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금대봉에서 대덕산 가는 길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화 군락이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사진 정정현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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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권 구간은 백두대간 종주와 관련 등산통제구역은 없으나 금대봉~대덕산 구간만 생태경관보존구역으로 태백시에 예약을 통해서만 등산을 할 수 있다.
태백산권 피재~함백산을 거쳐 화방재까지 1박2일 야영 산행지 답사는 비교적 접근이 쉬운 북쪽 피재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피재는 일명 삼수령이라고도 한다. 3개 강의 분수령이 된다고 해서 삼수령(三水嶺)이다. 서해로 흘러가는 한강과 남해로 흐르는 낙동강, 그리고 동해로 합류하는 오십천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삼해(三海)로 물길을 뻗는 곳이다.
피재에서 백두대간 남쪽으로 가장 먼저 나오는 봉우리가 매봉산(1,303m)이다. 매봉산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정확한 분기점이다. 삼수령목장과 고랭지배추밭이 매봉산 자락에 넓게 펼쳐져 있다. 매봉산 정상 비석엔 앞면엔 매봉산, 뒷면에 천의봉이라고 적혀 있다. 매봉산과 천의봉은 다른 이름, 같은 봉우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매봉산 전망대에서는 백두대간 능선 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단봉에 이어 금대봉, 은대봉, 함백산까지 선명하다. 남한에서 차가 다니는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만항재(1,330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두문동재(일명 싸리재·1,268m)까지 손에 잡힐 듯하다. 한국의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정암사를 세울 때 조성된 금탑, 은탑에서 금대봉과 은대봉이 유래했다. 금대봉과 은대봉을 잇는 두문동재(싸리재)는 고려 말기 유신들이 새 조정인 조선에 반대해 벼슬살이를 거부하고 은거하여 살던, 두문불출하던 곳이라고 해서 두문동이라 이름 붙여진 것으로 전한다.
매봉산에 이어 수아밭령(水禾田嶺·수화전령) 고갯길이 연결된다. 수아밭령은 한강 최상류 마을 창죽과 낙동강 최상류 마을인 화전을 잇는 백두대간 상의 고개다. 옛날 화전에서 벼를 재배한 관계로 수화전(水禾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가 다시 줄여서 화전(禾田)이 됐다. 지역민들은 ‘쑤아밭’이라고 불렀다고 안내문에 소개하고 있다.
숲은 대부분 참나무들이 점하고 있다. 완전 우점종이다. 금대봉으로 갈수록 서서히 야생화들이 눈에 많이 띈다. 금대봉 정상에는 ‘대덕산까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예약을 하고 탐방하라’ 안내하고 있다. 금대봉에서는 등산보다는 울긋불긋 눈길을 끄는 야생화들로 발걸음이 지체될 정도다. 정말 야생화가 끊임없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야생화천국’이다.
정상은 널찍한 공간이 펼쳐져 있어 물만 있다면 야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야생화가 보여 주는 형형색색의 풍광과 밤이 되면 반짝이는 별빛을 보면 마치 알프스의 어느 지역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정상에서 대덕산 방향으로 1km쯤 가면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고목나무샘이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태백시에서 탐승 허가를 받아야 다가설 수 있다.
- ▲ 함백산 정상에 오르기 전 바라본 백두대간 주능선. 주목과 야생화, 사방으로 뻗은 산 능선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 ▲ 태백산 유일사에서 오르는 등산로에서 한 등산객이 천연보호수 주목 옆으로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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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항재 고갯마루는 8월 말 밤에도 추워
금대봉과 은대봉 중간에 있는 고갯길인 두문동재(1,268m), 즉 싸리재도 야영하기 좋다. 이곳엔 넓은 공간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철철 넘치는 물을 구하기 쉽다. 이전 이름이 싸리재인 두문동재는 정암터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정선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나들던 국도였으나 터널이 개통되면서 지금은 승용차들이 가끔 드라이브 코스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고갯길 정상에 ‘백두대간 두문동재 해발 1,268m’란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두문동재에서 은대봉까지는 불과 1.1km. 완전히 오르막이다. 숨이 헐떡이며 은대봉에 이른다. 은대봉 지나서는 야생화가 조금 줄어들더니 다시 내리막이다. 중간에 쉼터 겸 야영할 만한 장소도 한 군데 있다. 샘터가 1km쯤 아래 있다는 표시도 있다. 샘터를 찾아서 확인할 만한 여력이 없어 계속 전진이다.
