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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산행을 택했다. 술로 끝장을 보는 망년회도 재미있지만 산꾼에게 산만큼 재미있는 건 없다. 송년산행, 당일로 끝내긴 아쉬워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는 펜션을 예약해 놓고 산으로 간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도록 멀지 않은 곳에, 지나치게 산행이 힘들지 않은, 원점회귀 가능한 산을 골랐다. 가평 대금산이다.
큰 금이 나왔다 해서 대금산이다. 일제 때 이 산의 소림광산에서 말 한 마리만큼 큰 금광석이 나왔다는 얘기와 함께 대금산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곳 노인들은 대금산 아래 두밀리의 옛 지명이 ‘삼이곡’이었다고 말한다. 십이탄(十二灘) 건너 부락이라고도 불렸는데 물길을 열두 번 건너야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오지여서 연유한다. 두밀리는 나라에 난리가 날 때마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피난처로 찾았던 오지였다.
- ▲ 대금산 아래 펜션에서 한 해를 정리하며 모닥불을 피웠다. 고기를 굽고 건배를 나누며 산 아래에서 송년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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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밀리 버스종점,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정류장 표시는 없고 버스를 돌릴 만한 공간만 있다. 등산안내도에 표시된 두밀상회는 간판이 없다. 낡아 잘 열리지 않는 미닫이문 너머로 과자와 라면 같은 것들이 상점임을 알려준다. 등산 안내도는 등산로 표시를 고의로 지운 흔적이 있다. 등산객이 불편했던 주민이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한다.
입산한다. 이름 없는 시골 뒷산처럼 지저분하다. 근육의 힘을 발휘할수록, 숨을 몰아쉴수록 정돈된 모습으로 산이 바뀐다. 곧게 뻗은 잣나무숲, 흐트러짐 없이 바르게 살고자 수행하는 승려의 모습이다. 숲 내음이 사찰의 향내음처럼 깊고 그윽하다. 쓰러진 이정표 덕분에 한 숨 돌리며 지도를 살핀다. 수 년 전 정맥을 같이 타며 친해진 정성필(46) 전 한국산악회 사무국장과 산동무인 안명선(38) 아이더 검단산점 점장과 함께한다. 아무리 먼 길도 즐거운 건 이들이 있어서다.
낙엽의 바다다. 안 그래도 길이 희미했는데, 지워졌다. 능선을 따르는 코스라 당황하는 이는 없다. 등산객 둘이 온다. 길을 잘못 들어서 꽤 고생했단다. 몇 마디 나눠보니 등산지도 없이, 코스에 대한 이해 없이 이정표를 따른 듯하다. 차림새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나서도 모자람 없는데 산길을 찾을 정도는 아니다. 길을 잃어 봐야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 ▲ 정상에서 두밀이재로 내려서는 능선길. 억새와 마른 가지의 나무가 섞인 가파른 내리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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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팔라올수록 풀어져 있던 근육에 군기가 든다. 명령대로 착착 움직이며 몸의 효율성을 올린다. 산에 못 간 사이 무럭무럭 피어난 뱃살도 슬쩍 긴장하는 눈치다. 호흡이 가빠오지만 멈추지 않고 매몰차게 치고 오른다. 숨이 차오면서 고통이 부풀어 오른다.
산행 시작의 익숙한 고통, 이걸 넘지 못하면 산을 넘기 어렵다. 산을 넘기 위해선 몸 안의 산을 먼저 넘어야 한다. 산행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몸 안의 산을 넘는 시간이 짧다. 메조히스트가 되어 밀물처럼 몰려드는 고통을 만끽한다. 오르가슴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몸 안의 깔딱고개인 사점(死點)을 넘는 순간 찾아온다. 가시덤불로 가득한 비등산로 급사면을 오르다 발 디딤이 푹신한 편백나무숲에 온 것처럼, 몸이 확 바뀐다. 호흡이 편하다. 몸이 등산에 맞도록 최적화되었다.
