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뭐죠? 저기 저 갯벌에 붉은 거요.” 일행은 손가락 끝에 힘을 줘 한 곳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갯벌로 눈길을 돌렸다. 갯벌에 붉은빛이 가득하다. 신비로웠다. 순간 순천만 용산전망대에서 본 풍경이 떠올랐다. 칠면초였다. “아! 저거요 저건 칠면초라는 건데요… 여기서 또 보네요.” 일행은 붉고 푸른빛을 발산하는 바닷가 풍경에 홀린 듯 한동안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 |
붉고 푸른 갯벌
무안은 땅의 반 이상이 황토다. 그리고 대부분의 바다가 갯벌을 품고 있다. 그래서 무안은 갯벌과 황토의 고장이다. 갯벌과 바다, 황토가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무안 곳곳에 있는데 그 중 이번 걷기여행 코스는 유월리 무안생태갯벌센터에서 송석리 송계어촌체험마을까지 가는 약 8.5km 구간이다. 이 길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자연이 만들어 내는 빛과 색이다. 봄의 신록, 가을 단풍, 빛깔 좋은 꽃 등의 아름다움은 흔히 볼 수 있지만 바다와 갯벌 황토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신비스러운 색의 향연을 보려면 이 길을 걸어야 한다. | |
무안생태갯벌센터 건물 2층에서 바라본 갯벌 풍경.
걷기여행의 출발점은 무안군 해제면 유월리 1-1, 무안생태갯벌센터다. 무안의 갯벌은 3000여 년 전부터 퇴적과 침식을 거듭하며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형성된 갯벌의 생태와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 무안생태갯벌센터다.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개관), 명절 연휴 휴관.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료 500원~1500원]
무안생태갯벌센터 2층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인상적이다. 칠면초 군락이 붉은 빛을 한껏 발산한다. 붉은 빛 사이에 푸른빛 생명체가 햇볕에 반짝인다. 갯벌의 원래 색이 그 사이를 메우고 있으며 연무에 싸인 바다가 그윽하게 빛난다. 풍경을 감상하고 무안생태갯벌센터에서 무안의 갯벌에 대한 전시물 관람 및 정보를 얻는다. 생태연못, 염전체험장, 갯벌탐방로, 칠면초 등 염생식물 단지 등도 이용할 수 있다. 다 둘러 본 뒤 매표소 앞을 지나 직진, 길을 만나면 우회전해서 길을 따라 걷는다(바다는 오른쪽에 있다).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길은 황토밭 사이로 났다. 푸른 생명이 자라나는 밭은 푸른빛으로 빛나고, 아무것도 심지 않은 밭이라도 황토의 붉은 빛이 강렬하다. 더 멀리 갯벌은 붉고 푸른빛이 어울려 있으며 연무에 싸인 바다가 배경이 되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길에서 볼 수 있는 이 모든 풍경은 자연이 선물하는 빛과 색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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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낮게 흐르고
바다와 갯벌, 황토가 만들어 내는 빛의 향연을 즐기며 걷는 길은 여행자 마음을 밝게 만든다. 길은 대부분 바다와 나란히 놓여 있지만 무안생태갯벌센터에서 나와 약 3km 정도 지나면서 바다와 더 가까워진다. 갯벌로 내려갈 수도 있다. 바다처럼 낮게 깔린 길은 주변 풍경과 어울려 그 자체로 걸음을 유혹한다. 이 길에서는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여행자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도 곳곳에 있다.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야 하지만 가끔 다니는 차만 조심하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가을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고 이마에 등줄기에 땀이 흐르지만 주변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힘든 줄 모른다. 곧게 뻗은 도로 끝은 오르막이다. 길 오른쪽 옆에는 갯벌과 바다가 펼쳐진다. 아이들이 갯벌에서 논다. 몇몇은 앉아서 흙을 파고 있고 몇몇은 갯벌을 뛰어 다닌다. 저 멀리 바닷가에서 어부가 낚시 도구를 손질한다. 조금 있으면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것 같다. 길 옆 갯벌에는 일을 마친 어망이 한가롭게 햇볕을 쬔다. 이런 풍경을 보며 고개를 넘는다. 이 고개만 넘으면 도리포다.
도리포는 옛날에 중국과 가장 가까웠던 항구였기 때문에 중요한 교역항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95년에 14세기 강진 청자 639점이 인양되는 등 고려청자 매장지역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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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포, 또 다른 희망의 시작
청자를 인양했다는 역사적인 이유 말고도 도리포는 고즈넉한 바닷가 마을 자체로 여행자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바다와 항구와 마을에 햇볕이 가득 찼다. 물결마다 부서지는 햇볕은 휘발하는 기체처럼 청량하게 하늘로 흩어지는 것 같다. 간혹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는데, 그럴 때면 도리포 바다 앞에 선 여행자도 바닷가 풍경이 된 듯하다. | |
도리포 갯바위 위에서 바라본 갯바위와 바다. 바다 빛이 아름답다. 저 바다 끝에 보이는 곳이 함평이다.
