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배산(867m)은 가평군 북면과 춘천시 서면 방동리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흔히 북배산 산행은 화악산(1,468m)~몽덕산(680m)~가덕산(858m)~북배산~계관산(736m)~삼악산(654m)에 이르는 화악지맥 종주로 이루어진다. 그중 등산객이 가장 많이 찾는 구간이 가덕산~북배산~계관산(큰촛대봉) 구간이다. 다른 화악지맥도 그렇지만 이 구간의 능선은 산불예방을 위한 방화선으로 이뤄져 있다. 마치 텁수룩한 머리에 ‘바리깡’이 지나간 듯한 모양이다. 이 방화선을 따라 가을 억새가 아지랑이처럼 핀 풍광이 이 길의 백미다.
- ▲ 1 만추가 들면 황금빛 억새 동산으로 변신하는 화악지맥의 방화선길. 능선을 오르는 등산객 뒤로 북배산과 가덕산을 이으며 쭉 뻗은 방화선이 보인다.
-
북배산 산행은 정상에서 북서쪽인 큰멱골, 서쪽 작은멱골, 남서쪽 싸리재마을 등에서 오르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이번 취재의 들머리는 싸리재마을로 정했다. 이곳에서 계관산과 북배산의 중간 지점인 싸리재 고개로 올라 방화선 산행을 할 요량이었다.
싸리재 종점의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다. 여기서 등산로 입구 삼거리까지는 콘크리트길이다. 왼쪽으로는 고추며 깻잎이 풋풋한 냄새를 풍기며 자라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바닥이 훤히 보일 만큼 깨끗한 작은 계곡이 펼쳐진다.이런 한적한 분위기 덕분에 길을 따라 산장과 펜션이 제법 들어서 있다.
- ▲ 2 바람을 따라 억새의 몸을 더듬어 본다. ‘촤르륵~’하고 누웠다 일어나는 소리가 좋다.
-
화악지맥 따라 방화선에 억새군락 이뤄
첫 삼거리를 지나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려는 찰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쪽으로는 길이 없어요!” 느릿재산장의 여주인인 김옥순씨다. “여름에 나무가 많이 자라서 못 가요. 우리 아들이 얼마 전에 올라갔다가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라고 되돌아왔는걸요. 덩치 좋은 젊은 사람들이라 웬만하면 올라가지 말라고 안 하겠는데, 지금은 누가 와도 못 올라가요.”
시작부터 길이 막혀 있다니 난감하다. 여름 동안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오르지 못할 정도라니.
“돌아서 가는 길이 있어요. 삼거리 닿기 전 오른쪽으로 보면 작은 오솔길이 있어요.거기로 오르면 큰촛대봉 근처까지 오를 수 있어요. 거기서부터 북배산 정상까지 능선을 타면 돼요.”
차로 이동해 큰멱골이나 작은멱골에서 들머리를 잡는 걸로 코스를 대체할 수도 있었지만 애초에 계획했던 싸리재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다시 지나왔던 삼거리로 돌아와 오솔길을 찾았다. 입구는 삼거리 직전 오른쪽에 있었다. 나뭇가지에 리본이 매달려 있어 찾기에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좁고 급한 경사가 시작되어 만만치 않다. 부드러운 흙길에 발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지도로 확인해 보니 이 길은 큰 느래기골이 있는 계관산 북서릉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길이 좁은 데다가 풀이 많이 자라 있어 앞으로 나가기가 무척 어려웠다.
입구에서 600m쯤을 오르면 묵은 묘 하나가 보인다. 키가 큰 나무 사이로 이따금씩 병풍처럼 화악지맥의 능선이 펼쳐진다. 절경이다. 곧 오르게 될 북배산과 가덕산의 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능선이 아직도 한참이나 눈높이 위에 걸렸으니 앞으로 올라야 할 길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직감한다.
역시나 묘를 지나니 줄곧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탁 트였던 전망이 사라지고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오로지 땅만 보며 발걸음을 옮긴다. 바닥엔 도토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것들을 하나 둘 주우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묵묘를 지나 1.2km 지점까지 300m의 고도를 줄곧 치고 올라왔다. 이 지점에서 앞으로 가는 길은 막힌다. 좌우 양방향으로 길이 나 있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오른쪽은 다른 능선을 타고 산을 내려가는 길이다.
