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2_0058.jpg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영국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부도. 높이 1. 76m.

 

영국사는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명종 때인 12세기에 원각국사에 의해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고종 때 안종필이 임금의 명을 받아 탑과 부도, 그리고 금당을 새로 지었다.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 하였다가 후에 다시 공민왕에 의해 영국사로 불리게 되었다.

부도는 영국사 안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기단부·탑신부·머리장식부로 나뉘어지며 전체적으로 8각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지대석부터 보주(寶珠)까지 부재가 완전한 이 부도는 지대석 위에 1단의 높은 굄과 2단의 낮은 각형받침을 각출하여 하대 측면을 받치고 있는데 각 면에는 가늘고 긴 1구씩의 안상(眼象)이 조각되었다.

 

그 위에는 8각으로 된 한 장의 굄을 놓고, 굄 아랫면에는 1단으로 된 낮은 각형 굄이 조출(彫出)되었고, 윗면에는 각형으로 된 3단받침이 낮게 각출되어 중대석을 받고 있다. 중대는 1석으로 된 8각으로, 각 면에 1구씩의 안상이 있다.

상대석은 측면부터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아랫면에 8각으로 된 2단의 받침이 각출되어 중대 위에 놓였다. 측면에는 단엽 24판(瓣)씩의 앙련(仰蓮)이 상하에 중판(重瓣)으로 조식되어 화사한 연화대를 이루었다. 윗면 가장자리에는 띠를 둘렀고 중심부에는 3단굄을 조출하여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은 8각으로 각 면 좌우에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각출되었다. 1면에는 장방형의 문비(門扉)가 있고 그 내면의 윗부분에 자물쇠가 돋을새김되었다. 8각으로 된 옥개석의 아래에는 상대의 탑신굄대와 대칭을 이루는 3단의 받침이 조출되었고 추녀에는 모서리마다 무늬가 있다.

 

낙수면의 합각(合角)머리의 선조(線條)는 꼭대기에서부터 유려한 곡선을 이루면서 전각(轉角)까지 흘렀다. 면마다 기왓골이 정연하게 모각되었는데 처마의 곡선과 전각의 반전 등이 잘 어울려서 경쾌한 맛을 주고 있다.

 

옥개석 꼭대기에는 8각으로 된 상륜(相輪)굄을 조출하여 그 위에 복발(覆鉢)과 보주를 얹었다. 복발과 보주는 원형인데 복발에는 측면 중앙부에 굵은 선과 가는 선으로 된 두 줄의 선이 둘러졌고 연꽃봉오리모양의 보주 아랫면에는 낮은 굄이 있다.

이곳에는 원각국사비(圓覺國師碑, 보물 제534호)가 있는데, 그 위치나 형태 등에서 이 석비와 연관시킨다면 이 부도의 건립연대는 고려 명종 10년(1180)경으로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