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0.jpg 이 책은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석보상절<釋譜詳節>』과 세종이 이를 보고 석가의 공덕을 칭송한 『월인천강치곡<月印千江之曲>』을 저본<底本>으로 편찬하여 세조 5년(1459)에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이 책의 편찬체제는 먼저『월인천강지곡』을 배열하고 이어 여기에 해당하는『석보상절』의 내용을 해설형식으로 실었다. 그렇지만『월인석보<月印釋譜>』편찬시 기존의 『석보상절』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고 이를 수정ㆍ보완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경전에서 내용을 첨삭하여 싣고 있다.

 

이 권25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권수의 2장과 뒤쪽에 일부 탈락이 있다.전체분량의 2/5에 해당하는 전반부는 권수에 2∼4수<首>로 추정되는 『월인천강지곡』이 탈락되었고 제3장부터는 가엽존자<迦葉尊者>의 불교경전결집<佛敎經典結集>과 아난존자<阿難尊者>에게 전법<傳法>한 게송<偈頌>이 실려 있는데 승가이의<僧伽梨衣>를 걸치고 입멸<入滅>에 들어가는 과정<過程>까지 서술되어 있다.

 

이어 승가이의<僧伽梨衣>에 대한 주석(43장의 분량)과 아난존자의 행적이 실려 있다. 이 전반부 해설부분의 저본<底本>은 대부분 『전등록<傳燈錄>』에서 인용한 것이고,주석부분은『사분율<四分律>』,『현우경<賢愚經>』,『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다론<多論>』,『계단경<戒壇經>』,『대품<大品>』,『지론<智論>』,『갈마소<鞨磨疏』,『십송율<十誦律>』 등에서 인용하였다.

 

후반부는 『월인천강지곡』기<其>577부터 583(단, 기<其>583은 후반 노래가 탈락됨)까지 7수<首>와 여기에 해당하는『석보상절』 부분은 권24의 내용을 중심으로 싣고 있는데, 아육왕<阿育王>의 조탑기<造塔記>와 그의 동생인 선용<善容>을 출가<出家>시키는 과정 등이 실려 있으며, 마지막에 『월인천강지곡』기<其>582와 583을 싣고 여기에 대한 주석이 한장 분량이 남아있고 해설부분은 탈락되었다.

 

이 후반부의 저본<底本>은 『석가보<釋迦譜>』 권5의 내용인데『석보상절』 권24의 내용을 일부 수정·보완하여 싣고 있다. 한편 맨 끝에 실린『월인천강지곡』기<其>583은 내용상 마무리 단계이나 결론부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석가보』 권5의 내용 가운데 「아육왕조팔만사천탑기<阿育王造八萬四千塔記>」까지만 실려 있고 「석가획팔만사천탑숙연기<釋迦獲八萬四千塔宿緣記>, 석가법멸진연기<釋迦法滅塵椽記>, 석가법멸진상기<釋迦法滅塵相記>」의 내용이 빠져 있어 뒷부분에 『월인천강지곡 』4∼5수를 포함하여 상당량의 내용(약30여장)이 탈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월인천강지곡』권상이 194수를 수록하였으므로, 미발견의 권중·하에도 그 정도 분량이 수록되었다면 이 책의 기<其>583이 그 마지막 노래라 할 수도 있겠다. 현재『월인석보』는 초각본 권1, 2, 7 ∼ 14, 17, 18, 23과 중간본 권21, 22가 보물 제745호와 제935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어 전체가 몇권으로 구성된 것인지 확실치 않아 학계에서는 24권 또는 25권으로 추정해 왔는데, 이번에 권25가 새로 출현함으로서『월인석보』가 전체 25권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훈민정음』과 조선초기 한국불교 및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월인천강곡』ㆍ『석보상절』ㆍ『월인석보』 등의 연구에 새로운 전기<轉機>가 되는 매우 중요한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