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21세기 교회상을 제시해 본다

문성식 2011. 12. 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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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목사

 

비탈길에 선 교회의 정체성

 

  70년대와 80년대에 무섭게 성장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교회가 그 놀라운 성장을 경험한지 10년도 안 되어서 쇠퇴하고 있다. 정체를 거듭하더니 필자가 속하여 있는 교단은 지난1998년도 1.6펴센트의 교인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거의 4만 명 가까운 교인이 줄었다는 것이다. 일년에 4만 명의 교인이 줄었다는 것도 심각한 일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바야흐로 한국교회가 비탈길에 서서 미끄러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한번 미끄러지기 시작한 교회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두렵고 걱정이 되는 것이다.

  다른 교단들은 아직 교인의 감소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지 않지만 사정은 별로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게 우리 모두의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느 교단은 교세가 줄었는데 어느 교단은 교세가 줄지 않았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느 교단은 비교적 발표가 정직하고 어느 교단은 그렇지 못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느낌과 감이 있는 법인데 그 느낌과 감이 좋지 않다는 것에 대하여는 누구도 변명하지 못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한국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정확한 이유를 찾아보고 그에 대한 대책도 강구하여야만 한다.

 

'원로' 교회가 되면 쇠퇴할 수밖에 없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출판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유교와 유교문화가 우리나라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것이 지나쳐 오히려 문제가 많은 것을 조금은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그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유교문화를 우리는 원로문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원로와 어른을 공경하는 것에서 출발하였지만, 결국은 원로와 어른이 통치하고 지배하는,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는, 그리고 비생산적이고 비창조적인 문화로 발전하여 그것이 사회를 점점 쇠퇴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원로들이 존경을 받는 사회는 좋은 거이지만, 원로들이 모든 것을 다 장악(?)하고 젊은이들과 청년들은 무조건 원로들의 주장과 가르침에 순종하여야만 하는 것을 가르치는 사회는 절대로 발전할 수 없고 원로와 함께 쇠퇴할 수 밖에 없다.

  한국교회는 장로교회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장로교 외에도 감리교와 성결교, 그리고 침례교와 같은 교단이 있지만, 교회 정치적으로 볼 때 모두가 다 장로교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국교회에서 장로교는 대단한 힘을 발위하고 있다. 장로교는 교회의 대표를 뽑아 대의정치를 하는 민주주의 정치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교회이다. 필자는 4대째 장로교인으로서 그리고 장로교회의 목사로서 장로교 정치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정말 장로교의 정신을 잘 살려서 목회를 하고 교회정치를 하면 참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의 장로교회는 변질되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유교의 문화와 만나면서 장로정치를하는 교회가 아니라 원로정치를 하는 교회로 변질되었다. 장로가 교인의 의사를 대변하는 교회의 대표가 아니라, 교인들에게 명령하고 복종을 요구하는 교회의 어른, 즉 원로가 된 것이다. 민주적으로 생각한다면, 교회 행정적으로 볼 때 교회의 주인은 교인이요 목사와 장로는 저들의 심부름꾼이어야 하는데, 이 민주적인 교회가 유교문화와 만나면서 목사와 장로가 교인의 심부름꾼보다는 교인들의 어른이 되어 저들을 섬기는 종이라기보다 저들에게 명령하는 지배자가 된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 당회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당회에서 심의하고 모든 것을 당회에서 결정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당회가 집행한다. 일반 교인들은 당회에서 결정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 외에는 크게 달리 할 일이 없다. 공동의회와 제직회가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요식절차일 뿐 당회가 결정한 일을 뒤집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유교문화가 팽배한 사회에서 원로의 경정을 뒤집거나 반대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로 여간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 젊은이들은 그와 같은 부담스러운 일을 하려고 하지 않고, 아예 교회를 멀리하고 결국은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쇠퇴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그것이 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우리가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개발독재, 성장은 있지만 성숙은 없다

