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주님 공현 전 금요일(1/6)|오늘의 말씀과 묵상

문성식 2012. 1. 6. 16:40




주님 공현 전 금요일(1/6)







    말씀의 초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로 세례를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수난의 피를 흘리셨다. 참인간이요 참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세례를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의 피의 잔에도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제1독서). 요한과 예수님의 차이점을 재는 척도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차이이다. 요한은 회개의 표시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사명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사명을 맡으셨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모든 사람의 영혼 안에 새겨질 인호이시며,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실 것이다(복음).
    제1독서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5-13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 <또는 루카 3,23-38 또는 3,23.31-34.36.38> 그때에 요한은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일 년 중에 가장 춥다는 소한입니다. 지금 저는 작은 시골 본당에서 8년째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꽃을 통해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고자 해마다 국화를 키워 가을이면 국화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지금은 널리 알려져 가을 축제 때에는 이 지역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국화를 구경하러 저희 성당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올 가을에 피어날 국화들이 온실 하우스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국화가 얼어 죽지 않도록 온실에 연탄을 때서 보온을 합니다. 추울 때는 행여 국화가 얼어 죽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소중하게 돌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요한 23세 교황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닫힌 교회의 창문을 활짝 열고 신선한 공기가 교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숨통을 트여 놓으신 분입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박물관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삶이 충만하고 꽃이 만발한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물러나 세상을 초탈해서 사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고 광야로 나갔다가 다시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내내 주변의 많은 사람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큰 희망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뿐 아니라 교회의 꽃밭을 가꾸는 일꾼들입니다.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교회의 꽃밭을 가꾸어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모여 올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너는 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