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화

페데리코 안드레오티 / 낭만에 대하여

문성식 2016. 11. 20. 22:58

 

페데리코 안드레오티 - 낭만에 대하여

살다가 좀 버겁다 싶은 일이 계속되면 문득 좋았던 지난날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미술사에도 19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19세기 대부분을 유럽 사회는 혁명과 전쟁 그리고 산업혁명의 영향 속에서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그러자 예전의 평화롭고 낭만적인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그림과 화가들이 등장했고, 작품에 대한 인기도 아주 높았습니다. 페데리코 안드레오티(Federico Andreotti, 1847-1930)도 그 화가들 중의 한 명입니다.

러브 레터  The Love Letter

붉은색 인장으로 봉해진 편지를 받은 여인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편지를 감춘 손과 어쩔 줄 모르는 속마음은 입가에 닿아 있는 손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웃는 듯 우는 듯 한 입가의 미소와 눈빛은 보는 저마저 가슴 뛰게 하고 있습니다. 방금 편지를 건네준 사람이 혹시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안드레오티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습니다. 피렌체의 붉은 지붕과 좁은 골목길 그리고 다리들. 다시 보고 싶습니다. 피렌체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한 안드레오티의 그림은 보는 사람 모두를 즐겁게 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러브 레터  Love Letter

첫 번째 러브레터를 받고 좀 시간이 지난 모양입니다. 같은 얼굴이지만 좀 더 여유롭습니다. 여인이 감출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나이를 먹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했는데, 안드레오티의 그림을 보면 저도 사랑에 빠진 여인의 얼굴을 가려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여인의 자태를 그려낸 안드레오티도 대단하지만 이런 포즈를 취해준 모델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 예쁜 모델과 옷입니다. 그나저나 저 편지를 도대체 어디에 넣을 생각인지 여인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세레나데  Serenade

"두 여인 중에서 어떤 여인이 남자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주황색 옷을 입은 여인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우선 여인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고, 도상(圖像)까지는 아니지만 파란색 옷의 여인보다 마음이 더 뜨거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경험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참 잘생겼군요, 기생오라비처럼...

안드레오티는 학교를 졸업한 후 16~17세기 귀족들의 우아하고 달콤한 생활을 주요 주제로 작업을 했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지러운 현실에 빗대어 과거에 대한 향수가 유행했기 때문입니다.

세레나데  Serenade

앞의 세레나데보다는 훨씬 따뜻합니다. 두 가지 상상을 해봤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어떤 사내가 있었습니다. 마음에 둔 여인에게 직접 고백하기는 어렵고 해서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이벤트 회사’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달라고 부탁한 것 같습니다. 이벤트 전문가들답게 풍부한 표정과 몸짓으로 여인에게 그 남자의 마음을 전하는 중입니다. 물론 여인도 싫은 표정은 아닙니다. 또 다른 상상입니다. 남자들이 “여기 안주 좀 공짜로 한 접시 더.” 그러자 여인이 “그건 곤란한데요. 사장님 아시면 큰일나요.” 좀 썰렁하군요. 뭐, 오페라의 한 장면이라고 보면…?

화실 방문  A Visit to the Studio

화면 전체가 비슷한 색깔들이 연속되면서 차분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화면에 등장하는 소품들과 장식은 화려하고 섬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부부 사이라고 보기에는 어렵고 연인 사이인 것 같습니다. 한 손에 꽃을 들고 온 여인이 그림을 바라보는 눈매나 그런 여인을 지긋이 바라보는 남자의 눈길은, 부부 사이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죠. 아닌가요? 아뇨, 그건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남자가 팔레트와 함께 들고 있는 긴 막대기의 용도였고 또 하나는 남자가 입은 흰 옷이었습니다. 만약 저런 흰 옷에 물감을 묻히면 저 같은 경우는 죽음인데….

마지막 손질  Finishing Touches

긴 작업이 막 끝난 순간입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여인은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같이 서 있었으면 고생했다고 어깨라도 두드려주고 싶습니다. 옷에 묻은 물감 자국과 다 닫히진 않은 서랍들 그리고 이젤 밑에 있는 물감 통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린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본 긴 막대기를 이 여인도 가지고 있군요. 혹시 높은 곳에 색을 칠하는 용도로 쓰인 것 아닐까 생각해봤는데 끝이 하얀 곳으로 봐서는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유혹  Flirtation

이 작품 속의 유혹은 좀 복잡해 보입니다. 대상이 섞여 있습니다. 우선 맨 오른쪽의 여자는 유혹을 받는 대상일까요, 아니면 유혹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글쎄요, 제 생각에는 이 세 명 중에서 가장 ‘선수’처럼 느껴졌습니다. 야멸찬 듯한 눈을 하고 있지만 치마를 살짝 잡아 올린 손에서 왠지 ‘프로’의 느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든 여인의 입고 있는 옷의 무늬는 정말 환상적입니다.

