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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토우_ 캐릭터로서의 미학적 가치

문성식 2010. 9. 2. 18:59

 

 

신라토우_ 캐릭터로서의 미학적 가치

 

 

신라 토우(土偶)를 처음 보는 사람은 아마 “뭐 이리 단순해.”하고 시시하게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신라 토우엔 돌아서는 발길을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있다.

 



작디 작은 5,6cm 내외의 이 흙인형이 결코 범상치 않다는 느낌.

다시 다가가 한번 더 살펴보면 토우의 자신감 넘치는 미학에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단순함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력, 대상의 특징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미적 감각,

얼굴 표정에 깃들어 있는 익살과 해학, 낭만과 여유 등.

신라 토우는 한국 전통 미술에 있어 가장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 중 하나다.

 

 



성적 특징이 강조된 인물토우(여자).
경주 황남동.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것은 어찌보면 지금에도 통할 수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미감이다.

토우는 말 그대로 흙으로 만든 인형을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신라 토우라 하면 사람뿐 아니라 동물 등도 포함된다.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5, 6세기로 신라인들의 독특한 예술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크기는 2∼10cm이고 그 중 대부분이 5,6㎝다.

 

 



남녀인물 토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라 토우는 1926년 경북 경주 미추왕릉 인근 경주역 확장공사 도중 여러 고분에서 처음 발굴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경주 황남동 용강동 지역의 고분에서 추가로 발굴되기도 하였다.

토우는 토기에 장식물로 붙어 있는 것과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있는데 인물의 경우, 바지 저고리 입고 상투 튼 남자, 주름 치마에 저고리를 입은 여자, 사냥하거나 고기 잡는 사람, 춤추는 사람, 노젓는 사람, 가야금, 비파, 피리 등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성행위를 하는 사람 등 신라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한편 동물 토우로는, 말,소,개,돼지,사슴,멧돼지,뱀,개구리,맹꽁이,토끼,오리,닭,두더지,물소,독수리,앵무새,올빼미,게,잉어,불가사리,거북,자라 등...땅과 하늘 바다에서 살고 있는 온갖 생명체들이 그야말로 총 망라되어 있다.

 

 

 



경주 계림로 30호분.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신라 토우의 백미-국보195호 토우장식항아리
이런 신라 토우를 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이 바로 국보 195호 토우장식항아리(土偶裝飾長徑壺)이다. 경주 계림로 30호분에서 출토된 높이 34cm의 이 항아리 목 부분엔 5cm 내외의 각종 토우들이 붙어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가야금을 타고 있는 임산부,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남녀 등의 인물 토우를 비롯해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 새, 오리, 거북 등의 동물들이 뒤섞여 있다. 이 토우들은 신라 토우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그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토우장식항아리 부분]
비파뜯는 여인.
성교중인 남녀.
각종 동물들.

 


그 중에도 온 몸으로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남녀상은 단연 압권이다. 한 여인이 엉덩이를 내민 채 엎드려 있고 그 뒤로 한 남정네(머리와 오른팔이 부서져 있다.)가 과장된 성기를 내밀며 다가가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도 적나라할 수 있을까. 그 표현의 과감함이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여인의 얼굴 표정이다. 왼쪽으로 얼굴을 쓱 돌린 이 여인은 히죽 웃고 있다. 아니, 보는 이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정작 주인공은 웃음을 흘리고 있다니. 저 익살, 저 여유. 이 남녀상은 전혀 외설스럽지 않다.

그것은 뻔뻔스러움이 아니라 신라인의 허심탄회 혹은 꾸밈없음이기 때문이다. 은밀한 인간의 성행위를 표현했지만 소박하고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대담한 성의 표현이 어떻게 인간적이고 허심탄회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에 바로 신라 토우의 진정한 미학과 매력이 숨어 있다.

 

 



[신라 토우의 미학 1 -대담한 에로티시즘]

 

 



성교중인 남녀.
경주 황남동.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신라 토우의 미학1-대담한 에로티시즘
토우장식항아리의 남녀상에서 잘 드러나듯 신라 토우의 가장 큰 특징은 뜨겁고 대담한 성의 표현이다.
신라 토우엔 성기를 과장해 표현하거나 남녀의 성행위를 감춤없이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많아 놀랍다. 힘껏 껴안고 있는 남녀, 한 몸이 되어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 성기와 가슴이 지나치게 과장된 남녀 등.
어디 이뿐인가. 자신의 장딴지보다 굵은 성기를 드러내놓고 있는 남성, 자신의 커다란 성기를 만지고 있는 남성, 팔을 받치고 누워 자신의 성기를 하늘로 쭉 들이밀고 있는 남성, 커다란 가슴에 과장되게 깊이 패여진 음부를 드러내놓고 웃는 여성 여기에 가랑이를 벌리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출산하는 여성 토우까지 있을 정도다.
신라 토우는 이처럼 한국 전통에 있어 가장 강렬한 에로티시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제와 감춤의 미학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라 토우의 에로티시즘은 하나의 파격이자 충격이다.

