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언어란 공허한 것
말은 시끄럽고 공허합니다.
특히 종교에 대한 이론이나 언설은 더욱 그렇습니다.
일요일인 오늘, 절과 교회와 성당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겠습니까?
좋은 말씀이 없어서 우리의 삶이 허술한 게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말의 공해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말이란 무엇입니까?
밖으로 새어 나가는 소리입니다.
말이 많은 종교인은 누가 되었든 간에 그 삶에 깊이가 없습니다.
밖으로 새어 나가는 소리가 영적인 차원으로 전환되려면,
반드시 안으로 귀 기울이는 침묵이 받쳐 주어야 합니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언어란 공허한 것입니다.
소음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의 실체를 유심히 살펴보십시오.
일상적으로 가족끼리 혹은 친지끼리 주고받는
말의 실체를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얻어들은 관념의 찌꺼기들입니다.
방송이나 신문, 잡지, 정치권에서 또 경제계에서 그저 쏟아 내는 말을
자기 나름대로 여과하지 않고 받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자기 언어가 없습니다.
자기 빛깔과 체취를 지닌 언어가 없습니다.
떠도는 말의 홍수에 표류되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자책합니다.
내가 출가 수행자로서 남 앞에서 말할 자격이 있는가?
나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남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저항을 가끔 느낍니다.
자기 언어가 없다는 것은 자기 나름의 사유, 깊은 생각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자신의 언어를 지니려면,
즉 자기 세계를 갖추려면 침묵에 귀 기울이는 영적인 탐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영적 탐구가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 법정 스님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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