도리포는 길의 끝이다. 길의 끝은 갯바위다. 누군가 그 갯바위에 ‘희망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희망봉 위에는 무안군 보호수 ‘행운을 비는 나무’가 푸르게 자란다. 그 앞 바다가 함평만이고 바다 건너가 함평 땅이다. 구름 낮게 깔린 도리포 바다는 오늘도 고즈넉하다. 갯바위에 올랐다. 행운을 비는 나무 옆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간혹 불었고 구름 사이로 해가 나타날 때면 따가운 햇볕도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어도 행복했다. 그리고 행운을 비는 나무에 소원을 빌었다. ‘이곳에 와서 행운을 비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해달라’고.
수녀복을 입은 사람들이 갯바위를 오가며 허리 굽혀 무엇인가를 줍고 있다. 삶의 한 부분을 포기한 사람들의 뒷모습이 바다에 겹친다. 바다로 머리를 내민 갯바위, 희망봉 정수리에 앉아 생각해본다. ‘한 삶을 버린 저들이 또 다른 희망을 줍는다. 희망봉은 허리를 굽힌다.’ 풍경이 이끌어 낸 상념에서 깨어나자 허기가 졌다. 어민복지회관에서 음료수와 간단한 먹을거리로 시장기만 속이고 도착지점인 송계어촌체험마을로 길을 재촉했다. 이제 약 1km만 더 걸으면 된다. 그곳에 가면 배를 타고 나가 바다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다(물이 차고 빠지는 때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갯벌 및 어장체험을 하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
어차피 여행이란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나를 찾는 일 아니겠는가. 도리포에서 발걸음이 싱그러워진다. | |
가는 길 *자가용 서해안고속도로 함평IC - 북무안IC - 현경면 - 해제면 유월리 수암교차로에서 우회전 - 무안생태갯벌센터 호남고속도로 광산IC - 13번 국도 - 무안~광주간 고속도로 북무안IC - 현경면 - 해제면 유월리 수암교차로에서 우회전 - 무안생태갯벌센터(다 걸은 뒤 송계어촌체험마을에서 해제면 가는 버스를 타고 해제면까지 간 뒤 거기서 무안 가는 버스를 탄다. 유월리에서 내려 차를 세워둔 무안생태갯벌센터로 걸어간다.)
*대중교통 무안버스터미널에서 해제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유월리에서 내려서 수암교차로에서 용산마을 쪽으로 도로를 따라 약 1.3km 정도 걸가면 무안생태갯벌센터가 나온다.(다 걸은 뒤 송계어촌체험마을에서 해제면 가는 버스를 타고 해제면까지 간 뒤 거기서 무안 가는 버스를 탄다.)
숙박 도리포와 송계어촌체험마을에 민박집이 있다.
주변 여행지 *회산 백련지
10여 만 평의 드넓은 녹색 연잎의 향연, 그윽하게 피어난 연꽃의 자태를 볼 수 있는 곳. 서해안고속도로 일로IC로 나와서 우회전 한 뒤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입장료 성인 3000원. 어린이 2000원.
*초의선사탄생지
다산 정약용 등과 교류를 하며 한국차문화를 중흥시킨 초의선사 탄생지를 소박하게 잘 꾸며놨다. 무안에서 1번 국도를 타고 목포 쪽으로 계속 내려가다가 목포시 접경지역에서 왕산면 삼향리 쪽으로 우회전(이정표 있음)하면 된다. 입장요금 없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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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좋은 시기 : 가을
주소 : 출발지 : 무안생태갯벌센터 (지도보기) 도착지 : 송계어촌체험마을 - 전남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30-4
경로 : 네이버 테마지도 보기 총 소요시간 : 3시간20분
총거리 : 8.5km
준비물 : 생수 한 병. 편안한 운동화. 햇볕 가릴 모자.
문의 : 무안생태갯벌센터 061-453-5010. 송계어촌체험마을 061-454-8737 | |
거의 모든 구간 바다를 볼 수 있는 길이다. 무안 자연의 특징인 황토와 갯벌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자연의 색을 만끽할 수 있다. 평탄한 도로를 따라 걷는다. 간혹 약간의 오르막이 나오지만 아이들도 쉽게 걸을 수 있다. 도리포에 도착할 때까지 햇볕 피할 휴게소 등이 없다. 도리포에 횟집과 식당, 가게, 민박집이 있고 1km 정도 떨어진 송계어촌체험마을에는 민박 및 갯벌체험장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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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장태동
- 여행기자를 거쳐 2003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전국을 걸어 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는다. [서울문학기행],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가 살아 있는 서울·경기], [맛 골목 기행], [서울 사람들], [대한민국 산책길] 등의 책을 썼다. 이름 없는 들길에서 한 번쯤 만났을 것 같은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