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풍요로운 사회
사회는 머리가 좋은 사람들로써 풍요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들로써 풍요해집니다.
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세상은 풍요로워집니다.
인생의 의미는 불우한 사람들의 삶도 밝혀 주는 것일 때
참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돈, 건강, 명예, 지위 등은 부분적으로
인생에 혜택을 주지만 의미는 될 수 없습니다.
불우한 사람들까지도 빛으로 가득 채워 주는
사랑만이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이 존재하는가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 사랑만으로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중의 누구도 버림받을 존재가 안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가령, "3년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그렇게 몸져누웠을 때 자식들이 나를 끝까지 효성으로
돌보리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아내나 남편으로부터도 그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결국, 인간으로부터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런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또, 인간이 죽을 때는 누구나가 어떤 의미로
그 같은 소외와 고독에 빠지지 않습니까?
이 실존적 고독, 허무를 밝혀 주는 빛이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모든 인생은 허무입니다.
그 때문에도 하느님은 존재하셔야 합니다.
즉, 어떤 절망적 상황에 놓여 있어도 거기까지 비치고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인생은 허무합니다.
<빛 속에서>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호흡밖에 할 수 없는 이 인간을 빛으로
가득히 채워 준 것은 성령이었습니다.
성령이 이 사람의 모습을 빛나게 한 비결입니다."
결국 인간은 하느님이 계시기에 존엄합니다.
존엄성은 건강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에게 있습니다.
병신이나 천지 바보, 신체장애인, 병약자 모두에게 있습니다.
인간은 이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보지만
하느님에게는 쓸모없는 존재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만큼 하느님은 실로 모든 인간을 구원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 때문에 인간은 존엄합니다.
이 사랑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보다 더 중요합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