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성직자 구속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현대 한국 교회 사상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조선 말엽의 박해와 공산 학정을 제외하고 성직자가 이렇게 많은 수난을 받은 적은 근래에 없던 사실입니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아시는 바와 같이 본 교구 신부 다섯 분과(안충석, 김택암, 양홍, 오태순, 장덕필) 교구 노동 문제 상담소 직원 정양숙 양(AF1 회원) 그리고 광주 교구 신부 여덟 분이 광주 사태와 관련 연행되었습니다. 그중 세 분(안충석, 김택암, 양홍)은 다행히 석방되었으나 나머지 분들은 계속 수사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부님들이 연행된 지 닷새 만에 당국은 모든 보도 수단을 통해 대대적으로 이들의 죄상을 발표하였습니다.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광주 사태의 진상을 고의적으로 왜곡하여 허위 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조작 유포하였을 뿐 아니라 강론을 통해 신자들에게 궐기하도록 선동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보도에 사용된 이와 같은 표현은 그들이 마치 고의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비밀 활동을 전개한 반국가적 인물인 것 같은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습니다. 그들이 광주 사태에 관련된 몇 가지 소식을 듣고 이를 여러 사람에게 알렸다는 행위가 그들을 이런 극단적인 양상으로 단죄하는 유일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단순한 해석과 일방적 판단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진전 과정에서 보다 공정한 판단이 내려질 것을 기대하면서 다음 몇 가지를 명백히 해 두고자 합니다.
1. 이들은 광주 사태가 발생한 후 그 진상이 보도되지 않자 자기들은 진실을 알려 줄 책임이 있다고 판단, 관련된 소식을 확인하지 못한 가운데 성급히 유포한 것으로 사료되나, 당국의 발표와 같이 이들 자신이 허위 사실을 고의로 조작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2. 이들은 같은 동포요 형제인 광주 시민의 아픔에 동참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도 이러한 문제에 관여치 않고 일상적인 성사(聖事)만을 집행하는 것이 편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언행으로 인하여 어떤 제재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형제들의 어려움을 보고 자신의 갈 길만을 재촉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대로 착한 사마리아인과 함께 난을 당한 광주 시민들의 참된 이웃이 되려고 노력한 것이었습니다. 확인할 수 없는 정보를 성급하게 여러 사람에게 전한 그들의 행위에 신중치 못함을 지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웃의 고통을 무심히 지나쳐 버리지 못하고 함께 나누며 진실은 옹호하여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순수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입각하여 행동하였을 뿐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 옛날 베드로 사도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붙잡혀 옥에 갇혔을 때 모든 신도들은 마음을 하나로 하여 그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고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구해 내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힘은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며 이 기도는 이 세상의 어떤 무력보다 강력합니다. 본당에서 그리고 가정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나라를 위해 그리고 어려움 속에 처해진 서울 교구와 광주 교구의 시련이 하루속히 종식되도록 특히 연행된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런 때일수록 우리 신앙인은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주님 안에 일치를 더욱 굳게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1980.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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