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피어날 때 걸으면 예쁜 길이라고 그곳에 사는 사람이 말했다. 맑은 날은 마라도까지 다 보인다며 자랑을 잇는데 오늘은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낀 제주도 바다는 이번이 처음이다.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안개와 희미하게 보이는 바다 앞에서 문뜩 영화 [이어도]가 생각났다. 김기영 감독이 1977년에 만들어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한 작품이다. 어릴 적에 한 번 봤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으스스한 분위기의 몇몇 장면이 아직도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안개 낀 제주 바다가 그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실제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149km에 있는데 물에 잠겨 있다고 알려졌다. 영화 [이어도]를 촬영한 곳 중 한 곳인 ‘차귀도’는 이번 걷기여행 코스 중 한 곳인 신도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지점에 있는 고산리 앞 바다에 있다. | |
서림연대와 담수물놀이장
제주 바다는 맑고 푸르다. 거기에 노을이 피어나 바다와 하늘을 온통 울긋불긋 물들이는 장면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다고 생각만 해본다. 걷기여행 출발지점인 ‘서림연대’에 도착했다. ‘연대’란 옛날에 횃불과 연기를 피워 신호를 보내던 통신수단이다. 산봉우리나 높은 곳에 있는 것이 ‘봉수대’라면 해안가나 낮은 곳에 있는 것이 ‘연대’다. 서림연대와 신호를 주고받던 연대가 약 4~12km 거리에 있었다. 몽골과 왜구의 침입에 시달렸던 제주도의 역사에서 ‘연대’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 |
서림연대는 별도의 통신수단이 없었던 옛날에 바닷가나 낮은 곳에 만들어져 연기나 횃불을 피워 소식을 전하던 시설물이다.
‘연대’와 함께 적의 침입에 대비해 바닷가에 만든 게 ‘환해장성’이다. 돌을 쌓아 성을 만든 것인데 고려시대부터 쌓았다고 전해진다. 그 길이가 300리에 달했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약 120km 정도 되는 셈이다. 현재 제주도 해안선 둘레 길이가 대략 220km 정도 되니까 그 옛날 제주도 해안선 둘레의 반도 더 되는 길이의 성을 바닷가에 쌓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그 ‘환해장성’을 따라 ‘연대’가 있었으며 내륙에는 봉우리(오름)에 봉수대를 쌓았던 것이다.
서림연대를 출발, 잘 닦인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다. 바닷가 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곳은 담수물놀이장이다. 옛날에는 정수장으로 사용했던 시설이었는데 지금은 물놀이장으로 사용한다. 주변에 바다를 보며 쉴 수 있는 의자와 푸른 풀밭, 이국의 나무들, 현무암 갯바위와 바다가 있어 이국의 풍경을 만든다. 서림연대에서 담수물놀이장으로 가다가 보면 물놀이장이 정면에 나온다. 그 앞에서 우회전, 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또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회전, 그리고 다음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일주도로와 만나는 삼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좌회전 한 뒤 조금 더 가다 만나는 일과사거리(일과2리사거리)에서 좌회전, 대정농협유통자재사업소 앞을 지나면 일과2리 해안길이 나온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바닷가 해안길이다. | |
길이 마음으로 들어왔다
일과2리 어촌계 앞부터 신도항까지 약 7km 구간은 모두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 걷는 길이다. 맑은 공기가 가슴을 씻어 주는 느낌이다. 푸른 바다와 바닷가 풍경이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바닷가 길을 걷는 느낌이 그랬다. 낚시터 안내판이 길가에 서 있다. 이 지역은 수심이 깊고 간만의 차가 커서 고기가 잘 잡힌다는 것이다. 낚시꾼들에게도 인기겠지만 검은빛 현무암 갯바위가 드넓게 펼쳐진 풍경과 함께 갯바위에서 부서지는 흰 파도를 보니 속이 다 후련하다. 그 갯바위 끝에 사람이 있다. 바다에 낚싯줄을 던지고 있었다. 그 옆 한 사람은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사람도 풍경이 됐다.
생활의 흔적이 역력한 남방 하나 걸친 아저씨가 가까운 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희끗한 머리가 모자 사이로 삐져나왔다. 부서지는 포말이 흩날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바다만 바라본다. 바다와 사람들은 이곳에서 그렇게 생활처럼 지내나 보다. 길을 걷는 여행자는 바다와 바다사람들의 관계를 생각지 않고 그저 풍경처럼 보며 지나간다. | |
이번 걷기여행 코스 중 약 8km 정도가 바다 바로 옆을 걷는 길이다. 제주 바다를 원없이 볼 수 있다.
