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몸과 마음이 모두 봄을 앞두고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자리를 털고 다시 그림 여행을 떠나 봅니다.
지난 번에 인상파가 등장하면서 도시의 풍경이 그림 속으로 들어 왔다가 말씀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파리 시가지가 정비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곧게 펴진 대로 주변의 가로수 그리고 새로운
건물들의 모습이 좋은 소재가 되었겠지요. 덴마크의 폴 구스타프 피셔 (Paul Gustave Fischer /1860~1934)는
‘북구의 파리’라고 불리는 코펜하겐을 그림 속에 담았습니다.
농가의 뜰 Farmyard / c.1916
농촌의 삶이 고단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에 지친 몸을 잠시 풀 밭에 내려 놓았습니다.
햇빛이 가득한 뜰, 맑은 바람도 건너 오는 것 같습니다. 노인 만큼 나이를 먹었을 것 같은 집 뒤 편, 할머니는
아직도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계절이 가을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직 초록들이 짙어지기 전 초 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계절이 바뀔 때면 늘 하늘에 구름이 많았죠. 또 봄이 돌아와서 모든 것들은 다시 시작되고
있지만 풀 밭의 노인은 흐르는 세월에 몸이 지쳐가는 모습입니다.
유태인 집안 출신인 피셔의 선조는 원래 폴란드에 살았습니다. 나중에 덴마크로 오게 되었는데 피셔가
이민 4세대가 됩니다. 아버지는 원래 화가였지만 나중에는 물감과 도료를 만드는 사업을 해서 성공을 했습니다.
유태인 출신 중에 성공한 예술가와 장사꾼이 많다고 하는데, 재주 많은 아버지였습니다. 피셔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이리 저리 추정을 해 볼 수 밖에 없지만 피셔가 화가가 되기 위한 재능과 금전적인 지원은
별 문제가 없었겠지요.
코페하겐 콩겐스 니의 겨울 날
A Winter's Day on Kongens Nytorv- Copenhagen / 80cm x 105.4cm / 1888
콩겐스 니 광장 주변 건물들과 동상에는 눈이 그대로 쌓였고 난방 때문에 도시는 뿌연 안개에 젖었습니다.
생뚱맞게 여인이 그림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여인의 오른편으로는 바삐 일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인 왼편의 흰 옷을 입은 두 남자는 승객용 마차를 모는 기사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기사이겠지요.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정물처럼 멈춘 세 사람이
겨울의 차가움과 함께 스냅 사진처럼 남았습니다.
피셔가 그림 공부를 한 것은 10대 중반 코펜하겐에 있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2년간 재학한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공부를 한 기간이 반드시 성공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화가로서의 피셔 일생을 염두에 두면
미술에 대한 재능은 타고 나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려서 그림을 곧 잘 그린다는 말을 들었던 저는 한 때
화가가 되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타이거마스크나 아톰을 가끔 그리고 있습니다. 재능으로 착각한
것이죠.
대화 The Conversation / 1896
서로 따로 길을 나섰다가 만날 걸까요? 햇빛 좋은 바닷가 풀 밭을 거닐다 얼굴을 마주 대고 두 여인이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한 쪽으로 치우친 여인들의 자세 때문에 이야기는 은밀해 보입니다. 그림 한가운데
건물이 자리를 잡았지만 위로 열린 하늘과 아래로 펼쳐진 녹색 풀 밭 그리고 그림의 가운데쯤을 지나는
흰 모래 밭 때문에 답답함은 찾을 데 없고 시선은 끝없이 자유롭습니다. 문득 바다에서 불어 오는 바람소리에
여인들의 이야기가 들릴까 하고 귀를 기울여 보지만 이야기는 풀밭을 채 건너오지 못하고 여인들 치마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피셔는 삽화가 일을 시작합니다. 잡지에 코펜하겐 거리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을 아주
훌륭하게 묘사한 삽화를 게재했습니다. 스물 두 살이 되던 해 그의 작품의 수준은 한 단계 더 높아졌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책에도 삽화를 그리면서 피셔는 삽화가로서 성공을 거둡니다.
코펜하겐의 겨울 거리 풍경 A Street Scene In Winter, Copenhagen / 55.9cm x 71.8cm / 1900
겨울 코펜하겐의 거리는 온통 흰색과 회색입니다. 눈 오는 거리 풍경이 모두 그렇겠지만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건물의 회색은 그대로 위로 올라 하늘의 색이 되었습니다. 노점상이 밀고 가는 수레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은 세련된 자태를 보내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죠 --- 젊은 여인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없습니다. 오히려
고단해 보이고 어깨도 잔뜩 웅크리고 가는 퉁퉁한 여인에게서 제 주변의 이웃을 보는 것 같습니다. 겨울은
고단한 사람들에게 더 힘든 계절이기 때문일까요? 문득 지난 겨울을 어떻게든 잘 넘어온 사람들의 모습이
등을 보이고 있는 여인과 겹쳐집니다.
언제부터 피셔가 유화 작업을 시작했는지 나와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다만 1890년 파리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 했다고 하니까 아마 삽화 작업을 하면서 그림도 같이 그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피셔는 그림 공부를
위해 1891년, 서른 한 살의 나이에 파리로 가서 5년간 머무는데 이때 인상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해변가의 하루 A Day At The Beach / 55.9cm x 71.8cm / 1900
지붕 위에 날리는 깃발을 보니 바람이 제법 불고 있는 해변가,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피셔의 앞서 작품과는
달리 원근감도 묘사력도 떨어집니다. 간혹 한 화가가 그린 작품 중에 이렇게 특이한 작품을 만나면 아주
기분이 상쾌합니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재미삼아’ 그렸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뭘 알고나 하는 이야기야?