방화선까지 ‘짧고 굵은’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통에 땅에 떨어진 도토리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30여 분을 그렇게 올라 드디어 방화선이 있는 화악지맥 능선에 다다랐다. 지도에서 확인하니 원래 가려던 싸리재 고개에서 계관산 쪽으로 1km 정도 더 가까운 지점이다. 계관산 정상까지는 불과 100m, 오른쪽 머리 위에 촛대처럼 뾰족한 큰촛대봉이 우뚝 서 있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북배산 정상으로 향한다.
만만치 않은 방화선 오르는 길
여름이 갓 지난 방화선은 정비를 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다. 곧 가을 건조기가 되면 깔끔하게 정리될 것이다. 잡초 사이로 껑충 키가 큰 억새가 비집고 올라와 있다. 형형색색 야생화도 방화선의 풍경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 ▲ 1 싸리재 종점에서 등산로로 향하는 길엔 깨끗한 계곡이 펼쳐져 있다.
-
약간의 오르막길을 지나니 북배산 능선의 장쾌한 풍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들어간 데 들어가고, 나온 데 나온’ 유려한 곡선은 참으로 여성스럽다. 하지만 능선을 따라 거침없이 쭉쭉 뻗은 굵은 선은 더없이 남성적이다. 언뜻 보면 중국의 만리장성이 연상된다.
전망도 일품이다. 왼쪽으로는 수덕산과 화악산이 거침없이 펼쳐지고 더 멀리로는 연인산, 명지산까지 조망된다. 좌우로 막힌 곳이 없는 높은 능선이라 시원한 가을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지나간다. 잠시 눈을 감고 귀를 여니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잔잔한 가을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이 거세질수록 소리는 더욱 탐스러워지니 억새가 절정을 이루는 만추엔 참으로 한번 들어볼 만하겠다 싶다.
싸리재 고개에 다다른다.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그늘 하나 없던 능선에 시원한 공간을 만들어 준다. 참나무 맞은편으로 원래 오르려 했던 길이 언뜻 나타난다. 나무가 무성하다. 억지로 오르면 오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역시 오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 ▲ 2 북배산 정상 부근에 펼쳐진 야생화 군락. 가을철 억새와 어우러지면 한껏 더 낭만스런 풍광을 뽐낼 것이다
-
가을이 되어 나뭇잎이 지면 다시 길이 난다고 하니 10월 중순 정도부터면 이 길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개에서 동쪽으로 난 흐릿한 내리막길은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방면으로 가는 길로, 600m 거리에서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 임도로 연결된다.
싸리재 고개를 지나 100m 지점엔 헬기장이 있고 이곳을 지나 나무계단을 오르면 통나무 의자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점심도시락을 펼쳤다. 오르락내리락 산책로 같던 길은 이 쉼터를 시작점으로 북배산 정상까지 쉼 없이 치고 올라간다. 그전에 속을 든든히 채울 요량이었다.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북쪽을 바라보니 북배산 정상 뒤로 가덕산, 몽덕산까지 줄을 잘 서 있다. 아직 억새가 만개한 것이 아니어서 산 곳곳에는 초록빛이 많이 남아 있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이곳의 고도가 해발 673m. 867m의 북배산 정상까지는 1.5km를 더 가야 한다. 능선 오르막길은 만만치 않다. 잠깐의 평지가 나타날 뿐 시종일관 정상을 향해 치고 올라간다. 뒤를 돌아보니 큰촛대봉이 벌써 저만치 멀리로 물러섰다.
‘북배산 600m’ 이정표가 있는 곳은 싸리재마을로 내려가는 하산로다. 곧이어 나타나는 ‘북배산 100m’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작은멱골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북배산 정상을 넘어 가덕산 쪽으로 가거나 큰멱골로 가지 않는 이상 하산은 이 두 곳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하산은 큰길로 하는 편이 안전
잡초 무성한 헬기장을 지나면 이윽고 북배산 정상이다. 방화선이 지나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른쪽 구석에 작은 정상비 하나가 덜렁 서 있는 것이 고작이다. 게다가 정상에는 키 큰 나무가 많아 풍경을 감상하기는 어렵다. 대신 마지막 이정표에서 정상에 이르기 전 왼쪽으로 있는 억새군락지가 전망 포인트다. 북배산이 이 근방에선 제법 높은 산인지라 가평 쪽 전망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헬기장은 능선길 한가운데 있어 막영을 하기에는 애매하다.