익숙해진 풍경에 마음이 지루할 때쯤 낭만적인 풍경이 또 나타났다. 갈림길은 바다처럼 낮게 엎드린 모습이었다. 오른쪽은 내륙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계속 이어지는 바닷가 길이다. 바닷가 길을 택해 걸어가다 보니 갯바위가 다른 곳보다 거칠고 기이하다. 그 앞의 바다는 더 거세게 파도를 밀어낸다. 갯바위 위로는 푸른 풀이 자라난 언덕이며 그 언덕 위에 길이 났다. 갯바위가 언덕을 만들고 그 위에 푸른 풀을 키웠으며 사람의 길 또한 그 위로 지나게 한 것이다. 사람들은 부서지는 바다와 갯바위가 보이는 바닷가 언덕 풀밭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여행자는 그런 풍경을 멀리서부터 바라보며 걷는다. 그 순간 걷는 게 행복했다.
그렇게 길은 사람을 유혹했다. 신도항까지 걸은 뒤에 신도항 어촌계 건물 옆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이제부터 약 2km는 제주 농촌 풍경을 볼 수 있는 길이다. 길 양쪽 옆으로 펼쳐진 넓은 밭과 돌담은 제주를 제주답게 만들고 있었다. 그 길 끝에 이번 걷기여행의 종착점인 신도1리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계획 했던 여행이 끝났는데 몸은 자꾸 더 가라 한다. 버스를 기다리며 다음 여행목적지로 곽지해변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맑고 푸른 바다를 보며 걸었다면, 이제는 그 맑고 푸른 바다에 온몸을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 |
가는 길 *자가용 제주시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곽지해수욕장 방향으로 차를 달려 한경면 지나 대정읍 방향으로 간다. 일과2리사거리 지나 약 1.5km 지점에서 일과1리(대수동) 방향으로 급하게 우회전 한다.(만일 우회전이 안 되면 약 600m정도 더 가서 대정서초등학교 앞에서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다시 600m 정도 달려 일과1리(대수동) 방향으로 좌회전 하면 된다. 좌회전 한 뒤 500m 지점이 걷기여행 출발지점인 서림연대다.(서림연대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으면 서림연대를 돌아본 뒤 약 500m 정도 더 가서 담수물놀이장에 차를 세우고 거기부터 걸어야 한다. 종착점인 신도1리에 도착하면 일주도로를 오가는 시내버스를 타고[남쪽(대정읍, 서귀포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다시 대정서초등학교 앞에서 내려 차 있는 곳까지 걸어야 한다.
*대중교통 제주공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제주 일주도로를 서쪽으로 도는(‘서회선’ 이라고 함) 버스를 타고 곽지리, 협재, 금능리 등을 지나고 대정서초등학교 정류장에 내린다. 거기서 버스타고 왔던 길을 거슬러 북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빠지는 길[일과1리(대수동)]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곧장 가면 길 왼쪽에 돌로 쌓은 네모난 무덤 같은 게 나온다. 그게 서림연대다. 대정서초등학교에서 서림연대까지는 약 1km 정도 된다.
숙소 걷기여행 종착점인 신도1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금능해변, 협재해변, 곽지해변 등지로 가면 민박 및 모텔, 펜션이 있다.
먹을거리 제주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것 중 ‘오분자기해물된장찌개’가 있다. 이 밖에 갈치조림이나 고등어조림도 먹을 만하다.
주변여행지 걷기여행 종착점인 신도1리 버스정류장에서 15km 거리에 금능사거리가 있고 거기서 바다 쪽으로 1km 정도만 들어가면 금능해변이 나온다. 금능해변에서 북쪽으로 약 500m만 가면 협재해변이 나온다. 협재해변에서 북쪽으로 약 11km 정도 올라가면 곽지해변이 있다. 이 세 해변은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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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좋은 시기 : 봄. 가을. 또는 노을 필 때.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지도보기)
경로 : 네이버 테마지도 보기 총 소요시간 : 4시간 30분
총 거리 : 11km
준비물 : 생수 한 병. 편안한 운동화.
현무암 갯바위와 푸른 바다, 바닷가 언덕 위 집 등 제주 바다 풍경을 만끽 할 수 있는 해안도로다. 전체 11km 구간 중 약 8km 정도가 바다 바로 옆에 있는 길이다. 나머지 길은 넓게 펼쳐진 제주의 농촌 풍경이다. 해안길이기 때문에 오르고 내려가는 길이 없다. | |
여름 햇볕을 차단할 수 있는 것만 준비하면 아이들과 함께 걸어볼만 하다. 다 걸은 뒤 주변 15km~30km 안에 있는 금능, 협재, 곽지 등 제주의 유명한 해변에서 하룻밤 보내며 물놀이를 즐길만하다. | |
- 대정읍 신도2리 관광어촌마을조성 사업 완료 | 제주일보 2009-11-12
- 서귀포시가 대정읍 소도읍육성사업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신도2리 관광어촌마을조성사업이 완료돼 새로운 해안경관 조성으로 올레꾼 등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해안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정읍 소도읍육성사업은 지난 2009년 4월부터 착공돼 추진되고...
- 글∙사진 장태동
- 여행기자를 거쳐 2003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전국을 걸어 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는다. [서울문학기행],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가 살아 있는 서울·경기], [맛 골목 기행], [서울 사람들], [대한민국 산책길] 등의 책을 썼다. 이름 없는 들길에서 한 번쯤 만났을 것 같은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