정장을 하고 햇빛에 얼굴이 탈까 봐 그늘 속에 앉은 여인이 한 마디 하는 것 같습니다.
뭐,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런 모습으로 바닷가에 와서 우아한 척 하는 여인들이 정말 싫습니다. 오른쪽에 구두와 바지만
보이는 신사도 마찬가지이지요.
초기 피셔는 저녁 무렵의 거리모습이나 흐린 오후 또는 비나 눈 속을 서두르며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을 주로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랬던 그의 작품은 파리의 유학 생활을 하면서 작품들이 밝아졌습니다. 햇빛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작품 속에 등장한 것이죠. 빛과 그림자 그리고 밝은 색깔이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룬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인상파의 영향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바다를 바라보다 Looking Out to Sea / 27.9cm x 35.6cm / 1910
모자 챙을 살짝 올리고 바다를 바라 보는 여인의 눈길을 따라 가 보았습니다. 화면 밖으로 이어진 그녀의
시선은 한없이 펼쳐진 바다 끝에 닿아 있습니다. 수평선이 매력적인 것은 기대감과 그리움을 주기 때문이죠.
물론 지평선도, 높은 산도 그리고 그 산 속으로 숨어 들어 마침내는 산을 넘어가는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유전자가 우리 몸 속에 있는 한 그 감정은 계속 되겠지요.
언제 결혼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피셔의 아내와 딸은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모델이 됩니다. 때로는
거실에 있는 모습으로, 때로는 바닷가에서 수영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피셔의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갈등과 같은 불편한 감정 대신 조화롭고 생기 있는 일상의 모습으로 가득했습니다.
해변가의 수영하는 사람들 Bathers on a beach / 22.05cm x 29.13cm / c.1916
그림을 보다 보면 여인 세 명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파리스의 사과’를
묘사한 작품에도 세 여신이 등장하지만 ‘삼미신’을 묘사하는 경우에도 세 여인이 있습니다. 햇빛 아래 나신으로
누워 있는 세 여인에게서는 에로틱함 보다는 건강함이 먼저 다가 옵니다. 아마 끈적함보다는 상쾌함이 묻어
나기 때문이겠지요. 흐린 하늘, 검푸른 바다와 대비되어 여인들의 몸은 더욱 빛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저도 저 옆에 앉아서 반나절이라도 보내고 싶습니다.
피셔는 파리와 뮌헨에서의 전시회를 포함 수 많은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독일과 이태리 여행을 통해서
그림도 그리고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코펜하겐과 스칸디나비아 반도, 독일과 이태리의 도시 풍경을 연작으로
남기면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코펜하겐의 꽃 가게 The Flower Market, Copenhagen / 57.2cm x 74.3cm
코펜하겐에도 겨울이 가고 봄이 왔습니다. 날씨는 흐리지만 길거리에는 꽃이 등장했습니다. 꽃을 파는 여인들,
바구니를 들고 심부름을 하는 아이들로 거리는 활기에 넘쳤습니다. 봄이 좋은 이유는 세상의 색깔이 생명의
색깔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오는 봄은 같다고 옛 시인들은 말했지만 봄이 매번 같겠습니까? 세상의
중심에서 보면 봄은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 수만큼 서로 다른 봄이 있는 것이겠지요. 가슴에 흰 꽃을 든 여인,
분홍색과 보라색 꽃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피셔는 평론가들로부터는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대중들은 그의 작품을 좋아했고 작품도 잘 팔렸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평론가들의 평과 대중들의 선호도 사이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간극이 있고
같은 작품을 두고 처한 상황에 따라 보는 눈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여전히 신기합니다.
감멜 스트랜드 Gammel Strand
감멜 스트랜드는 코펜하겐 중앙부에 있는, 운하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운하를 통해서 들어 온 생선을
내리는 작은 선창에 여인들이 모였습니다. 대기는 무겁게 회색으로 도시를 누르고 있지만 굵은 팔뚝과
진지한 모습은 삶을 강건하게 이겨내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젊은이들 모습이 없어서, 그래서 조금은 느릿하게
시간도 흐르고 물도 흐르는 것 같습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나이든 부모들의 모습은 비슷합니다.
피셔는 예술 포스터로도 이름을 날렸는데 로트렉과 스타인라인 같은 대가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러스트와
유화 그리고 포스터까지, 피셔의 능력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매혹적인 코펜하겐의 일상과 다른 도식들의
모습이 그의 작품 속에서 사진처럼 남았고 피셔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공상 Day Dreams / 41cm x 62cm
책을 읽다가 문득 떠 오른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책을 무릎에 놓고 천정을 보고 있지만 천정이 눈에 들어
오는 것은 아니지요. 발을 가볍게 겹치고 소파에 누웠으니 몸은 더 없이 편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
공상은 점점 커져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떠 올리게 했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공상이겠군요. 돌아보면
어렸을 때 공상은 가볍게 지구를 벗어나 은하계를 한 바퀴 돌고 왔는데 이 나이에 공상은 내가 사는 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렇게 소파에 자주 누워 볼 일 입니다.
피셔 당시 덴마크 미술계를 지배하던 화가는 Tuxen이었습니다. 그러나 피셔도 못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덴마크가 소유하고 있던 노르웨이 영토를 돌려 주는 일이 있었는데 이 역사적인 장면을 그림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그릴 화가로 Tuxen이 아니라 피셔가 지명되었습니다. 그 것도 노르웨이 국왕의 요청에
의해서 말입니다. 일흔 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까 한 인간으로서, 화가로서 아쉽지 않았겠지요.
그렇지요? 피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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