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양심·자유의 존엄성
인간이 우주 속 만물에 비하여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이유는
첫째로 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오랜 역사 동안 자연 과학과 인문 과학, 예술 등을 통하여
인간의 합리적인 생활과 인간 사회의 개혁을 위해 일해왔습니다.
살다보면 지성, 스스로가 범하는 어떤 차질이나 과오도 있을 수 있지만
이 차질이나 과오를 극복하는 조리(條理) 역시 지성에서
다시 구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이와 같은 지성적 특성은 원천적으로 하느님의 지혜로부터
빛의 조명을 받으면서
한층 더 깊은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헤매야 할 소명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성이 필요로 하는 것은 법입니다.
그리고 법은 양심의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 양심의 법은 인간이나 사회가 인간을 규제하기 위하여 만든 법이 아니고
인간 스스로가 그 법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안방이며
인간이 혼자서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지성소입니다.
어떤 독재나 폭력 때문에 인간 각자가 지니고 있는 양심의 법이
일시적으로 제약을 받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에게서 양심의 존엄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 무관심의 습관으로써 양심을 덮어두는 경우가 있다면
그때 인간의 양심은 점점 빛을 잃어 가게 되기도 합니다.
이 무관심의 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하느님은 인간이 제 자유의사에 따라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로 완성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때문에 자유에는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가 따르게 됩니다.
이기적 즐거움을 위해 자유를 써서는 안 됩니다.
맹목적 본능이나 외부적 강박에 의해서 자유를 사용하지 말고
인격의 내적 동기에 의해서 자유를 실현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현되는 자유는 사욕에서 해방된 능력이므로 자신의 진실한
인격에 충족을 주고 세계의 정의에 보탬을 주는 방향으로 집중됩니다.
그리고 앞에서 든 인간의 지성과 양심은 마지막으로
역시 이 자유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성·양심·자유, 이 세 가지 요소는 인간이 생존하는 사회에서
잠시라도 유보될 수 없는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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