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신념있는 사람 / 김수환 추기경

문성식 2011. 7. 18. 17:13

      신념있는 사람 신념있는 사람은 지성인답습니다.
      그러기에 진리와 정의 앞에 겸손하며
      사랑에 성실하고 비굴한 타협을 모릅니다.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기 때문에 옳은 일에는
      혼자서라도 주저함 없이 투신합니다. 선하고 의로운 일에 투신하는 사람은
      외로움까지도 포용해야 할 때가 있음을 의식하고 있으며,
      막상 고독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자기 자신의 실존을 송두리째 의식합니다.
      결국 나만이라도 이 일을 하고 이 고독한 길을 유유히 걸어가는
      이유가 나 자신이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과 여기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만큼을,
      나는 이 사회와 이 겨례에 바치는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하는 이에게는 '왜 나 혼자서…?' 라든지 '왜 내가…?'
      따위의 질문은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신념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나만이라도 …' 또는 '나니까…'의
      태도로 절망의 벽을 뚫고 나아가는 힘이 있습니다. 신념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치가 있습니다.
      심지어 실패라는 것까지도
      구원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고독하게 벌거숭이로 십자가에 매달려
      국사범으로 처형되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뭇 사람의 눈에는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패배자였지만
      세상과 인류의 구원이 이 패배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념은 겸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스스로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으로
      자처하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가치관의 붕괴와 사회질서의 혼란으로 인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참된 신념을 가지고 용감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릇된 신념으로 횡포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된 신념은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데 반하여,
      그릇된 신념은 광적이고 파괴적입니다.
      참된 신념은 자기 자신의 한계성을 뼈저리게 실감하면서도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지만,
      그릇된 신념은 자기 자신을 한없이 들어 높이고 자기 보다
      우월한 자를 보면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합니다.
      신념있게 사는 사람 가운데는 하느님이 현존하지만,
      그릇된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주위에서 맴돕니다.
      그러기에 후자는
      쉽게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독선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신념을 갖고 살아갈 때,
      우리들 서로의 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니라
      인생의 긴 나그네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이며 봉사자의 관계가 됩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간 본연의 동등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기가 처해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든 아니든 간에,
      또 가정이든 학교든 국가든,
      자신이 스스로 남의 인격 위에 군림하지 않습니다.
      나그네길로서의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달픈 일이 많고
      서로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 속에는 남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일에
      시간과 재원과 노력을 낭비하는 일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차원에서든지 눌러대기보다는 눌리는 형제들과 함께 눌리고,
      묶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묶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사람을 죽이는 위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당하는 형제들의 저항 없는 죽음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신념의 사나이가 되어야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