추락주의 안내판이 긴장감을 돌게 한다. 몇 발자국 걸어도 위험한 데는 없다 싶은 찰나 낭떠러지 전망대다. 참 귀한 경치다. 화려한 바위산이 아니라서 귀하기도 하지만 윗두밀이 한눈에 내려 보인다. 거대한 분화구 모양의 터라 놀란다. 대금산에서 불기산으로 이어진 줄기는 분화구를 둘러싸고 있다. 가평읍내에서 가깝지만 산세가 차단막 역할을 하고 있다. 나라의 난리를 피할 만한 곳이다. 세속적인 소리를 삭제한 장면을 서울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놀란다. 가평을 경기도의 강원도라 하는 이유를 알겠다.
- ▲ 정상으로 이어진 길의 바위 전망대. 두밀리의 분화구 같은 지형이 한눈에 드는 산행의 최고 조망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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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7m봉의 억새가 사는 법
벼랑 위에서 마을을 굽어보는 소나무가 훌륭하다. 살아 꿈틀거리는 자태로 봐서 나무 속에 구렁이가 있거나 신령스런 기운이 담겨 있을 것만 같다. 한쪽엔 굽은 소나무가 두밀리를 향해 한껏 허리를 숙이고 있다.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처럼 말이다.
여유 있는 호흡으로 오른 정상, 경치가 약하다. 터도 좁고 나무에 둘러싸여 호탕한 맛은 없다. 철탑 시설물은 무인강우경보기다. 그나마 한쪽에 툭 튀어나온 바위가 있어 서쪽 대금이계곡의 부드러운 패임이 눈에 든다. 초록을 유지한 침엽수와 가지만 남아 황폐한 분위기의 활엽수가 편을 가르고 있다. 행글라이더를 타고 뛰어내리고픈 충동을 부르는 바위 꼭대기다. 정상 이후부터 장난을 걸어오는 건 억새다. 산의 가장 여린 살결 솜털마냥 뽀송뽀송하게 나부낀다.
잡담과 잡념을 쓸어가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몸과 정신이 온통 길에 쏠린다. 빨랫줄로 내리막길에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놓았다. 빨랫줄에 의지했다간 체중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천천히 디디며 내려선다. 두밀이고개는 엄마 등마냥 푸근하다. 푹신한 낙엽과 풀, 여유로운 터가 한숨 돌리고 가라며 붙잡는다. 여기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윗두밀, 서쪽으로 가면 대보리다. 여기서 하산하면 이제 막 시동을 건 심장이 실망한다. 능선을 좇아 오르막에 파묻힌다.
- ▲ 592.7m봉에서 본 대금산과 명지지맥. 뒤로 보이는 산줄기 가운데 높게 솟은 세 봉우리는 약수봉~838m봉~촛대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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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종주하는 산꾼은 적은 듯 길이 희미하다. 길 냄새에 신경 쓰며 오른다. 산을 넘자 다시 산이다. 삶은 늘 사람의 능력보다 더 높은 산을, 더 무거운 짐을 지게 한다. 꾸역꾸역 오긴 왔는데 가야 할 산덩이에 한숨이 날 때가 있다. 그냥 주저앉거나 에라 모르겠다며 바로 하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인연의 실타래에 엉킨 것이 생이라 그러지 못한다. 간혹 지나온 산줄기를 보고 있으면 공허해진다.
592.7m봉, 억새가 바람에 물결친다. 포식자를 피하는 물고기떼처럼 우르르 움직이길 반복한다. 억새는 살아남기 위한 유연성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안다. 오랜 세월 뿌리 깊숙한 곳에서 새기고 또 새겨왔을 생존법이다. 뒤돌아본다. 山자로 솟은 세 봉우리가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탁월하다. 약수봉~838m봉~촛대봉으로 이어지는 800m대 줄기다. 700m를 겨우 넘는 대금산은 귀퉁이에 슬쩍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느낌이 이상하다. 527m봉으로 가는 길, 앞에서 표지기가 있다며 오라고 하는데 잘못 든 것 같다. 능선이 불분명하게 퍼진 채로 흘러내리는 지형이다. 지도를 보니 능선 구분 없이 희미하게 뻗어 있다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세 갈래로 완전히 갈린다. 처음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땐, 몇 미터 차이지만 막상 다 내려서면 1km 이상 크게 차이난다.