  중앙집권 또는 독재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결정이 신속하고 시행이 발빠르다. 때문에 독재를 잘하면(?) 신속한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 성장을 생각한다면 독재처럼 호과적인 정치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 면에서 이와 같은 독재의 덕(?)을 많이 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정치로 말미암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복 수 없는 대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성장 때문에 독재가 함리화되어 '개발독재'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경제도 마찬가지이고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경제가 재별 총수의 막강한 힘에 의해 발전된 것과 같이 한국교회도 특출한 목회자의 카리스마와 당회의 중앙집권적인 막강한 힘에 의하여 성장을 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회가 모두 개발독재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재는 성장과 개발에 어느 정도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반면에 성숙에 아주 취약한 약접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 성장하면 그 다음에는 성숙이 따라야먄 한다. 그래야만 다시 계속적인 성장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독재는 성숙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다. 유신정권과 군사정권이 무너진 것과 재벌 위주의 경제가 IMF를 만나 무너진 것, 그리고 교회가 서서히 비탈길에 서서 미끄러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가 민주화와 지방자치화로 가듯, 경제가 총수 위주 경영에서 전문경영 위주로 가듯, 교회도 민주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21세기 한국교회는 20세기 말의 성장을 전설로 남기고 유럽교회처럼 몰락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당회의 민주화, 감독권을 회복하자

  21세기 한국교회는 당회와 당회원이 교회의 모든 일을 감당하고 일반 제직과 교인들은 그저 순종만 하도록 강요하는 것에서 변화되어야만 한다. 교인들을 더 이상 우민화하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때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게 될 것이고 서서히 몰락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섬기는 동안교회는 2000년부터 당회와 제직회를 완전히 구분하여 당회원은 제직회 부장직을 맡을 수 없도록 하였다. 제직회 부장은 안수집사와 권사들이 맡아서 감당하기로 결정하고 이미 인선을 끝냈다.

  당회는 교회의 정책과 예산을 결정하고, 당회에서 결정한 정책과 예산에 따라 제직회는 그 예산과 사업을 집행하게 될 것이다. 당회는 3개월에 한번씩 제직회 부서를 감사하여 그 동안의 사업과 예산집행이 적절하고 정확했는지에 대하여 확인한다. 잘한 일은 칭찬하고 격려하며 그렇재 못한 일은 지적을 통하여 시정하도록 하고, 그래도 시정이 되지 않으면 당회에 그 문제를 상정하여 치리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조직개편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은 당회나 제직회가 혼자서 제 마음대로 교회의 일을 주장할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좀 힘들어 보여도 적당한 견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 같은 견제 때문에 당회가 혼자서 일방적으로 교회의 일을 처리할 때 보다 복잡하고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건강한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나 기관이 교회를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빠르고 쉽다는 장점은 있으나, 그 때문에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과 사람은 교만하여지고 부패하기 쉬우며 그와 같은 권력에셔 제외된 기관과 교인들은 교회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되어 교회를 전체적으로 허약하게 만드는 약점이 있다. 당회와 제직회가 서로 견제만 한다면 교회가 어려워지겠지만 적당한 견제와 협조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교회는 아주 성숙하고 건강하게 되 것이라고 확신하다.

 

  그 동안은 당회가 모든 일을 하였기 때문에 정당한 감독과 평가가 불가능하였다. 당회원들이 결정하고 집행한 일은 제직회원과 교인들이 감독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고, 당회원들이 결정하고 집햏한 일은 당회원 자신들이 감사하고 평가한다는 것도 행정의 원칙에 맞지 않아 결국 교회는 정당한 감독과 평가없이 일을 하게 되었고, 자연히 교회는 발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년부터 동안교회는 제직들이 일을 하고 장로들이 그것을 평가하고 감독하게 된다. 그것이 장로교의 정치요 정신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장로를 감독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는 권위 있는 감독이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은 권위가 당회에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바르게 성장하겨면 당회가 정당한 치리의 권한을 가져야먄 한다. 치리 없이 봐주는 것을 은혜라고 흔히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치리의 권위를 상실하였다. 그것은 당회가 모든 일을 혼자서 다 처리하였기 때문디다. 당회가 치리의 권위를 회복하고 당회원들이 정말 감독의 직을 감당하려면, 예산과 사업을 집행하는 일을 제직들에게 넘겨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의 예산과 사업을 집행하는 것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이 얼마나 큰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직들에게 이양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와 같은 기능을 제직들에게 이양함으로 제직들은 활기를 되찾게 될 것이고 당회원들은 권위를 되찾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한국교회는 건강한 교회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목회의 민주화, 전문 목회를 지향한다

  작은 교회는 담임목사 혼자서 모든 목회를 다할 수 있지만 교회가 점점 커지고 성장하게 되면 담임목사 혼자서 목회 전반을 담당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교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목회자에게도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데,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모든 은사를 다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셔서 저들이 함께 협력하여 하나의 교회를 이루게 하신다. 그것이 바로 고린도서에서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의 교훈이요 지혜인 것이다.