-
북배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계속 길을 이어가면 퇴골고개를 지나 가덕산~몽덕산까지 갈 수 있다. 마음 같아서야 가덕산까지도 가보고 싶지만 하늘이 점점 궂어지는 바람에 이쯤에서 하산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산은 작은멱골 코스를 통해 원점회귀하기로 했다. 약 700m 지점의 이정표에서 ‘목동리 종점 4.1km’ 방향을 따르고 두 번째 이정표에서 직진했다. 이 길을 따르면 단군제단을 지나 싸리재 종점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정표에는 작은 멱골로 가는 ‘목동리 종점 3.4km’ 방향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싸리재 종점으로 가는 길이 분명 있지만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는 것이다.
취재 결과 하산은 작은멱골 쪽으로 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이정표에 나와 있지 않은 싸리재 종점 가는 길을 택했으나 중간 지점까지는 염소가 다니는 길이 나 있었지만 해발 500m까지 내려오면서 감쪽같이 길이 사라졌다. 아마도 이쪽으로는 등산객이 드나든 지 꽤 오래 된 듯했다. 게다가 막판에는 잡목이 무성하게 자라 있고 낭떠러지 같은 급경사가 이어져 꽤 고생했다.
싸리재 종점으로 원점회귀할 요량이라면 애초에 첫 번째 이정표에서 ‘목동리 종점 3.5km’ 방향을 따라 가 작은멱골로 하산한 후 도로를 따라 걸어서 싸리재 종점으로 가거나 택시를 불러 가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작은멱골에서 싸리재 종점까지는 4.5km 정도다.
산행 길잡이 북배산 산행은 정상에서 북서쪽인 큰멱골, 서쪽 작은멱골, 남서쪽 싸리재 마을 등에서 오르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가장 북쪽에 있는 큰멱골은 농가와 염소막 사이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차단기를 지나면 산행 들머리가 나온다. 작은멱골로 오르는 길은 가장 짧게 산행을 하면서도 북배산 정상과 가장 가까운 능선에 닿을 수 있는 길이다.
싸리재 종점에서는 싸리재 고개나 계관산 정상 바로 아래의 능선으로 오를 수 있으나 싸리재 고개로 오르는 길은 현재 나무가 너무 무성해 진입이 어렵다. 가을이 깊어져 나뭇잎이 떨어지고 다소 정비되어야 산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북배산 정상에서 다른 산으로 종주하지 않고 바로 하산한다면 작은멱골이나 큰멱골로 내려오는 정식 등산로를 따르는 편이 낫다. 지름길이나 옛길이 있긴 하지만 흔적이 지워지거나 나무가 너무 무성하게 자라 길을 잃을 확률이 높다. 입산 가능 문의는 가평군 산림과(031-580-4693)로 하면 된다.
교통 청량리역 환승센터나 망우역 상봉터미널, 구리역에서 1330-3번 버스를 타면 가평터미널까지 간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이나 상봉터미널에서는 춘천·화천 행 버스를 타면 가평터미널까지 갈 수 있다. 요금 동서울 5,900원, 상봉터미널 6,000원. 전철로는 7호선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이용하면 가평역까지 갈 수 있다. 요금 1,700원. 약 50분 소요. 가평역에서 가평터미널은 지척이다.
가평터미널에서 싸리재 종점까지는 33-22(싸리재 종점 행, 가평터미널에서 13:00 출발, 싸리재 종점에서 13:30 출발)이나 33-16(멱골 종점행, 가평터미널에서 07:15 출발, 멱골종점에서 07:45 출발)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나 각각 하루 1번씩만 운행한다.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택시(가평터미널에서 싸리재 종점, 작은멱골까지 2만 원 정도)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문의 가평 개인택시 031-582-3091, 동운택시 031-582-2416.
숙박(지역번호 031) 싸리재 종점을 지나 가평별장(582-1108), 싸리재산장(582-7610), 느릿재펜션(010-9289-4406) 등이 있다. 작은멱골 부근에도 폴프랑펜션(582-3080) 등이 있다. 작은멱골의 북배산흑염소농장(582-8209)에서는 숙박을 할 수 있으며 흑염소요리를 한다. 수육과 주물럭, 탕 등을 낸다. 예약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