- ▲ 두밀이고개와 592.7m봉 사이의 안부 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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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서는 길은 능선 구분이 어렵고 몇 발자국만 잘못 들어도 완전 엉뚱한 곳에 닿는다. GPS를 보니 왼쪽 두밀천 상류로 가라앉는 지능선 방향으로 잘못 들었다. 오른쪽으로 100m를 가니 표지기가 여럿 달린 선명한 산길이다.
수리재에 닿자 주위가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하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때문이다. 사람 흔적 드문 산길 때문이다. 하고 탓해 보지만 이 괴기스런 분위기는 저 커다란 피나무가 만들고 있다. 마귀할멈의 손톱처럼 가지를 뻗치고 선 큰 피나무는 예사 나무가 아닌 듯 오색천을 두르고 있다. 능선을 버리고 잰 걸음으로 두밀리로 하산한다.
산 아래 펜션에 배낭을 풀고 숯불에 고기를 구워 송년만찬을 즐긴다. 완전한 어둠의
시간에 캠프파이어가 시작된다. 산행 후에 찾아오는 적당한 노곤함, 허기를 즐겁게 채웠다는 만족감, 적당한 취기가 섞여 불꽃이 되어 함께 타오른다. 한 해 동안 즐겁고 안전하게 산행하였음에 감사하며 건배를 나눈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정성필씨가 노래를 부른다. 가평의 은밀한 산골에 산 사나이의 흥겨운 곡조가 울려 퍼진다. 한 해가 또 간다는 야릇한 슬픔이 불 속에서 춤을 춘다.
- ▲ 고로쇠 작목반에서 잣나무 숲으로 이어진 콘크리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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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당일 산행
대금산은 원점회귀 가능하며 당일 산행으로 어렵지 않고, 인근에 펜션이 많아 송년산행지로 안성맞춤이다. 등산안내도가 있는 버스종점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가면 ‘고로쇠 작목반’이라 적혀 있는 컨테이너 사무실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편 등산로 입구로 들면 된다. 능선에 이르면 쓰러진 이정표가 있다.
임도처럼 잘난 사면 길을 버리고 능선으로 바로 치고 올라야 한다. 두밀이고개에서는 두밀리로 다시 하산할 수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592.7m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간 흔적이 있는데 이걸 따라가면 길이 끊어진다. 592.7m봉에서 몇 발짝 직진해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야 한다. 수리재에서 두밀리로 가는 길은 희미하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20분 만에 하산할 수 있다. 대금산 원점회귀 산행은 8.5km에 4~5시간 정도 걸린다. 산불방지 입산통제가 풀리는 12월 15일부터 산행가능하다.
교통 가평버스터미널에 두밀리행(윗두밀) 1일 5회(06:50, 10:30, 08:30, 16:20, 18:50) 버스가 운행한다. 30분 걸린다. 두밀리 종점에서는 가평터미널 출발 30분 후(07:20, 11:00~)에 돌아나간다. 종점의 간판 없는 구멍가게인 두밀상회는 백반(6,000원)과 라면(3,000)을 차려주며 간단한 안주와 술을 판다.
숙식(지역번호 031) 대금산 인근에 펜션은 많으나 식당은 없다. 가평읍내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숙소는 옹달샘펜션(582-4240), 카밍힐펜션(010-3999-4402), 메종드파티오펜션(581-5805), 멀리 가는 향기 (581-5955), 불기산장(581-3721), 남이섬별펜션 (011-369-9909) 등이 있다. 캠프파이어가 가능한 숙소는 멀리가는 향기펜션이며 3만 원을 받는다(184페이지 펜션 가이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