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어느 날 / 이 보 숙
차 한 잔
들고 서서 바라본
창밖의 가을빛이 하도 고와
허수아비랑 벌판에 섰습니다
소슬바람 불어
벼 이삭 흔들고
그 위에 노닐던 참새
무리 지어 날아오르면
노란 파도 잔잔하게 흐르는
바다가 되어 다가옵니다
지난여름 장맛비에
목까지 잠겼더니
쓰린 아픔의 자리에
눈부시게 열매 맺는 가을
아픔만 헤었더니
즐거움이 더 많이 섞여 있습니다
태양도 아직은
뜨거운 정열을 놓지 않아
챙 넓은 모자를 챙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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