 


출산중인 여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하지만 토우에 나타난 성은 신라인의 건강한 쾌락이었다. 그것은 솔직한 삶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이들 토우가 외설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외설을 초월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신라 토우가 단순히 본능적 사랑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라 토우엔 영생(永生)에 대한 절절한 기원이 담겨 있다. 이는 토우가 주로 무덤의 부장품이었다는 사실에서 쉽게 드러난다. 성의 결합은 새 생명의 탄생이며 이는 곧 죽은 이의 재생(再生)을 의미한다.


신라인은 이렇게 부활과 자손의 번창, 즉 영생과 다산(多産)이라는 기원을 담아 의식을 치르듯 흙을 빚었던 것이다. 당시 신라인에게 토우를 만드는 것은 성스러운 제의(祭儀)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거기 어디 외설이 끼어들 틈이 있었겠는가.

 

 

 

 

[신라 토우의 미학 2 -미니멀리즘의 아름다움]

주검 앞에서 슬퍼하는 여인.
경주 황남동.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신라 토우의 미학2-미니멀리즘의 아름다움
신라 토우는 그것이 신라인의 적나라한 성을 표현한 것이든 신라인의 일상을 표현한 것이든, 그리고 동물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든 모두가 단순하다. 신라 토우는 기본적으로 손으로 몇 번 흙을 쓱쓱 주물러 만든 것이다.
그래서 단순하다. 5,6cm의 작은 크기로 만들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단순하지 않다. 인물 토우를 보면, 손톱으로 쿡쿡 찍은 두 눈만으로도 감정이 잘 살아있다. 손톱으로 슬쩍 찍어넣어 슬픔을 나타내고 눈과 입을 동그랗게 파내서 기쁨을 표현한다.
금녕총에서 출토된 배모양 토기에 붙어있는 나체 남성 토우는 쓱 내민 혓바닥 하나로 노젓기의 피곤함을 보여준다. 또한 단순함 속에 대상 인물의 특징은 예리하게 포착돼 있다.
여인상의 경우, 얼굴만으로는 남녀 구분이 잘 되지 않지만 가슴이나 엉덩이 등을 과장하거나 강조함으로써 여성임을 나타낸다. 얼굴에 표정이 없을지라도 몸을 쪼그려 엎드린 모습이나 머리를 푹 숙인 자세만으로 주인공이 슬픔에 빠져 통곡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라 토우는 마치 초등학생의 찰흙 소조인양 단순하고 서툴러 보인다. 그러나 그 적당한 단순함엔 분명 어떤 역동감이 있다. 불과 5cm의 토우를 만들면서 요즘 보는 작은 인형처럼 이것 저것 세세하게 표현하면 아기자기하고 정교할 수는 있지만 힘이 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다. 단순함 속에 감춰진 생명력이다. 마치 미니멀리즘의 힘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나 밀착이 없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 신라 토우의 미학3-얼굴 표정의 익살과 해학
신라 토우에 나타난 신라인의 삶에 대한 애정은 익살과 해학으로 이어진다. 신라 토우엔 익살과 해학, 낭만과 유머가 가득하다. 신라인들의 낙천적인 삶의 한 표현이다.
그것은 얼굴 표정에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국보 195호 토우장식항아리의 사랑을 나누는 남녀 토우가 그렇다. 옆으로 돌린 여성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능청스러울 만큼이나 익살스럽다.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만세를 부르는 남성을 형상화한 토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성기는 자신의 다리 굵기만 하다. 뾰족하고 탱탱한 성기가 그야말로 과장의 극치다.
넉살좋게 웃고 있는 이 남성은 마치 자신의 성기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임을 확인하고 흥에 겨워 만세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속된 것일 수 있겠으나 이 토우를 보면 속되거나 외설스럽다기보다는 유쾌하고 기분이 좋다. 주인공의 얼굴을 보면 특히 그렇다. 어린 사내아이들이 저희들끼리 누구 것이 더 큰지를 놓고 장난치는 것과 같다.
어른들의 시커먼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능청스러운 듯하지만 밝고 상쾌하다.

 

 

할아버지 토우는 또다른 의미에서 익살과 해학이 담겨있다. 쓱쓱 주물러 만들어 눈과 입을 쓱 파놓고 수염 몇가닥 슬쩍 그어넣은 선 몇 개로 노인의 얼굴은 완성됐다. 단순한 흙덩이 토우지만 노인의 푸근한 얼굴이 그대로 살아서 전해온다. 노래하는 토우, 연주하는 토우를 보면 그 흥겹고 익살맞은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있다.
별다른 꾸밈없이도 그들의 손동작 발동작과 어울리면서 그렇게 신나는 표정을 담아내다니, 볼 때마다 상쾌한 웃음을 참아낼 수가 없다. 이처럼 신라 토우에 살아 숨쉬는 얼굴 표정은 1500여년 전 신라인의 삶에 대한 밀착, 삶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것이다. 신라 토우는 결국 인간의 본능과 거친 현실을 순수와 영원의 마음으로 걸러낸 신라인들의 미적 산물인 셈이다.

 

 글_이광표, 동아일보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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