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1.jpg 경상북도 영천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물.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

 

이 숭렬당은 조선(朝鮮) 세종(世宗) 15년(1433)에 건립된 중국식(中國式) 건물로서 그 구조와 형태가 아름답고 특이하다. 이 건물은 세종 원년(元年)(1419) 쓰시마(對馬島) 정벌과 야인(野人) 토벌 등에 혁혁(赫赫)한 공적을 남겨 일명 복장군(福將軍)이라 불리었던 명장(名將) 위양공(威襄公) 이순몽(李順蒙) 장군이 평소 기거했던 집이다. 현재는 장군의 위패(位牌)를 받들고 봄·가을로 제사를 드리고 있다.

 

전체의 배치는 숭렬당(강당) 구역과 사당 구역으로 양분되어, 남쪽으로부터 남문·숭렬당·후문·사당의 순서로 남북 축선(軸線) 위에 들어서 있다.

 

남문에서 시작된 잡석토장(雜石土墻)은 건물들의 외곽을 둘렀고, 후문에서 다시 동서로 내장(內墻)을 따로 쌓아서 경계를 삼아 전당후사(前堂後祠)의 배치를 보여 준다. 현재 이순몽의 후손이 끊어져 제향(祭享)을 유림에서 받들어 온 연유로 안채는 없어졌다.

이 건물은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덤벙주초(柱礎)를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중앙 3칸은 같은 크기의 주간(柱間)인 데 비하여 좌우 툇간은 약 한 자가 좁은 주간이며, 측면에서는 어간(御間)의 전후로 퇴가 있는 구성이다. 좌우 툇간에는 방이 설치되어 있는데, 앞퇴는 마루로 열어 대청에 연결하도록 되어 있다.

 

방 뒤로는 반반칸의 개흘레(벽 밖으로 조그맣게 달아 낸 칸살)가 덧대어져 있고, 대청 뒤로는 그 넓이만큼의 쪽마루가 깔려 있다. 대청과 툇마루는 우물마루의 구성이다. 측면 어간의 주간통우물은 세우물로 간격이 좁은 보통의 구성이나, 툇간은 장마루만큼이나 간격이 넓은 우물 하나로 만들어졌다.

 

정면 5칸, 가운데 3칸에는 맞배의 지붕을 만들고 좌우 툇간 위의 지붕은 가적지붕〔斜廊〕으로 처리하였다. 가적이라는 편사(偏斜)지붕은 영천지방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맞배지붕이 팔작지붕으로 변형되는 과정의 양태를 보이는 것으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이 건물의 형식을 보면 큰 부재의 익공, 건실한 기풍의 초각(草刻), 행공(行工)과 배바닥의 간략한 초각 등 조선 초기의 수법을 보이고 있으나 정밀 조사된 바로는 후기 18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0년 문화재로 지정된 뒤 해체 복원되어 원형을 회복하였다.