진 상태가 지금 이 시대이다.
또 그 동안 교회사를 통하여 첨예한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었던 문제들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조금만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풀릴 문제들이다. 어떠한 사심이나 편견 없이 모여 반나절만 진지하게 대화해도 풀릴 문제가 대부분인 것이다. 원래 장기간의 독재가 끝나면 그 후유증을 치료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독재권력이 휘두른 그 악행의 유산은 독재가 끝난뒤에도 고스란히 남아있게 된다. 한 나라의 몇 십년 독재 뒤에도 이토록 큰 혼란이 계속되는데, 길게는 1500년, 짧게는 1000년을 잡는 중세시대가 막을 내린 뒤의 그 혼란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창조주에게는 하루에 해당되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피조물인 인간세계에 있어 천년의 시간이 주는 무게는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몇 안되는 개혁의 선구자들은 생각보다 충분한 만남과 대화를 갖지 못하였다. 시대자체가 워낙 긴박하였고 중세 카톨릭 시대에서 도움 받을 수 있는 자료들도 많지 않았다. 거기에 어디서 어떻게, 무엇부터 개혁을 시작해야 하는지 난감할 정도로 당시의 개혁교회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개혁자들은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로마 카톨릭의 잔재가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정도로 외로운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회내의 문제가 아니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세속권력 위에 재산까지, 성경해석의 권위와 구원의 방법까지 소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번 불붙은 종교개혁은 급진적인 사회혁명으로까지 치닫게 되었다. 루터의 경우에서 보듯이 일정한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들의 보호와 도움 없이는 개혁은 커녕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운 시대에서, 개혁자들에게 한치의 실수도 없는 개혁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개혁시대의 광범위한 사회의 혁명이 아니라, 교회의 개혁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교회만 제대로 개혁되면, 나라와 사회의 방향은 저절로 잡혀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21세기는 유럽의 종교개혁 시대 - 16세기 못지 않은 중요성을 지닌다.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대로 다시 오시기 위해서는 복음이 모든 민족, 족속에게 전해지고, 예수님의 신부된 교회가 참되고 정결한 신부의 모습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1세기 교회가 기독론의 수호를 위하여, 16세기의 교회가 구원론의 수호를 위하여 모든 힘을 집중해 사명을 감당했듯이, 21세기의 교회는 성령론과 종말론을 포함한 참된 교회론을 정립하고 실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하여 등불 들고 준비하는 일에 쓰임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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