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12/30)|오늘의 말씀과 묵상

문성식 2011. 12. 30. 09:30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12/30)







    (가정 성화 주간) 교회는 신자들이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고 본받게 하고자, 1921년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을 ‘성가정 축일’로 제정하고, 1969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이 축일을 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로 옮겼다. 또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2001년부터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부터 한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기로 하였다. ▦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우리 생활의 기초는 가정이고 모든 출발도 가정에서 비롯합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가족이 함께 기도하며 아름다운 성가정을 이루면 주님의 평화와 행복이 가정에 깃듭니다. 주님께 우리 가정을 축복해 주시도록 청하고 특별히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을 기억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집회서는 부모에 대한 효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모를 인내롭게 보살피고 공경하는 자녀들은 삶에서 기쁨을 얻고 복을 받는다(제1독서). 일찍이 남편을 잃고 혼자되어 평생 단식과 기도로 하느님을 섬기며 살아온 한나가 예수님을 증언한다.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는 가난한 이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아본다(복음).
    제1독서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한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2-6.12-14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기는 자라면서 지혜가 충만해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40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언젠가 교회에서 하는 ‘약혼자 주말’에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혼인을 눈앞에 둔 청춘 남녀가 온통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이 뿜어내는 미래에 대한 설렘과 사랑의 열기로 강당 가득 행복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그들 각자가 지금의 배우자를 왜 선택했는지를 말했습니다. “외모가 예뻐서”, “성격이 좋아서” “나에게 잘해 줄 것 같아서” “유머 감각이 있어서” “대인 관계를 잘해서” “건강해 보여서” ……. 그러나 혼인을 먼저 한 선배들은 이런 이유들이 오히려 ‘환멸’로 바뀐다고 조언합니다. 아름다운 외모는 어느덧 싫증이 나고, 장점으로 보였던 배우자의 모습이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고백합니다. 사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눈을 멀게 하고 혼인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외적 조건이나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들을 눈멀게 하여 운명처럼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은 하느님이십니다. 혼인으로 한 가정이 완성되는 여부는, 자신들이 기대하고 설정한 미래의 이상 실현이 아니라, 사랑에 눈멀게 해서 부부로 엮어 준 그 운명 속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이를 실현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운명으로 엮인 모든 가정 안에는 반드시 하느님의 뜻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남편을 일찍이 잃고 평생을 과부로 혼자 산 한나도, 아이가 없어 평생을 멸시받으며 살아야 했던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도, 부부 아닌 부부의 운명을 살아야 했던 마리아와 요셉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모두 결손 가정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 속에서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자신들의 길을 충실히 살았습니다. 자신들의 내면에 흐르는 ‘에로스’를 ‘아가페’로 승화시켜 자신들의 삶이 하느님의 도구가 되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가정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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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가정 속으로 GOGOGO(바다의별 청소년수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