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로 있고 싶네
사람을 대하기가 싫어서,
깊은 산중으로 들어와 사는 것이 출가 수행자의 보편적인 경우다
그중에도 온갖 불편을 무릅쓰고 외따로 떨어져 사는
독거의 경우는 철저하게 홀로이고 싶어서다.
홀로 있을수록 보다 넉넉하고 풍성한 속뜰을 가꿀 수있고,
푹 묻혀서 한가지 일에 몰입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익히려는 것이다.
밖을 쳐다보지 않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로써 정진을 삼는다
그런데,
이런 뜻을 모르고 불쑥불쑥 낯선 사람들이 찾아 올 때 맞이하는
쪽에서는 심히 귀찮고 짜증스러울 뿐 아니라,
인내의 한계 같은 것을 드러내게도 된다.
더구나 승가의 풍습을 모르고 금족의 안거기간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행위는 정해진 일과와 정진을방해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찾아오는 쪽에서는 모처럼 큰맘 먹고 벼르던 끝에 찾아왔겠지만,
맞이하는 입장에서는 하루에도 몇찰례씩 방해를 입게 되니
무고한 그들을 때로는 장애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손님이 한나절의 한가를 얻을 때 주인은 한나절의 한가를 잃는다는
옛말이 떠오르곤 한다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만나서 이야기 함으로써 문득 새로운 눈이 뜨이고
막혔던 귀가 열릴 수도 있다
말하자면 운명적인 만남도 가져올 수가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만남을 가져오려면 그만한 예절이 따라야 한다
예절을 갖추어야 마음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내 개인의 경험에 의하면,
이 시대의 우리들이 대개 그렇긴 하지만,
너무도 무례한 사람들이 많다.
저마다 자기 편리한 대로 생각하지 남의 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물론 독거시절에 겪은 일이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50대 중반의 한 사나이가.
종단에서 운영하는 종립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일이 있다고 하면서
아무개 교수도 알고 누구누구학장과도잘 아는 사이라고,
자기 소개 아닌 과시를 하면서
부득부득 한두어 주일 묵어 가겠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절이란 출가 수행승들이 수도하고 포교하는 곳이지
요식업이나 하숙업을 하는 데가 아니다
물론 하숙을 쳐서 먹고 사는 절이 더러는 없지 않지만,
그곳은 청정한 사찰이 아니다.
종교를 내세워 무허가 요식업을 벌이고
하숙업을 하고 있는 사이비 불사이다
물론 나는 그런 뻔뻔스럽고 무례한 녀석을
시중들기 위해 홀로 암자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거절, 그러자 자칭 전직 교수란 그 사나이는,
묻지도 않는데 광주사태에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법당도 하나 지어줄 용의가 있다고 나를 얼러대는 수작까지 했다
그 녀석의 눈알을 빤히 쏘아보았더니 비실비실 비켜서려고 했다
선뜻 느껴오는 것은(그때가 광주사태 직후였으므로)
나를 감시하러 나온 놈이구로나 싶어,
앞산이 쩌르렁 울리도록 호통을 쳐서 단박에 쫓아버리고 말았다.
산에 살다보면 희한한 물건들’이 찾아와 집적거리는 수가 있다
나는 20대 초반에 학교에서 바로 입산
출가했기 때문에 세상의 쓰고 단맛을 잘을 모른다
그러나 절에 들어와 살면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관념적이긴 하지만 세상의 흐름을어느 정도는 짐작 할 수 있다.
서머셋 모옴의 말처럼, 양고기 맛을 알기 위해서
양을 통째로 잡아 먹을 것까지는 없으니까
직선적인 성미이기 때문에, 여럿 속에 섞이기보다는
홀로 있는 것이 내 뜻대로 살면서 내가 지닌
기능과 특성을 일깨울 수 있다는 것도 스스로 알고 있다.
예전 스님들도 개성이 강하고
자기 빛깔이 선명한 분들은 대개가 독거를 좋아했고,
성격이 원만하고 남들과 섞이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어울려 살았었다
홀로 있기를 좋아한 사람들은 대개가 성격이 괴벽스럽다.
홀로 있고자 하기 때문에 누구나사람 대하기를 몹시 싫어한다.
그런 괴물들의 공통점은 먼 데 사람은 사랑할 수 있어도
가까이 있는 사람은 사랑할 수가 없다
휴가철인 요즈음 불쑥불쑥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내 인내력의 바닥을 자주 들여다본다
나는 오늘 두 번이나 문전축객의 결례를 범했다.
이 칼처럼의 마감날이 박두하여 아침부터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하려고 뒤척이는 참인데,
오늘따라 불청객이 자꾸 밀려드는 바람에 번번이
일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둥 방 앞에 입선패를 내걸고
막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또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속으로 나는 ‘또 누가 내 일을 방해하러 왔는고’
하면서 밖으로 나갔더니 한복으로 흰 바지저고리를 차려 입은
사람들이 여남은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중 한 청년이 편지를 내놓았다
광주에서 유네스코 일로 엊그네 다녀간 홍 박사님이 보내온 것인데,
현재 서울 모대학의 동양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생질을 소개한다면서,
시간을 좀 나누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오늘 안으로 이 원고를 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홍 박사의 친분과 그 생질된 분의 체면에는 안됐지만,
부득이 구산방장스님을 만나보도록 소개를 돌리지않을 수 없었다.
교수와 학생들을 돌려보내고 다시 방에 들어와 일을 시작하려는데,
또 밖에서 스님 계십니까 하는 소리,가까스로 감정을 억제하면서,
입선시간에는 면회를 하지 않는다고 따돌리었다.
그 청년은 머쓱해 하면서 오던 길로 내려갔다
자, 이러니 숙제인들 제대로 할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두 차례나 문전축객을 하고 나니
내 속뜰은 말할 수 없이 거칠어진셈이다.
나는 오늘,
남은 고사하고 내 스스로도 구제하지 못했구나 하는 자책이 따랐다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오래 전부터 조주의 돌다리, 조주의 돌다리라고 소문을
들어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대단치도 않군요,
마치 외나무다리 같은데요.“
돌다리를 빌어 조주 선사의 기량을 한번 떠보려는 수작이다,
이에 대한 조주 선사의 대답,
“그대는 외나무다리만을 보았지 진짜 돌다리는 보지 못했구나.”
“그럼 진짜 돌다리는 어떤 다리입니까?”
“나귀를 건네주고 말을 건네준다!”
나귀를 건네주고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조주의 돌다리가 참으로 부럽네
ㅡ 법정 스님글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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