 

  의대생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의사고시에 합격하면 일반 의사가 된다. 일반 의사만으로도 얼마든지 진료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일반 의사가 된 후에도 계속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된다. 전문의가 되면 저들은 대개 종합병원에서 근무를 하며 자기가 전공한 과목만을 진료하는 진짜 전문의가 되는 것이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동안교회는 이미 작은 교회가 아니다. 필자 혼자서 그 큰 교회를 다 건강하게 목회할 수 없다. 일반 의원과 같이 목회하기에 교회가 너무 크고 할 일도 많다. 동안교회 정도가 되면 일반 의원과 같은 수준의 목회가 아니라 종합병원과 같은 수준의 목회를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게 없는 은사를 가진 목회자를 청빙하여 그 쪽 방면의 목회를 과감하게 맡겨 주어야 한다. 실제로 동안교회는 올해부터 그와 같은 전임 목회자를 청빙하여 목회를 나누고자 한다.

당회장인 필자는 당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목회를 하고, 전임 목회자에게는 제직회를 맡겨 실제적인 교회 살림을 맡게 하려고 한다. 대우도 부목사 대우를 하지 않고 당회장에 준하는 대우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당회장 혼자서 교회의 모든 일을 감당하고 처리하는 것이 일사분란하고 빠를 것이다. 그리고 쉬울 것이다. 그러나 빠르고 쉽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좀 힘들고 늦어도 불편해도 협동목회를 하는 것이 먼 미래를 내다 볼 때 건강한 목회가 될 것이다.

  서울대학교의 총장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서울대학 병원이나 그밖에 유명한 병원의 병원장 이름을 아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다. 그러나 대형교회의 당회장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것이 바로 교회와 학교 그리고 병원의 차이점이다. 서울대학교의 총장은 아주 훌륭하고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는 총장이 바뀌어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운영되어 나간다. 그것은 유명한 병원의 병원장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유명한 대형교회의 당회장이 당장 바뀌게 된다면 그 교회는 큰 몸살을 앓게 될 것이고 잘못함면 그 몸살 때문에 아주 주저앉을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는 그와 같은 예를 보아왔다. 대학고 병원은 종합병원 수준의 경영을 하는데, 한국의 대형교회는 덩치만 크지 목회는 일반 보건소나 의원 수준의 목회와 행정을 하기 때문이다. 대학과 병원은 총장과 병원장의 자리와 위치가 중요하지만, 그 외에도 실력 있는 일꾼들이 많이 있으므로 유사시에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성장을 이루어 갈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한 사람의 목회자가 은퇴를 하거나 시험에 들면 교회 전체가 큰 몸살을 앓게 되는 것이다.

 

  당회가 민주화되어야 하듯 목회도 민주화되어야만 한다. 한국교회는 협동 목회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해야 한다. 독재자 한 사람에 의하여 나라가 성장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 와서 다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지금 다시 그와 같은 대통령이 나온다면 역사는 그만큼 다시 퇴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별 총수 한 사람의 판단과 결정에 의하여 재벌 기업 전체가 움직이는 시대는 지났다. 절대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목회자 한 사람의 리더쉽에 의하여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앞으로는 전문적인 목회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목회를 하여야 하는 전문시대가 열릴 것이다.

 

새 부대를 준비하는 교회가 살아남는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할 것 없이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 변화와 흐름에는 일정한 식이 있고 틀이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민주화와 전문화이다. 교회도 빨리 그 시대의 흐흠을 읽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 흐름을 읽지 못환다면 교회는 다음 세기에 쇠퇴하게 될 것이고 드디어 몰락하게 될 것이다. 새 부대를 준비하지 못하면  새 포도주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교회정치도 중앙집권제에서 지방자치로 넘어가야먄 한다. 목회도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하여 움직이던 시대에서 전문적인 목회자들이 서로 협력하는 시대로 넘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미끄러져 내려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