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속하지 말고 접촉하라
우리가 사는 21세기가 20세기와 크게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정보 매체입니다.
어디를 가도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무엇엔가 또는 누군가와 접속하지 않으면
사람 축에 못 드는 세태입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두 사람끼리
혹은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각자의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수많은 정보를 주고 받지만 감정을 교환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접속과 접촉은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이 전혀 다릅니다.
접속은 간접적이고 일방적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정이 오고 갈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비인간적입니다.
그러나 접촉은 상호 간의 직접적인 만남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접속이 아닌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고, 눈길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듣고, 분위기를 함께 누립니다.
때로는 손을 마주 잡거나 미소를 짓거나 쓰다듬는 일을 통해
인간의 情이 오갑니다. 접촉은 이렇듯 인간적입니다.
컴퓨터의 사각 스크린은 이 시대의 편리한 정보교환 수단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차디찬 기계장치이지,
살아서 숨 쉬는 따뜻한 생명체가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휴대전화와 컴퓨터,
텔레비전이 사라진다고 가상해 보십시오. 큰 재난이 일어납니다.
살맛을 잃고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휴대전화에 매달려 사는 젊은 사람들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텔레비전이 나오기 전에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행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지능적인 사기꾼들도 덜 극성스러웠습니다.
신속하고 편리한 정보 매체를 곁에 두고 사는 이 시대의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전보다 행복할 수 없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편리한 정보 수단을 가졌음에도 왜 전보다 행복할 수 없는가?
데이터 스모그란 말이 있듯이 과도한 정보는 공해입니다.
정보가 인간 영혼의 자리를 빼앗기 때문입니다.
접속에 중독된 사람들은 인터넷 연결이 안 되거나
해커들에게 방해를 받을 때면 마치 세상에 종말이라도 온 양
야단을 떨고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미덕입니다.
그러나 신속하고 편리한 기계장치에 의존해 살다 보니
무엇이든 즉석에서 해답을 꺼내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도
한때의 고비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는 자신이 영혼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습니다.
자신이 인간임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가치판단을 해야만 합니다.
생활의 도구인 정보 매체와 자기 자신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정보 매체 앞에서 쩔쩔매며 참고 기다릴 줄 모르고
무슨 일이든 즉석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영혼을 지닌 인간의 방식이 아닙니다.
생활의 도구에 종속되어 본질적인 삶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실상입니다.
사람답게 살려면 안으로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바깥의 현상에 팔리지 말고 고요히 내면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 것인지 거듭거듭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 법정 스님<일기일회> 2007년 4월 15일 봄 정기법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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