유혹  Flirtation

모녀이거나 언니와 동생 사이인 듯한 여인에게 한 남자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남자의 목표는 어린 여인 쪽인 것 같습니다. 화장이 흘러내린 건지, 왕 다크서클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검은 눈을 한 오른쪽 여인의 미소는 어색합니다. 남자의 수작을 보고 어쩌면 속으로는 ‘개가 다 짖을 일이다’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개가 그 남자를 향해서 짖고 있군요.

안드레오티의 작품은 곧 많은 인기를 얻게 됩니다. 여러 사람이 그의 작품을 예약하고 후원했는데 최대 후원자는 이탈리아 왕국의 왕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안드레오티의 그림이 밝고 화사한 것은 주제도 주제이지만 이처럼 경제적인 걱정으로부터 자유스러웠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젊은 구혼자  Young Suitor

구도는 같은데 남자가 좀 더 젊어졌습니다. 그리고 앞서의 남자와는 달리 시집을 펴 들고 있습니다. ‘고수’의 냄새가 느껴집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시(The Poem)’라고 되어 있는 자료도 있는데 분위기로 봐서 ‘구혼자’라는 제목을 취했습니다. 남자를 향해 짖던 개도 간 곳이 없고 약간 떨떠름해하던 오른쪽 여인도 활짝 웃고 있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은 것이 좋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끈질긴 구혼자  Persistent Suitor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도 이 제목과 같은 그림이 여러 점 있는 것을 보면 이 주제가 유럽에서는 꽤 흥미로운 것 중 하나였던 모양입니다. 저도 남자이지만 거머리같이 끈질기게 따라붙는 남자들의 심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장미꽃을 손에 들고 또 여인을 찾아온 남자는, 옷차림으로 봐서는 행세깨나 하는 집 사람인 것 같습니다. 여인의 표정은 복잡한데 남자의 표정은 여유롭다 못해 야비해 보이기도 합니다. 혹시 여인의 집안에 약점 잡힐 만한 일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차 마시는 오후  An Afternoon Tea

예전 귀족들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너무 화사하고 즐거워 보여서 오히려 속이 쓰립니다. 이 그림을 거실에 걸어 놓고 옛날을 회상하는 귀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어느 누군가는 불을 지르고 싶은 마음도 들었겠습니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한다’고 하실 수 있지만, 그림 속의 개는 정말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듯합니다.^^

안드레오티는 해부학 시간에 배운 인체에 대해 정확한 지식과 그의 정밀한 기술 그리고 당시 인상파 화가들이 시도했던 새로운 색상 이론을 받아들여 더욱 로맨틱한 분위기를 그의 작품 속에서 만들어냈습니다. 해부학이 미술에 끼친 영향이 생각보다 큰 모양입니다.

정원에서의 다정한 순간  A Tender Moment In The Garden

정원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여인 옆에 사랑하는 남자가 장미꽃 두 송이를 들고 불쑥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반가움에 여인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손가락 하나를 슬며시 잡은 남자는 참 많은 말을 하고 싶은 눈치입니다. 갑자기 밤새 앉아 이야기를 해도 새벽이 가까울수록 눈이 초롱초롱해지던 때가 기억납니다. 아마 저때쯤의 나이였던 것 같습니다.

음악 수업  The Music Lesson

연극의 한 장면 같지 않으신지요? 아마 딸의 음악 수업 선생을 초빙한 모양인데, 세상에나! 나이든 집시 같은 사람이 왔습니다. 복장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에 든 우산은 또 무언가요? 여인의 표정에서는 당혹스러움과 약간의 두려움이 보입니다. 능글맞게 웃는 남자에게서는 동화 속에나 나오는 사람과 같은 분위기가 흘러나와서 그나마 작품 전체 분위기를 편하게 하고 있지만, 정말 특이한 구성입니다.

음악에 바치는 꽃  Flowers for Music

멋진 연주가 끝나자 준비했던 꽃다발이 전해졌습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따듯한 몸짓과 눈길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바람결에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라고 노래는 하지만 이런 장면들을 보면 잠깐이지만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림을 보는 이유가 되지만요.

페데리코 안드레오티에 대한 개인사는 이상하리만치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존해 있을 당시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미국과 유럽의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 수집을 위해 혈안이 되었다는 정도의 이야기뿐이었습니다. 또 19세기 후반 이미 미술 참고서에 그의 그림이 소개되었다고 하니까 당대에 이미 화가로서의 영광은 다 누린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감상을 달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산해진 마음에 그림을 가지고 마음대로 낄낄거렸습니다. 용서하세요, 안드레오티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