은대봉을 지나 만항재가 가까워지자 다시 온갖 야생화들이 방긋 미소를 터트리며 자기를 봐달라는 듯 유혹한다. 북방계 식물 중에 금대봉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대성쓴풀과 개병풍, 함백산까지 내려와 자라는 분홍바늘꽃과 노랑투구꽃, 태백산까지 내려온 좀미역고사리, 찝빵나무, 숲바람꽃, 한계령풀 등이 남방한계를 이루는 식물들이 여기저기 관목과 목본을 이루고 있다.
야생화 이름을 확인하고 똑 같은 모양을 찾으려 해도 도무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여기저기 널린 야생화가 전부 비슷하면서도 또한 다르게 보인다. 이름을 외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전문가가 가르쳐 줘도 그때뿐이다. 안타깝다. 자주 봐서 눈에는 익기는 하나 이름과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다. 야생화와 최단기간 가깝게 지내는 방법이 없을까.
중함백을 지나면서부터는 야생화와 함께 천연보호수 주목이 서서히 자태를 드러낸다. 나무마다 번호가 매겨져 보호받고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주목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어떤 나무는 심재가 텅텅 비어 수피만 남아 있고, 어떤 나무는 가지가 전혀 없이 몸통만으로 지탱하고 있다. 별칭 그대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모습 그대로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1,572.9m)은 신경준이 저술한 <산경표>에는 대박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선총쇄록>에는 ‘상함박, 중함박, 하함박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왜 함백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태백(太白), 대박(大朴)과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함백산을 묘범산(妙梵山)으로 기록했는데, 묘범산은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과 같은 뜻이다’고 전하고 있다.
- ▲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환상적인 함백산의 일몰.
- ▲ 화방재는 민가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어 야영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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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동재·만항재는 휴게소 있어
함백산에서는 주변 조망이 확 트여 지나온 능선과 지나갈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시 백두대간이다. 미끈하게 빠진 능선들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압도적이고 위협적인 외국의 산과는 스케일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우리 산에 올라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자연이 얼마나 친인간적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친근할 수가 있나!’ 감탄할 정도다.
함백산 아래 고개가 남한에서 차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로인 만항재(1,330m)다. 만항재라는 지명은 원래 동네말로 능목재(늦은목이재)라고 불리던 이름을 한자말로 ‘晩項(만항)’이라고 붙인 데서 비롯됐다.
만항재에서는 남한 최대의 야생화 축제가 열린다. 산상의 화원, 하늘숲 정원, 바람길 정원, 야생화공원 등 천만 가지 야생화가 만발한 정원이 곳곳에 널려 있다. 눈만 돌리면 아름다운 야생화를 사시사철 볼 수 있는 곳이 만항재이기도 하다.
만항재에서 화방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태백산으로 올라간다. 화방재는 어평재라고도 불린다. 바로 옆에 어평휴게소가 있다. 고갯마루 서쪽 기슭의 ‘어평’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다. 어평(御坪)이라는 말은 태백산신이 된 단종의 혼령이 이곳에 이르러 ‘여기서부터 내 땅(御坪)’이라 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태백의 지명유래>에는 고갯마루 기슭에 진달래와 철쭉이 많아 화방재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어평마을에는 민가도 몇 채 있고, 더욱이 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런 여건 때문에 야영객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까지가 피재에서 출발한 백두대간 1박2일 산행코스로 딱 좋은 구간이다. 중간중간에 물도 풍부하고 국립공원 구역이 아니라 야영하는 데 전혀 간섭을 받지 않는다.
찾아가는 길 태백시에서 삼수령(피재)까지 약 6km 남짓 된다.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서 1~2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있다. 시간이 넉넉지 않으면 택시를 이용하면 빠르다. 택시비는 보통 2만원 받는다. 화방재까지도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 약 1시간 내외 소요. 거리는 14km 내외. 문의 태백시외버스터미널 033-552-3100.
- ▲ 백두대간 피재~금대봉~싸리재~함백산~화방재 개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